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공원의 왼쪽 구석에서 아지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풀을 매고
(시에서 돈을 받고 제초작업을 하는 사람들) 있더군요
이미 장미는 고운 꽃잎을 다 날려버리고 릴케를 향해 장미가시를 콕 쏘아 댄
가시만 무성한 채 말입니다.
쪼그리고 둘러 앉아 풀 매는 모습이 공기놀이를 하는것처럼 호미끝이 바삐 움직입니다
히히낙낙 하던 아지매는 웃음을 못 참고 호미를 든채 나딩굴기도 합니다
멀리서 들어봐도 걸쭉한 농지거리가 음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장대소 하는 풍경은 한여름에 힘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니라 즐거워서
못견디겠다는듯 동네마실 나온 사람들 같기도 합니다
뙤약볕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아지매들의 지혜는
수십년 살아 온 그들만의 독특한 인생경륜을 말해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녘에 다시 가 보았더니 여전히 풀을 뜯고 있었어요 아지매들이...
한 낮에 점심 먹고 단잠을 즐긴 곳이구요
풍각쟁이 아저씨도 저기 보이네요 챙이 너른 모자를 쓴 아저씨가 풍각쟁이 ㅎㅎ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오랫만에 장미공원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우리 서방이 풍기는 밤꽃내는 삼거리 주막집 여편네도 미치고,홍골댁도 미치거로 안 하더나
불구대천지원수( 바람을 피운 남편을 일컬을 때 쓰는 말)도 가고 나니 보고 잡네 풋밤내라도
좋응께 한번 맡아보게 해주소 어~허 살춤도 한 번 맞아 보고 싶소 내 말 들리요?"
"하하하 경자네야, 누가 들으모 우짤라꼬 그리 야시꾸레한 이박을 해삿노
우리끼리사 개안타만 누가 들으모 참말로 얼굴 붉어진데이"
"들으모 들었지 뭐 몬할 말 했는가? 칠팔월 삼복더위에 이런 농도 안하모 일이 어찌 굴것노 "
"하기사 그렇다 누구는 복을 타고 나서 서방이 사흘들이 외식시켜 줘, 누구는 대복을 타고 나서
국회의원 사모님이 다 되고, 여자 팔자는 디웅박 팔자라고 내사마 울엄마 자궁밖을 나오면서부터 모시삼고 ,17살에 시집와서 별 보고 일어나서 새벽 보리방아 찧고, 줄줄이 알사탕 낑거 맨쿠로 아를 일곱이나 복닥복닥 나 놓으니 맨날 흥부집 밥상에는 거릉벵이 가족들이 모여 앉아 보리밥만 먹고
방구만 풍풍끼니 자고 난 방안은 쿰쿰한 방구냄새만 가득하고, 거릉벵이같은 내새끼들의
뱃속에는 전쟁놀이로 꼬르륵 피피 쾅쾅 하고 ,볼일없는 애비,에미를 기다리고 앉았는기라... 허참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는기라 내 나이 서른 아홉에 하늘에서 벼락이 툭 쳤는기라 , 멀쩡한 서방이 저승 가는 길이 그리 바쁜가 허겁지급 미안타 소리 한번 안하고 심장마비로 들컹 죽네 이 년의 팔자야, 허리가 오그라지도록 일하다 보니 발 밑에서 죽으라고 묵을 것 물어나르는 개미는 나 같고 그늘나무위에서 노래하는 매미는 팔자좋은 친구들 안 같으나"
"오지랄 개지랄도 해 샀네 ㅎㅎㅎ 그래 생각 말거라 고것이 다 인생인기라 .저기 봐라
그늘낭개(그늘나무)가 우릴 오라고 손짓하네 얼른 가서 맛난 점심이나 묵자"
"맞다맞다 그래도 우리 팔자도 망할놈의 팔자는 아니네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
내사마 잠깐만이라도 황진이가 되어 볼란다 ㅋㅋㅋ"
소나무 아래...
"뭐니뭐니해도 요 시간이 젤인기라 삐거득빼거득 벤또 싸 온 것 다 내 놔 보시오
갈치젓도 내 보고 된장밑에 박아 놓은 깻잎도 내 보시오
젓국에 절인 콩잎사구도 내 보시오 식은 밤덩이도 내 보시오"
"하하하 득길네가 없으모 긴긴 여름 땡볕에 저 많은 풀을 언제 뽑것노 옛다
나가 득길네 밥까정 푹 싸 왔는기라 묵고 노래 한 자락 하거라"
"그라제 그라제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한 숨은 쉬어서 무엇허나 인생일장 춘몽중에
아니나 놀지는 몬하리라 니나노~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아구통에 밥 다 튀어나온다 밥이나 퍼득 묵고 진소리 짜린소리 좀 깔거라"
"ㅎㅎㅎ 그라제 와이구야 밥맛 차암 좋다 "
"동이네야 니는 맨날 서너푼 받아가이고 옷 다 사 입나 볼 때마다 옷이 바뀌네 오늘 입은
옷은 또 번쩍번쩍 하네 다이아몬드로 맨든 옷이가?어데 돈 두둑하이 많은 호부래비
영감 하나 맞찼나 하하하"
"문디, 우리 딸이 엄마 옷 깨끔밖이(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댕기라꼬 싫다캐도
안 사 주나 농에만 쳐 박아 놓을끼가? 나 죽으모 다 불 태아삐낄데"
"맞다맞다 입은 사람이 대접받제 옷이 날개다 존 옷 사줄때 착착 입어라"
"아지매들요 밥 맛있소? 내 밥도 좀 있소? "
" ㅎㅎㅎ 풍갹쟁이 아저씨네 하모요 아저씨도 한 숫갈 뜨소 "
"말이 그렇제 난 밥 먹었소 점심 다 먹었어요 그라모 내 풍악소리 한 번 울려볼까요 "
""야 그라소 우리는 다 정자나무 아래서 한 곡 들음시롱 단잠 한 번 꼬시게 자볼라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좋다 좋다"
"또 다린 곡은 없소"
"신청곡 받으까요? 그라모
이 음악 들어보소"
"저고리 고름 말아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낭18세 버들잎지는 앞개울에서 소쩍새
울때만 기다립니다"
"드르릉 푸하하하"
"아이구 꼬시라 꿀맛이네 매미야, 니도 좀 자그라 노래는 한 두시간 안 불러도 된다"
"젊은 아지매도 옆에서 한 숨 자요 "
"아예 그럴게요"
신문 좀 보다가 드르릉 거리는 아지매들의 소리에 홀려서 나도 한 숨 자고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잠을 ...소나무 아래서... 풀 뽑던 아지매들과 함께...그들 이
누구냐구요?오늘 낮에 처음 만난 아지매들이에요 ㅎㅎ ㅎ
디카를 챙겨갔더라면 코골고 낮잠자는 모습,콩잎에 식은 밥 싸 먹는 모습,신바람나서
노래하던 모습, 걸쭉한 농짓거리하는 모습, 다 담는건데 디카를 준비 못한 날에는
꼭 대박거리가 생긴단 말씀...내일 이 자리에 또 와 볼까요 혹 모르니???
(2008년 8월20일 능포동 장미공원에서...사진은 저녁 때 가서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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