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이야기

옥녀봉에서 쓰는 우리들의 일기

이바구아지매 2008. 9. 1. 07:46

 "여보세요 그기가 00네 집인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사고가 났어요 여기는 옥녀봉 초소입니다 00네 아빠가 심하게 다쳐서 출혈이 심해요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119에 구조를 요청하세요 빨리요 한시가 급해요"

 

 

2008년 8월 31일 ,우리 부부는 14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옥녀봉으로 오르는 날이다

그 동안 옥녀봉에 오르는 건  내키지 않아서 미루기만 했는데 오늘은 정면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닌데 ...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밥 하고 반찬을 대충 만들었다

볶고,지지고, 부치고,무치고 ...

 부추전 ,버섯전, 꼬막무침 ,볶은 고기

 볶은 고기를  좀 소개하자면 푸른 줄기콩은 사촌동서가 하노이의 친정집에서 씨앗을 가져와서 밭에 심어

어제 따서 내게 반찬 해 먹으라고 준 것이다 나이도 어린 동서가 나 보다 훨씬 낫다

심어서 재배하여 수확을 하다니, 난 스스로 심어서 수확까지  해 본 것이  하나도 없다

줄기콩의 맛이 괜찮다 내년에는 더 많이 심어서 수확하면 넉넉하게 달라고 해야겠다.

 옥녀봉을 오르는  출발은  대우조선 동문의 봉수대로  올라서 가는 길로 택했다

대우조선 정문에서 오르려고 했지만 소곤소곤 이야기하다 그만 정문을 통과해버렸기에...

하지만  이쪽 길은  10년전에 몇년 살아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아 쉽게 오를 것 같다

 봉수대 근처에 서니 옥림아파트가 보이고 거제대학이 보인다  저쪽으로 가면 와현해수욕장과

구조라해수욕장이 나온다

 오늘은 벌초하기  좋은날인지  곳곳에서 벌초를 한다

이 곳은 공동묘지로 벌써몇몇 문중에서 단체로 벌초를 끝내고 돌아가는 팀도 보이고...

우리가 도착할때 쯤은 곳곳에서 예초기소리가 요란하여 조선소의 의 기계소리만큼 시끄럽다

봉분이 너무 낮아  묘같지 않은  산소 사진도  찍어 본다?

 남편은 여러번 올라 본 터라 서섬없이 금방 봉수대로 향한다

대우조선의 동문쪽에서  200m정도  오른 것 같은데 옥녀봉 봉수대가 눈 앞에 나타난다

 남편은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늘 사진은   억지로 우겨서 사진을 찍는게 대부분이다

오늘도 여전히 내가 우겨서 사진을 찍었다

 ㅎㅎ 나도 한 번 찍어야지 대우조선소의 전경이다 조선소가 들어오기전에 이 곳에는 당동산이 있었다

1973년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당동산은 바다속으로 갈아 앉혔다 거제도의 지도가 바뀔 정도로 변화한 이곳 모습

조선소가 건설되면서  돈은 얻었지만 빼어난  절경의 관광지를  잃었다

내가 중학교 일학년 때  봄 소풍을 이곳 당동산에 왔었는데...  지금은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린 

 추억속의 야트막한 산  임진왜란의 성웅,이 순신 장군의 첫 승리를 기념하는 옥포정이  멋지게 서 있었고

우리는 옥포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옥녀봉 봉수대는 현대식으로 복원한 것이다 바다 건너의 가덕도 봉수대까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며

바다가 펼쳐진 조망은 벌어진 입이 다물리지 않는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나니  심심해서 셀카를 찍어 본다 이 곳은 나 홀로 다방이다

거울속의 나를 보고 그리스 로마신화의 나르시스이야기가  생각난다  찍찍이를 눌러대자 옆의 나홀로 다방에서

남편이 무슨 소린가 하고 놀라는 눈치다 혹시 자기를 몰래 찍는 몰카라고 생각했을까?

