중국이야기

심양 그리고 고궁

이바구아지매 2008. 8. 5. 10:08

 2008년 7월22일 눈을 부벼 뜨니 아침5시다

창밖으로 내다 보니 잿빛 하늘이 내려 다 본다

심양에서의 하룻밤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여 그런지 짧은 여정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방을 차곡차곡 챙겨서 빨래하지 못한 것들을 따로

봉지에 담고 여권을 챙겼다 내가 묵은 심양의 호텔에는 냉장고가 있어 시원한

맥주한잔을 마실까 하고 문을 열었지만 냉장고 속이 텅텅 빈 것이 하도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6시가 되는 걸 보고 6층 로비로 갔다

가방을  챙겨 들고 가서 식사를 대충 하고 사흘밤낮을 함께 다니며 정이 든

일행들에게 인사를 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동작이 빨랐는지 일찍 할일을 다한 우리는 호텔로비에 앉아서  얹혀 있던

신문을 내려서 읽어 보았다

"교통사고가 났군 테러범 소행이라는 것 같은데... 14명이나 다쳤다고 하네

올림픽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이라 신경이 날카롭겠네

공항가면 또 검문검색이 장난이 아니겠어"

하고 남편이 중얼거린다

베이징올림픽을 상징하는 로고가 새겨진   흰티셔츠를 입은 의사들이  세미나가

있는지 같은 호텔에서 우루루  몰려 나가는 걸 보고  화장실로 갔다 미리준비

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고 그런데 호텔의 화장실도 참 어이없다

고작 두칸의 화장실 중 하나는 고장이 나서 걸어  짐그고 하나는 안에

 사람이 들어 있었는데 얼마나 질긴지 나올 생각을 않는다 혹시 변비가 걸렸나

별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화장실속의 미스터리 그녀는

  20여뷴이  지나서야  얼굴을 쏘옥 내밀며 나오는게 아닌가 그녀는

레스토랑의 접대원이었는데 일하기 싫어서 화장실에 박혀 있었는지?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한답시고 들어가자마자 볼일을 보고 1분만에 나와서

 복도를 걸어가는데 허전한  생각이 들어 어깨를 만져보니 가방이 없다

 이런 정신좀 봐 내 가방,가방을 화장실에 걸어둔채 그냥 나왔다

지독히도 심한 건망증 이곳에서 가방을 잃어버리면 여권이며,돈까지

중요한 모든것이 다 들어있는데 후다닥 달려가니 다행히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찾은 가방을 볼에 살짝 비벼보고 

호텔입구까지 가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22층이나 되는  호텔이 있는 걸 보면  심양시는  제법 큰 도시인가보다

하긴 인구가 750만이라고 하니 땅의 넓이는 상상보다 훨씬 넓겠지?

 이곳에서도 주차전쟁이 심각하다 호텔직원이 나와서 호텔앞에 주차를 못하게

고함을 치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청소부 아주머니 ,하도 인상을 그리길래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진 않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심양시내에 있는 고궁으로 갔다

어제까지는 고구려를 생각하며  슬픔을 삼켰는데 오늘은 또 기막힌 나라의

불행했던 병자호란 이야기가 심양의 고궁에 웅크리고 있는게 아닌가?

 사진이 또 섞혔다 이 사진은 호텔앞 풍경이다

 고궁을 들어서니 풍전등화같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스르르 눈 뜨고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치욕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굴욕적인   삼전도의 치욕을 ...

 심양땅에서 또 다시 슬픔과 수치감을 맛 보게 될줄이야

 사진을 찍으면서도 웃음 머금은 것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웃는것이 습관이 되어서  사실 침울한 역사앞에서 웃음이 날리 만무하지만...

 고궁에서는 늘 그렇게 하는지 군인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 장군의 옷이 청태조 누루하치가 입고 전쟁에 나섰던 옷인가?

장군의 옷은 노란색이었지만 내가 염색해버렸다 그 시절에 무슨 옷이 그리

화려했을라고?

 고궁의 입구에서

 중국에는 군인도 많다 철철 넘쳐 흘러서 가는곳마다 군인이다

발길에 채일정도로...이것이 중국의 인해전술

 곳곳에서 다 검문검색을 한다 여기는 북릉공원 입구

남편의 가방을 다 열어젓히고 혹시 멸치,깻잎,김 이런것 속에 폭발물이라도

들었는 줄 아나보다 �라거리며 별걸 다 열어보라고 하니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모습이 잠시 눈 앞에 아른거린다

 곳곳에서 옷 대여점이 있어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다

나도 한 번 그리해볼까 생각했지만 하도 꼬질꼬질하여 그만두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372년  전 병자호란의 치욕이 떠오르니...

 

1632년(조선시대) 제 16대 임금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폐하여 500명의 대신을

대동하고 한강변 삼전도에 내려와서 1636년  12월 6일 청태조 에게

무릎 꿇고 엎디어 신하되기를 맹세하였다

그 때 소현세자, 빈궁,봉림대군 그리고 삼학사(홍익한,운집,오달제)등

수십만명의 양반집 부녀자와 자제들이 인질로 붙잡혀 갔다

372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이곳 심양땅에 끌려와서 세자등 왕족은 심양고궁

앞 근처의 심양관이라는 곳에서 유폐되어 지냈고 삼학사는  현재 모택동

동상이  서 있는 중산광장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현재 심양관은 심양시 이동도서관으로 사용중이란다

사진속의 건물이 심양관이라고 추측한다(사진은 심양 발해대학에서 빌려 왔음)

 

소지맘이 들려주는 병자호란의 슬픈 역사가 잠든 심양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