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심양의 고궁과 북릉공원(병자호란을 생각하며)

이바구아지매 2008. 8. 5. 12:02

 천하의 누루하치도 한 줌 흙이 되어 바람에 날아간지 오래다

그는 여진족의 족장으로 후금을 세웠으며 만주어를 위한 글자의 제작을

명했다 묘호는 태조이다

사르호의 결전애서 명나라를 물리쳤는데 이 때 조선과 담판을 벌였으며

누루하치가 살아 있을때는 조선과의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후에 후금은 명을 멸망시킨 뒤 1636년 국명을 청나라로 바꾸었다

 

 

 녹색을 많이 쓴  심양고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찍어 보았다

 자금성에는 주로 금색으로 되어 있는 반면 심양 고궁에는 녹색으로 산이나

 초원을 좋아한 만족,몽골족,회족,티벳족등 여러 민족의 예술품격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건축이다

 

 

 

 중산광장, 모 택동의 동상이 서 있다  이 광장에서 조선에서 끌려 온 삼학사는

참수형을 당했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찍어  모택동의 뒷모습만 잡혔다

여기서 잠시 병자호란의 충절 삼학사(윤집,오달제,홍익한)를 잠깐 생각 해 본다

그들의 나라에 대한 충절을 생각하며 오 달제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적어본다

(심양의 옥중에서 아내 남씨에게 보내다)

금슬이 은혜와 정이 겹쳐 서로 만난 지 두 해 남짓

이제 만리 밖에 이별하였구나

백년해로의 기약 헛되이 짊어졌구나

땅은 넓고 넓어 편지를 보내기도 어렵고

산은 멀고멀어 꿈길마저 더딘데

내 목숨은 점 칠 수가 없으니

부디 뱃속의 아이 잘 간수해 주오.

 

즐거워야 할 여행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삼학사의 오달제는 심양으로 끌려 갈 즈음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혼이었음에도 나라를 위한 충절이 앞섰다

 

 

 

 북릉공원

 용이 치렁치렁 감긴듯한 사자상 , 이곳에는 이런 동물상이 많이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가 병자호란 때 포로가 되어 잡혀 온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심양의 고궁과 북릉공원은 우리조상의 절규와

한으로 이루어진 결실로 후손인 우리가 이 자리에 섰다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아래로는 일본과 위로는 중국,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며 오늘까지 왔다 아직도  중국은 고구려땅을, (통일이 되면 차근차근 따져

 볼 우리의 땅)일본은 독도(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를

자기네땅이라고 우기는 꼴을 감당하기조차   쉽지 않다

하하하 진작에 우리땅이라고 명의를 확실하게 하고 관리를 소홀히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니 요것들이 특별조치법에 살짝  등기해가려고 그러는것 아닌가?

나쁜넘들...

 

 난 침착해야 해 흥분한다고 될일인가? 그래 침착하자

 

북릉공원은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왕의릉이 있고, 시민의 공원으로도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은 56개의 다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들의 패션을 생각해 보았다

다양한 패션으로 유행을 선도할 것 같다는 커일카스족,라후족,서족,동족,

어워커족,누족,장족,후이족,창족,위그루족,이족,여러쓰족 ...많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장족의 패션이 정말 예쁘고 생김새도 중국에서 가장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도 맑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족들이 사는 마을 깊숙히

 들어 가 보고 싶다.

 

 남편은 그런다

"난 백두산 천지를 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다른 욕심은 안 부린다

이쪽 동네는 보너스"

그래서 설렁설렁 눈팅만 하고 다닌다

참말로 심양땅을 어디 어깨너머로  볼곳인가? 조상님들이 지하에서

서러워하고 계실텐데 ... 문제는 너무 더워서 폭폭 찐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비요일이어서 다니는데 우산을 하나 더 챙겨야 하는 불편을 빼고는 생각

해 보니 날씨가 큰 부조를 한 셈이다 오늘 여행 마지막 날 날씨는 또 더위를

선물한다 여름은 뭐니뭐니 해도 더워야 제격이라고 ...그래서 양귀비와 공리가

그려진 부채를 샀다 (내가 아는 예쁜 중국여인들 ㅋㅋㅋ)

둘이서 부쳐주니 얼마나 시원한지, 우리돈으로 1,500주고 샀다

얼마나 깎아 달라고 보챘는데 중국상인인 그녀는 내 한국돈에 눈독을 들여서

끝내 깎아 주지 않고 그 대신 내가 참 좋단다 (중국말로 뭐라했는지???)

 

 부의, 마지막 황제 ...아무리 봐도 저 꼬마는 부의다

내가 이름을 부쳐 준 마지막 황제 부의는 내 말을 무지 잘 들었다

사진사가 사진을 찍자고 앞에서 요롱을 떨고 오도방정을 다 떨어도 말 듣지 않다가

나를 보자 얌전해지며 포즈를 잘 잡아 준다

참 이상하지 전생에 내가 만주족의 누루하치와 무슨 상관이라도???

부의는 나를 위해서 몇 장의 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아무리 봐도 마지막 황제다

잠시 부의를 떠  올려 본다

베르틀루치 감독이 만든  영화 '마지막 황제'는 무지 슬펐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만큼 비극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 흔할까?

3살에 서 태후에 의해 궁궐로 들어간 꼬마황제  서 태후의 섭정...

부의가 쓴 자서전  (나의 전반생)에는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완룡(왕후)이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솥에 넣어 태워죽인 사실이

 확실히 있었다"

이 글은 부의가 친필로 썼다고  한다

완룡은 부의의 첫부인으로 아편으로 죽어 간 한 많은 여인이었다

 부의는 두번째부인 문수에게 이혼당하였고

세번째부인 담옥령은 요시오카에서 암살당했다

부의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황제에서 퇴위당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당에 의해 수형번호 981번을 달고 9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사상교육을 받으며 자아비판을 하고 세월을 죽이고 있다가   주은래의

배려로 사면되어 나온다

꽃과 나무를 돌보는 정원사가 되어서, 자신의 집을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하여

본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는 죽어서 화장이 되었고 28년만에 황제로 복권되어

천상에서나마 편안히 쉬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청조의 말로와 조선의 말로가 어찌그리 닮은꼴인지 두 나라가 다 일본에 의해서...

청조는 이미 중국으로 동화되어 글도,말도 사라졌지만 다행히 우리는

세계속에  탄탄하게 뿌리내려 잘 살아 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작은 중국아이 하나가 부의를 떠올리게 해 준 시간이었다

 

 

 

 

 태종의 왕후무덤이다  북릉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무덤이다

무덤은 풀이 자라지 않는지 민둥으로 릉위에 두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심은것이 아니고 저절로 나서 자란 나무라고 한다 북릉이란 뜻은 북쪽에 있는

무덤이라는 뜻이란다

 

 이 쇠손잡이를 만지면서 소원을 이야기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나는

이번에 대학에 진학하는 둘째가 원하는 대학에 꼭 합격하기를 빌었다

 

심양에서 생각지도 않은 여행의 소득이 알곡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이렇게 뜻밖으로  얻는 수확이 나를 기쁘게 한다.

 

소지맘이 들려 주는 중국이야기 ~계속~

'중국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놓친 것이 더 소중하다(중국 주워 담기 1)  (0) 2008.08.06
심양의 수채화  (0) 2008.08.05
심양 그리고 고궁  (0) 2008.08.05
고구려여 영원하라  (0) 2008.08.04
안개속의 오녀산성  (0) 2008.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