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런 이야기

이바구아지매 2008. 10. 1. 04:37

갑자기 시장에 가고 싶어진다

저녁 시간에...

가끔은 그런 날도 있다

살것도 없는데...

마음이 시키는대로 나가 볼란다

휴대폰 하나만 달랑 들고 ...

 

옥수동의 밤은 울긋불긋하다

촌스런 네온불빛이 춤을 추고...

초저녁부터 뒤죽박죽이 된 거리의 나태해진 모습...밤이 조금만 더 깊으면

미친년 흐느끼는  차림으로 물들게다

건너편 뻘구덕(어주 오래 된 술집, 여자들을 데리고 장사하는 빨간 술집)땜에

누가 이름을 딱 맞게  잘 지었는지(이곳에 처음 이사와서 남편이 한번 된통 혼이

났던 적이 있는 ...뻘구덕의  화장실에 잘못간 죄로...)

 

발결음도 가볍게 하늘을  올려 다 본다

별도 있고 달도 있다

달빛같은 가로등  대여엿개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초혼미용실 앞을 지나간다

하얀 도복차림의 빼빼마른 아이가 아버지의 부축을 받고 길을 건너온다

"조금만,조금만  옳지 잘했어 우리 아들 정말 잘 했어"

아이의 아버지가 감동한 표정으로 싱글벙글 하면서 "잘했어"를 연신 내뱉는다

불빛가까이로 두 사람과 거리가 좁아지자   태권도 도복차림인 아이는 아주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서 걸을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한 아이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한발짝씩 뛸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인 남자아이...근처에서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

 

막 새 도복을 입고 처음으로 태권도장엘 가는 길인지...

시장근처에 있는 '우호체육관' 으로 가기 위해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비비꼬인 다리를 지탱하느라 반쯤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휘청거리는 모습

아이의 몸상태로 보아선 2층에 있는 체육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위를

어찌 오를지?

계단 위를 오르다가 두 사람이 뒤로 나딩굴까봐 내 간은 이미 쫄아질대로 쪼그라진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필사적으로  힘을 다하는 모습,

아이의 다리는 너무 가늘어서 발자국이 제멋대로

휘휘적거리고,..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속을 가른다

 

격려를 끝없이 해 주는 아이의 아버지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아이

두 사람이 힘 모아  계단위로 한걸음한걸음씩 오른다

지켜보는 내  손이 주먹을 쥐고 힘을 모은다

아이와 아버지가 한번 휘청거린다

경사가 무척 심한 계단위로 간신히 내 딛는  두 사람

"아들, 화이팅"

하고 또 한번 소리치는 아버지

말없는 아이

아마도 아이는 말도 못하는가 보다

 

땀 뻘뻘 흘리며 2층에 있는 체육관 계단위로 오르는 부자간의 아름다운 모습

이내 아이와 아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되고...

드디어 체육관의 문을 여는 소리가 나고

안에서 들려 오는 박수소리가 밤 하늘로  솟아 오르고...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난다

 

 

내 앞에서 벌어진 아름다운 풍경

오랫만에 내 가슴속에서   사랑이란  붉은 덩어리 하나가 울컥 솟는다

 

갑자기 .시장에  가고 싶더니...

 

(2008년 9월 30일 옥수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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