 밖으로 나오니 각시의 행동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 아무 말도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

 옥녀봉 정상까지 2,2km 더 가야한다

 곳곳에서 벌초한다 전국적인 모양이다  아마 오늘 벌초를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도 산에 갔다 내려오면 할아버지,할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갈 예정이다

 정상을 향해서 다시 한 참 오르다가 산등성 옆으로 난 바위에 올라서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다

조선소의 반대방향이다  일운면, 옥림,소동,지세포의 그림같은 풍경

 꼭 학교 갔다 오는 학생같은 모습이다 옛날에도 나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소녀는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고 ,다시 황혼의 문턱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가는 세월이 아쉽고 밉다

 이런저런 궁상을 떨면서 오르니  바위  위에서 조선소를 향해 내려다보며 멋진 데이트를 즐기던 부부가

깜짝 놀라며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 해 준다 ㅎㅎ 무얼 속닥거리다가 들킨 사람들마냥 ... 괜찮아요 푹 쉬세요

하고 말해도 우리더러 멋진 조망을 하라며 자리를 비켜 주길래 올라가서 조선소를 뚫어져라 내려다 보았다

 조선소를 내려다보니 35년이라는 조선소의 긴 역사가 다양한 이야기로 머릿속에 떠 오른다

꾸준히 노력하여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뒤따랐을까?

곧  대우조선소는 매각이 될 것이다

포스코,한화,GS,그리고 현대까지  4파전으로...조선인들의 지금 기분은 지금 착찹하다 마치 고3수험생의

기분처럼 ...지역민들도 마찬가지다 지역경제를 살리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경제의 원칙이 아닌가?

과연 10조원의  낙찰자의 행운은 어디로 튈 것인지 ???

 산에는   가을옷을 미리  갈아 입은  나무들도 있다 가을은 어느새 숲속을 단풍으로 물들인다

매미는 여전히 목청을 돋우어 앙칼지게 노래하지만 계절의  질서 앞에는 꼼짝못한다

 강아지풀이 곱게 익어간다 정자에서 강아지풀의 가을 이야기를 들어본다

 남편도 소년같다 무얼  그리 생각하고 있는지? 혹 옛날에 많이  좋아한 여학생이라도 생각하고 있을까?

가을만 되면 미치는 남자가 있다고 했는데 ...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숲속이 고요하다 , 내 기분도 가을을 닮아간다

 콩알보다 작은 빨간   열매들도 익어간다

이제 익히고 단단해지고 가을걷이로 가려는 시간에 잠시 머무는 열매들

 때죽나무 열매도 가을을 탄다

 저 푸르고 작은 열매들은 다 이름이 무엇인지 푸른 잎새밑에 가득 달렸다

별나게 생긴 버섯들도 곳곳에 우산을 쓰고 서 있다 꼭 어우동의이 쓴 모자처럼...

 하늘에서 보면 마음 심자를 닮아서 지심도란라 이름 지었다는 지심도가 왼쪽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장승포 항의 뒷쪽으로 보이는 섬 내도,외도가  곱게 떠 있다 외도이야기는 더 이상 이야기하면

오히려 식상할것 같아서 그냥 넘어간다

 이 돌무더기들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바로 14년 전 둘째아이가 여섯살 되던 가을 1994년10월 1일

그 날 밤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겼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시간에 아무런 준비없이 꼭 동네 산보가듯 아린 딸아이를 손 잡고 나가더니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10월은 밤이 일찍 내리는 계절이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갔기에..

 그리고 밤 9시30분경이었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받아보니 남편이 옥녀봉 산꼭대기에서 돌이 굴러서 다리를 다쳤다며 얼른 119구조대원이 출동하게 연락하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딸아이는 어찌 되었는지? 눈 앞이 캄캄해왔지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얼른 119에 연락을 해 보니 다 퇴근을 했다며

옥녀봉 꼭대기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난감하여 친구들한테 연락을 해 봐도 3일의 연휴라서 다 멀리로 떠나고 집에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나 이 일을... 피를 너무 많이 흘리면 목숨이 위태롭다는데 ...

