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들놀이

이바구아지매 2009. 4. 24. 17:21

농촌을 바라보면   언제나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둘중 하나의  선택이다.

나와 상관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평화롭고 한가롭고,   잘 그려놓은  풍경화 같은데...

등 굽히고 뻘구덕에서  오금이 저리도록 일을 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농사꾼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 해 진다.

보릿고개부터   출발하여 힘든 고개란 죄다 넘어 온 우리들의  아버지,어머니,..

아직도 등 펴고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린 채  뻘구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혜아지매,아저씨.백령도아지매 ...

쪼금만 참으이소 며칠뒤면 어버이날이니 영혜랑,다 달려올거라예

맛난 과자며 선물 가득 챙겨서

가슴에 꽃도 달아 드리고예...

그 때는 활짝 웃으시겠지예?

날마다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다가 그날만큼은 아픈데도 싹 가시고... 미소가 흘러나겠지예?

쪼금만 쉬었다 하이소

파란 하늘에 둥둥 떠 가는 구름은 또 어디로 가는지  실눈 뜨고 살펴봐도 좋고예

ㅎㅎ 구름방석에  앉아 요술봉 휘두르는  손오공도 한번 살펴보고예

구름 저 편,  이웃에 살던 예쁜 순자얼굴도 함 그려 보고예...

고마 '들놀이' 한다고 생각하이소..

그렇게 생각하면 참 멋진 ' 들놀이'...아니겠습니까???

 

 

 

 

 

 

 

 

 

 

 

 

하얗게 빨래꽃은 또 언제 피웠는지? 부지런하고 시간관리 잘하시는 ...

새벽4시면 어김없이 깨어나는 송정리 사람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느냐?"

게으런   놈을 이렇게 불러 일깨운 '약천 남구만'이 말년 관직에서 물러나서 전원생활 중 썼다는

그의 멋진 한시 한자락도 송정리 사람들한테는  해당없음이다..

 

 

 

 

 

 

 

 

 

 

 

모란이 필때면 역사 저편에 살다간 선덕여왕이 생각난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재미없으니  ...선덕여왕과 모란꽃 이야기 하나 살짝  !!! .

 

선덕여왕은 코가 막혔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저자인 김부식과 일연스님은 냄새를 맡지 못하는 무후각증(anosmia)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40대 전후 상당수는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선덕여왕과 모란꽃’ 이야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라 진평왕(서기 7세기 전반) 때 당 태종이 모란꽃 그림과 종자를 신라에 보냈다. 꽃 그림을 본 덕만공주(훗날 선덕여왕)는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왕은 이유를 물었다. 공주는 그림에 벌이나 나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씨를 심어 보니 과연 공주의 말이 옳았다’고 적었다. 원산지가 중국인 모란을 본 적이 없었던 1300년 전 덕만공주야 그림만 보고 ‘모란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기록한 김부식이나 일연스님은 사실 관계 파악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지은 글을 보아도 모란이 고려시대에는 무척 ‘대중적인’ 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아가씨가 모란꽃을 들고 서방님에게 물었다. 내가 고와요, 꽃이 고와요. 서방님은 꽃이 곱다고 했다. 아가씨는 그럼 꽃하고 사세요 라며 들고 있던 모란을 짓밟았다.’

김부식은 12세기에, 일연스님은 13세기에 살았다. 두 사람의 저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따른다면, 모란이 중국으로부터 온 지 최소한 500년은 지난 시점이었다. 이규보의 글에서처럼 모란은 아가씨가 발로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때였다. 역사 기록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한데 중국인들은 왜 모란그림에 나비를 그리지 않았을까? 조용진
서울교대 교수는 “동양화에 등장하는 소재는 저마다 의미가 있다. 때문에 동양화는 볼 뿐 아니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문헌에서부터 ‘꽃 중의 꽃(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불리던 모란은 그 화려함 때문에 부귀를 상징했다. 나비는 한자로 蝶(접)이다. 한데 80세 노인을 나타내는 ?(질)과 중국에서는 같은 발음인 ‘뎨’로 읽는다. 때문에 모란과 나비를 그리면 “80세에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된다. 한데 80세 이전에는 어떻다는 말인가? 이때 등장하는 게 고양이다. 고양이를 나타내는 猫(묘)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와 발음이 같다. ‘마오’라고 읽는다. 때문에 모란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려 넣어 “70~80대에 이르기까지 장수하며 부귀를 누려라”고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도 “모란에 나비만 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이 죽기 전,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적었다. “모란만 그린 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남자)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선덕여왕은 죽을 때까지도 동양화 읽는 법에 서툴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물론 당나라에서 선덕여왕의 통치를 낮잡아 본 것은 사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 당으로 건너간 신라 사신에게 당 태종은 “그대 나라는 임금이 부인이어서 이웃 나라에서 업신여김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 <조선일보/신형준 기자 2007.9.4>...옮긴 글

 

 

 

뽕잎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고 보드라운 연잎이 토들토들 투박하고 거칠어지면  뽕잎사이로 오디가 익어가더라

시커멓게 ...아 그 잊을 수 없는 맛 그런데 누에는 왜 그 맛난 오디를 안 먹을까?

...사람들이 안 주니까 못 먹었다...

 

 

 

허수아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서면 허새비라고 부르더라.

 

 

 

취나물

 

 

 

 

 

 

 

 

이게 들놀이가 아니고 뭔가?

'돌나물 뜯기놀이'지...맞제 ...어머니의 말씀.

 

 

 

 

 

 

 

 

 

 

 

모든 일에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로 한다

농사일처럼 ...

 

 

 

 일할때는 힘들고 짜증이 몽글몽글 나지만 막상 일 끝내고는 여간 뿌듯하고 흐뭇한지...

일한 결과가  보람으로 다가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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