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집으로 ...

이바구아지매 2008. 10. 6. 09:29

등 굽은 할매가 엎디어서 집으로 간다

숨줄이 가파서 서너발짝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 ...

 아스팔트 고개넘어 집으로

밭에서 캔 상추, 고추 팔고 ...

 새벽부터 진잎떼고 안 씻어도 먹을만큼 야무지게 다듬어서 식당에다 넘기고   5,000원 벌었다

차 타면 2,000원 날라가니 그냥 걸어간다  수십번 쉬었다가 다시 걷는다

푼돈  모아서 적금 부어 엄마 없는 손자  상급학교 보낼 학자금 마련하려고

목이 타서 갈증나도  참고 간다

무릎아파서  차 타고 가고 싶어도  꾹 참고...

 

가는 길이 더디고 지루하니  부아가 치밀고 몇년 전에 암으로 죽은 딸년을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난다

"자네랑 나이도 똑 같네 살았으면...

맴씨도  착하고  용돈도 잘 주더니만...하늘길 먼저 갈라고 그랬는가베"

할매는 눈꼽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눈가를 주름진 손으로 훔친다

삼밭에(마을 이름)도 지나고 마전동도 지나고 , 얼추 옥림 고갯길에 올라서니'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쉰다

바다를 보니 반갑다 늘 보는 바단데... 일흔여닯살  할매가 바라보는 가을바다는 잔잔한 호수같다

" 요 바닷가에서  젤로 작은 집이 우리집아이가   옛날에는 우리동네서 젤로  크고 좋은 집이었제

요새는 우리집이 젤 험하고  볼품없어졌는기라 나는 아직도 불 때서 밥 해 먹고 살제

저 봐라  집들이 얼매나 좋노 나는 딸 여섯인데 죽은 딸이 젤로 잘 살고 나한테도  참 잘 했어

 그 딸이  죽고나니 요모양이야...

앞에 저 멋진 집에는 , 큰 아들이   의사라서 돈도 마이 벌어 억시기 부자고 딸들도 다 잘 살아 저 봐 집들이

 얼마나 멋진고  어데 미국가서 보고  와서 지은 집인데  뭐 펜숀이라쿠더나 맨손이라쿠더나

그거사 잘 모리것고 꼭 영화속에 나오는 집 안것나  요새(요즘)는 촌에도 집을 잘 지어서  놀래거로 멋진기라

옛날 임금님도 저리 멋진 집에서 몬살아봤을거로?"

할매는 조금 전에  내가 준 콩사탕 한 알을 입에 넣더니  볼우물을 파며  달고  맛있다며 씽긋 웃는다

"아스파르또(아스팔트) 길은 걸어보모 다리가 더 쎄기(빨리) 아푼기라 그래도 오늘은 자네덕에

수월하게 왔는기라

죽은 우리딸캉 나이가 같다쿤께 나사마 눈물이  더 나네 죽은 딸이 살아온거 맹키로...."

 

 

 

길에서 등 굽어서 걷다가 일어섰다가 또 걷다가를 반복하는 

무지 걷기가 힘들어 보이는 할매를  보고 따라 걸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할매는 다라이와 검은 우산을 들었다

어디를 다녀 오는 길일까? 혹시 시장에?

 

 

비가 촉촉히 내리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그냥  그렇게 걸어간다 

 

 

"할머니, 어디가세요 ?"  

"바로 저 바닷가 동네로 안가나"

"바닷가면 옥림? 소동? 구조라? 와현?"

" 옥림 갯가(바닷가 마을)에 안 사나"

'"할머니, 뭐 하고 오세요? 비도 오는데 군불때서 아랫목에 누워서 지지시지?"

"상추하고 고치 좀 넘기고 안 오나 식당에서 갖다 도라캐서"

그럼 얼마나 받으셨어요?"

'요 다라이에 한 다라이 상추하고 고치 좀 하고 갔다 안 주었나

그랑깨 5,000원 주더마는...고마 넘긴거 아이가"

"가만 너무 싸지 않나?"

"그래도 오랫동안 정해놓고 넘기는 도꾸(단골)이라서  고마 괜찮다"

 

 

옥림마을에도 비가 추적거린다

 

 

"ㅎㅎ  할머니, 아까는 계속 엎드려서 걸어시더니 이제는 꼿꼿하게 서시네요"

"그렇제 나가 아스바르또길 고개에서는 심(힘)이 들어가 똑 바리 서서 오모 고마 숨{숨쉬기)줄이

가파서로 절절맨다 나(나이)가 많은께 질(길 )걷기도 예삿일이 아닌기라

그래도 어데 가는고 모리지마는 자네랑 같이 강께 영 수월하다"

"길동무가 생겨서 그렇죠 ㅎㅎ"

'할머니 자 이 사탕 드세요 콩사탕이라 고소해요 자 아 해보세요 "

"아이구 고마버라 괜찮은데..."

 

 

할매는 줄줄줄 살아 온 인생을 이야기 해 주시고 

몇 년 전에 암으로 죽은 딸이야기를 하시더니 눈물을 닦으신다

 

 

넓고 넓은 바다. 그리고 작은  밭대기에도 비가 내린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  

펜숀이라쿠더나? 맨숀이라쿠더나?

 

 

할매의  이웃집은 그림같은 집이다 

 

 

할매는 이렇게 집앞까지 다 왔다

코스모스가 가득 핀 할매의 작은  집 빨간 지붕이 살짝 숨바꼭질 한다

 

 

이웃집 옥이를  만나서 어디 가느냐고 물어도 보고...

 

할매는 이제 군불때고   다리 쭉 펴고  한 숨 낮잠을  즐기실게다.

(2008년10월 5일 옥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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