급히  큰댁에 연락하여  잠 자고 있던 막내시동생과 사촌시동생을 달도 없는 밤에 옥녀봉 꼭대기로 올려보냈다

두 남자는 남편을 데려 온다고 죽을 고생을 하고  여섯살난 딸아이는 산길을 밤늦도록 기어서 내려왔다

그 날 밤 우리는  대우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다친 남편은 말할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밤에 산꼭대기까지 두번씩이나 오르락내리락 한

딸아이가 걱정되어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려가니 딸아이가 다친 배를 치료하고 말똥말똥 한 모습으로

응급실에서 아빠를 지키고 있었다 남편은 돌이 굴러서 앞서 내려가던 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구르는

돌을 가슴으로 감싸 막았고  ,딸아이는 다친 아빠를 구하기 위해서

 50~70m의 거리를 입에 후레쉬를   물고 험한 돌길을 기어서 다시 산꼭대기의 초소로가서

아빠의 시고 소식을 알리고  집에 전화까지 했던 것이다

남편은  그 날 사고로 발목 인대가 끊어지고 발 뒤꿈치살이  떨어져나가  병원신세를 한 달 이상 졌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딸아이의 침착함이 놀랍다 여섯살아이가 낮도 아닌 밤에  산꼭대기까지 혼자

올랐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깊은 밤에 기어서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초인적인 힘이 샹겨났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런 딸아이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흥분이 된다

10월의 흙덩는 건조하고  푸석거려서 자칫하면 돌이  쉽게 빠지고 굴러 다치기 쉽다

남편은 그때까지만 해도 옥녀봉이 그렇게 놓은 산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동네 뒷산정도로 생각했다니....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후

옥녀봉에 다시 오른다  14년 전  달도 없는 밤에  산비탈길을 기어서 옥녀봉 꼭대기에  올라 가서 초소에

근무하던고 있던 아저씨들을 보고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아빠가 많이 다쳤어요 " 하고 위험한 순간을 알리고

침착하게  다시  집으로 전화까지 한  보석보다 더 빛나는 아이, .딸아, 너의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오늘 산을 오르면서 딸아이가  조막손으로 기어 오르며 고통과 무서움을 참아냈을  그 현장에  서

보니   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지금도 그 때 일을 기억하는지가 궁금해서 돌아와서 물어보니 또록또록하게

대답한다

기억이 존재하는 날까지는 잊지 못할것이라고...

딸아이가 살아 가는 동안 더 큰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그날을 꼭 기억하며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 본다.

머리위로 고압선이 흐른다 조심해야겠다

 둣모습을 남기고 가는 부부들, 전망이  최고로 좋은 곳이라며 바위쪽을 비켜주며 꼭 올라 가 보라고 하였다  

 내가 올라보니 과연 멋진 세상이 발 아래에 확황홀하게 펼쳐져 있다

남편은 이미 정상으로 올라가서 각시가 뒤따라 오고 있는지 걱정도 않되는지???

혼자서 10분도 더 머물렀다 동영상을 찍느라고...그 무엇도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 ...

 더디어 정상이다  철탑이  우뚝 서 있는 저 자리가  14년전 초소가 있던 자리란다

저녁에  준비없이  산꼭대기에 올라서 초소의 아저씨들한테 저녁대신 라면을 얻어 먹고 하산길에  사고가 났고 입에 후레쉬를 물고 기어서 다시 산꼭대기에 오른 날, 얼마나 기었던지 배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줄줄 흘렀던 딸아이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옥녀봉을 오른 것은 나에게도 소중한  체험의 기록이 될 것이다

 

 정상에 올랐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다

 옥녀봉은 해발 554,7m며 능선을 타고 2시간 정도 서쪽으로 가면 국사봉에 도착한다

거제도에는 산행로의 대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섬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거제지역 종주구간이

뚫렸기 때문이다 섬의 최 남단인 망산에서 출발하여 북으로 가라산~노자산~북병산~옥녀봉~국사봉을

거쳐서 대금산으로 이어지는 총 52km 구간이 걸어서 2박3일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고  한다

거제지맥을 대우조선해양(주) 의 산행서클인 '우정알파인클럽'(회장 김상철)회원들이 3개월여에 걸쳐서 다리 품을 팔아 개척한 땀의 결실이라고 한다(Dokdo의 산으로 가는 친구들 카페에서 발췌)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을 추가하면  섬의 끝단에 위치한 산방산에서 계룡산~선자산을 거쳐서  북병산과 연결되는 동서 횡단로가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같은 방대한 대역사가 올 해  완성 될 경우 아름다운 섬  거제도를 수 백리 능선을 따라서 거제 일주가 가능해지며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각광 받을것이라고 하니

가슴 설레이며 뿌듯해지기도 한다. 산행을 조금 더 잘하게 되면  거제도 종주를 시도해 보고싶다

 다시 대우조선소를 내려 다 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느 카페에서 읽어 본 글이 생생하게 웃음을 주길래  옮겨 본다(추억의  개그하나..)

