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여름의 끝에서 유성을 보다

이바구아지매 2008. 9. 28. 06:33

뜨거운 야성의 여름

육체의 반란으로부터 돌아와

등불가에 호젖이 앉아

한 편의 시에 고이 입 맞추는 시간!


금빛 해변을 방황하던

나의 잃어버린 발자국들은

섬돌 밑에 졸라맨 구두끈을 푼다.


안녕! 인사도 감미로웠던

여름은 미완성의 사랑 속에서

고요히 작별을  고하고

유성이 흐르는 밤

피로한 손길을 흔들며

하얀 손수건처럼 젖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씩 풀어 바람에 날리는 것

쓰르라미도 목을 푸는 밤

계절이 지나는 언덕에 앉아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생각하는 갈대의 흐느낌 소리에 귀 기울인다.


벌써 시작된 이별

새들은 하늘 높이 긴 여행을 위하여

그 지친 날개를 가다듬고

9월은 여름이 가기 전

밤을 새워 가며 별들의 애길 들려준다.


사랑은 모래사장에 찍고 온

쓸쓸히 비 맞은 맨발의 발자국!

지난여름이 새겨 놓은 맹세를

푸른 파도가 밀어와 깨끗이 지워 버린다.


아듀 여름이여

안녕 사랑이여. <옮긴 글>

 

**끝내 여름은 그리 갔나 보다

내게 유성의 찬란한 죽음을 보여 주고...

 

나도 이제 나이를 좀 느끼나 보다

일찍 잠 들고 나면 새벽에 눈이 저절로 뜨이고  말똥말똥  해 진다

한 참 눈이 부시게 햇살을 쏘아대도 부비대면서 이불속으로 기어들던 때가 있었는데...

 

열린 창문으로 소슬바람이 들어오더니 볼을 간지럽힌다

이내 잠이란 녀석은 아침에 쫓겨서 허둥대는  도깨비처럼  달아나 버리고

사랑보다도 육체의 훈훈함이 무서워서 서로를 밀쳐내던 여름은 갔다

다시 내 이불속으로 온기를 느끼려고  두 다리가 더해오고...

 

어제 있었던 일,오늘 할 일,그리고 인생이란 시간속에 우리들의 삶을 계획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소슬바람도 이젠 춥게 느껴지네"

"지난 여름에 불어 주었으면 참 좋았을걸"

어둠속에 대화가 이어지고, 토요일이 다가오고...

마주 바라보지 않고도  나누는 대화가 편안하다

별들이 창가로 몰려들어 우리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훔쳐 듣는지...

 

우리들의 눈은 갈수록 총총해져서 별을 닮아 가고

별들이 샘이 나는지 곧  심술을 부렸다

갑자기 창가로  꽃불하나가 사선을 그리며 바닷가 어디로 떨어지는 듯

"아니 유성 이 ???"

"유성이 흘렀어 누군가가???"

"유성이 떨어지는 밤"

"유성이 흐를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지랄, 아직도 그런 걸 믿나?"

"좋은 건 믿고 불길하거나 얄궂은 건 안 믿고 싶거든"

"이제 확실하게 여름끝, 가을인가보다"

"근데 유성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죽는다고 했는데..."

"그래 여름이 죽고 , 가을이 태어나고..."

 

아무일 없이  아침이 흐르는가 했더니...

따릉따릉...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이고 에미야,  우짜꼬 죽었다"

"누가예"

"너그 이모가 안 죽었나 오늘 새복에..."

어머니께서   눈물바람으로 슬픔을 알려 주신다.

 

"야야, 이 무시 한개 무 볼래 참 맛나다 달큰하다

그라고 알라 좀 업어 주꺼마 업히 도  에구 알라 보랴 가게햐랴  얼매나 바뿌것노"

라시며 있는 듯 없는 듯 다정다감 하셨던 이모님.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몰라 허둥대며 살려고 발버둥치던  내  모습을  근처에 살면서

작은 보탬이 되어 주셨던 시이모님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

내가 가장 힘든 시기를 살고 있을 때  친정엄마같은 따스함을 주셨는데...

 

 

 

여름이 죽고,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시절, 여름밤에 유성이 떨어지면  그 자리로 찾아 갈 희망을 이야기했고

처녀가 되었을 때 유성이 떨어지면 연애질에 낭만이 가득했다.

이제 나이 좀 들어서 새벽잠이 달아날 시각에 유성이 떨어지니

여름이 죽고, 사람이 죽는다 ...

 

오늘은 오지게 울어야겠다.

퍼질러 앉아 땅을 치고 울어야겠다,  목이 쉬어 까스명수를 들이키면서

눈이 팅팅붓도록 울어야겠다.   오랫동안  소리 내어 울어보지 못하였으니  

기회가 왔을 때  미친년의 모습을 빌려서라도 ...

어른이 된다는 건 시도때도없이  큰 소리로 울지 않는것이었다.

혹 큰 소리로 울면

"저거 엄마가 죽었나? 어디 초상났나"

그래서 가슴에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었다.

 

내가 운다는건 슬퍼서  울기도 하겠지만 그 동안 울지못해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도 되는것이다.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통곡같은 울음을 토해냈고

이번에 또 펑펑 울 기회를 잡았다.

어른이 되어 보니 소리내어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오지게 쌓였었는데...

 

사흘장을 치룬단다

여름이 죽었으니까

이모가 죽었으니까...

 

사람은 죽으면 산으로 가서 영원토록 안식을 취한다

 

흔적도없이 사라지는 여름과

발견못한 유성의 잔해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남을것 같다

마치 풀지 못하고 남겨 둔 오래 된 숙제처럼...

 

 

유성과 함께 떠난 그들이 내 안에서 가을을 또 오지게 타게 하고

 심한 몸살을 하게  만들겠다.

 

(2008년 9월 9월26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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