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섬은 거제도...태어나서 자라고 학교다니고,,,그러던 순간에 철이 들고 희망이 생기고
나도 섬을 떠났다 섬을 꼭 따나야 할것 같아서... 서울생활에 실패하고 다시 섬을 찾아들었다
고향이라는 이름으로...아들,딸 낳고 소박하게 ...그 섬에 살고 있다
2008년10월 07일 저녁 19시 30분에 연극 '거제도'를 보러 갔다
일찍 저녁을 챙겨 먹고 장승포 부두를 한 바퀴 돌고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어둠속에서 꿈 꾸는 곳, 그래서 낮보다 밤 바다가 훨씬 더 매력적인
장승포의 밤을 느끼면서
촐래촐래 마음을 살찌우러 가는 사람들이 밑그림을 곱게 그려주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스님까지)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으로 향한다.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리얼했던 공연의 실제 모습을 담지 못하고
연극이 끝나고 나서야...많이 아쉽다
이장 옥치조(이삼우분) 역을 맡아서 열연하던 그의 대사가 절절하여 가슴이 울컥했다
"내가 아직은 사지육신 멀쩡하니까 '땅'만 있으면 산다.
살고말고 사상이고,전쟁이고 미국놈이고 아무리 날뛰어봐라.
그대로 엎어져 있진 않을끼다.
보란듯이 또 일어날끼다."
세상의 요란함에 정신을 놓아버려 미쳐버린 옥치조의 아내 이옥례(천경란분)의 절규도 내 눈물보를 쥐어짰다
"양갈보 가시나랑 시커먼 미군검딩이가 벌거벗고 담요 욱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아이요.
얼매나 놀랬는지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이말이라요"
전쟁과 사랑과 이별이란 방정식을 성립하리란 뻔한 상상력만 가져 갔던 나의 오류를 수정하고
탄탄한 원작(손영목) 과 열연하는 배우들, 그리고 연출,각색 모두 최상의 알찬 연극으로
중앙무대에서도 기립박수 갈채를 받으리라는 확신이 들던 작품이었다.
작품줄거리...점점 늘어나는 포로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대단한 규모로 거제도에 지은 '포로수용소'그 때문에 땅을 뺏기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장 옥치조의 집에서는 징집되었다가 다리가 불구가 된 큰 아들이 돌아오고 읍내로 돈을 벌러 간 큰 딸
덕에 온 가족이 먹고는 살지만 이런저런 충격으로 아내가 실성하고 만다 .
수용소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던 그 시대 나약한 국가와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 전쟁안에서 모든 개인은 초라했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
1950년 11월27일, 거제도 고현,수월,양정,상동,용산,해명,제산 지구를 중심으로
360만평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였다
거제도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일절 무시된 채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 시설에 인민군15만,중공군2만,여자포로와 의용군3천명 .등
17만3천명을 수용했다. 그 당시 거제에는 주민 10만명, 피난민약15만명,
포로 17만명 등 약 42만명이 거주했다.
수용소 안의 포로 가운데 반공포로와 공산포로 간의 반목이 극심했다 이유는 유엔군측이
1949년 채결된 제네바협약의 원칙을 위반하고포로들에게 본국귀환을 포기시키려고 협박과 고문을 하자 공산포로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이과정에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또한 5월7일 아침에 수용소장 F,T. 돗드 준장이 76포로 수용소 시찰중 납치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후임인 찰스 콜슨이 돗드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5월 9일 고현지구 민간인 1,116세대에 대해 24시간 이내에 다른 곳으로 강제소개명령을 내렸다
명분은 납치사건 및 폭동은 민간인과 포로 간의 접촉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정든 땅과 집을 버리고 3년 동안 피난 아닌 소개민으로 생활하였다
전 세계가 주목했던 이 폭동은 돗드 장군이 납치된지 4일 만에 미국의 잔학행위를 인정하고서야
석방됨으로 일단락 되었다. (포로수용소는...옮긴 글)
연극의 의미
연극' 거제도'는 고현만과 독봉산, 중통골 바다, 수월지구 그리고 미군, 흑인 을
상대하는 술집이 있었다는
연초와 , 검둥이와 양공주이야기, 거제도에서도 소설이나
영화같은 풍경들이 마구 넘침을 모은 기록
6,25 전쟁 후 의 모습, 바로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극단 예도가 피나는 노력으로 무대에 올린 , 부제 '풀꽃처럼 불꽃처럼'은
실제로 포로수용소가 들어오면서 땅을 마구잡이식으로 빼앗기고
집이 불태워지고 가정이 와해된 전쟁직 후 거제도포로수용소 근처의 주민들이 겪은
아픈 상처와 고통을 연극으로 녹여냈다.
더 늦기전에 조금 더 깊숙하게 포로수용소가 남기고 간 흔적을 고스란히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의 연극으로 깊어 가는 가을의 서정을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 CAST: 이삼우, 천경란 주은희 김재훈,양해지,김혜민,권민지,김혜인,소길호,손민정,서강용,송대영,김종철,신수영***
님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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