 

사회수업시간에 충무공 이 순신 장군에 대한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께서 한 학생에게 질문을 하였다

골통여: 네

김교사 "골통아,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지?

골통여: 네 저는 안 만들었어예

골통아, 조금전에 선생님이 설명하지 않았니 누가 거북선을 만들었나?

골통여: (울상을 지으며) 선생님, 저는 절대로 안 만들었어예  어엉엉(기어코 울음보를 터뜨리고)

김교사: (화를  내면서)너 집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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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통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와 불렀습니까?

김교사:(화를 삭히며) 어머님, 여차여차해서~ 라고 설명을 한다

골통모" (빙그레 웃으며) 아유 선생님도 우리 골통여는 꼬아가면서 물으모 답을 잘해예 잘 꼬아서

물어보모 지가 만들었다고 할낍니더 내가 잘 타일러 둘테니 선생님이 다시 한 번 더 물어봐주이소

김교사???????

 

참내  나도 거북선을 골통여가 만들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ㅎㅎ

 

거북선은 조선 태종 때 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임진왜란 때 '배설' 이라는 장수가 만들어서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거북선은 거제도의 칠천도쯤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

거제도는 삼국시대전부터 배를 많이 만들었다 물론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만들었는데

장승포의 두모,아주,하청,외포, 칠천도 등 거제도의  곳곳에서 배를 만들어서 사용하였고 그 기술이

오랫동안 이어져서 지금은 세계 제일의  조선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당연히 거북선도 거제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임진 왜란 때 사용했던 거북선이 침몰하여 칠천도 해협 어디엔가 묻혀 있다는 말이 떠 돌아다닌지

오래다 정확한 것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과연 침몰한 거북선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어쨋거나 거제도에  조선소가 들어와서  발전하게 된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산행일기를 쓰냐고 물으면서  궁금해 하던 두 아지매들...

무엇이 그리 궁금했을까? 빤히 쳐다보다가 철탑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아저씨는 누구실까? 사진을 찍다 보니 ㅎㅎ 귀에 하루살이가 들어갔는지???

 

 하산길에  본 '산이 좋은 사람들'. 산악회 이름이 멋지다.

 국사봉으로 가도  좋을것을....

 외국인을 만나서 인사도 건네고 ....반갑다고 활짝 웃어주고 갈길을 떠났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도...

 

 산에 오르다가  셀카 찍었던 '나 홀로 다방'의 풍경

 휴, 옥녀봉을  올랐다가  기분좋게 내려왔다

오늘 옥녀봉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지  잠시 생각 해 본다

아 ~참 삼각점이 있었는데  사진에 담지 못했다는 기억이 스친다 내용은  조금 기억이 난다

191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삼각점이   옥녀봉 꼭대기에 있었다

대마도의 유명산과 부산 영도 봉래산, 그리고 거제도의 옥녀봉을 관측하여 설치한 것으로

이 두 삼각점을 기점으로 전국이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토지조사를 시행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삼각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공하려는 의도에서 실시한 것이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벌초를 끝낸 아저씨,기분좋게 땀에 절은 옷을 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는 모습이 시원하게 보인다

할일을 다한 사람의 뒷모습은  느긋함이  풍겨난다  

 

산을 바삐 내려와서 우리도  조상님의  산소를  벌초 하려고 

차를 타고 달려 갔다. 

 

옥녀봉을 다녀 와서 ...(산행소요시간 약 3시긴)

 

옥녀봉의 산행코스는 다양하여 등산로가 6~7코스가 있다고 하니   혹시 오를 분이 계신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