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씨를 땄습니다
길 가 어느 한적한 외딴집앞에서 하얀 봉지 벌리고 꽃씨를 따 담았습니다.
잘 익은 봉숭아꽃씨는 손이 닿자마자 털부숭이 꽃씨주머니를 톡 터뜨리며 또르르 말려 버렸습니다.
반쯤 달아난 봉숭아씨들이 반란을 일으켰죠
다른곳으로 옮겨 가기 싫다고 ...
하지만 내년에 또 다른 시골길 한적한 곳에 봉숭아꽃이 피어나면 좋겠다고 결심을 한 사람들이 끝내
요 봉숭아꽃씨를 훑어내리게 하였지요.
봉지속에 갇힌 꽃씨들이 촉촉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습을 보니 슬몃 이런 생각이 드네요
꽃다운 17~18세가량의 조선의 딸들이 슬픈 모습을 하고 일본으로 끌려가는 풍경이... 위안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끌려 간 봉숭아꽃을 닮은 처녀들...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봉숭아꽃씨들을 쏟아 버릴까~~
라는 순간적인 엉뚱함으로 하던 일을 그르치려고 합니다.
봉숭아꽃은 왜 그리 슬픈 꽃으로 기억이 되는지...
내 아버지께서 죽을만큼 사랑했던, 그러나 이루지 못한 슬픈사랑도 봉숭아꽃을 닮았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의 학생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일본의 여학생이랑 ...
말도 안되죠 그 당시에...할아버지의 애국적인 반대에 쾅 부딪히고...
다시강제소환으로 현해탄을 건너서 돌아 온 내 아버지 ..가끔씩은 술 힘을 빌어서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하고 구슬피 노래부르시던 모습은 두고두고 가슴 아리게 하였습니다.
"사의 찬미" 를 현해탄에 남겨두고 바다로 떨어져버린 윤심덕을 백번 이해한다시던...
내 아버지의 이루지못한 사랑의 빛깔도...
원나라로 끌려간 충선왕이 역시 조선에서 끌려 간 궁녀가 손톱끝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세월을 하염없이 죽이고 살아야했던 그녀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짠하였을지...
봉숭아 꽃씨를 따다보니 별별 생각이 다 기어드네요
고 작은 꽃씨하나로 인하여 생각이 훨씬 복잡해지죠.
시대배열도 두서없이...
그렇게 8월이 끝자락을 보이는 날 소지맘이 꽃씨를 가득 닸습니다.
서러운 꽃씨를요...
잘 익은 봉숭아꽃씨가 손톱 살짝 갖다대면 '톡 '소리내며 씨들은 저 만치 먼 세상밖으로 달아납니다.
슬픈 자유를 찾아서 ...
손톱에 꽃물을 들이면 참 예쁘겠죠. ..
봉숭아꽃의 친구 ...백일홍이도 고와서 서럽습니다.
호박이 대롱대롱 ...심심한 슬픈 꽃의 친구 호박이도 함께랍니다.
역시 봉숭아꽃은 장독대 근처에 있어야 제일 잘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울밑도 좋구요 .
사람들은 말하죠 손톱끝에 봉숭아꽃물이 곱게 잘 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구요
요번참에 소지맘도 봉숭아꽃물 한번곱게 들여 볼랍니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날에도 변함없이 엷은 빛깔로 고운지도 확인 해 보아야겠지요.
아 참 그런데 거제도에는 하얀눈이란것이 잘 내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때는 소백산으로 가볼까요 ㅎㅎ
고 작은 꽃잎하나가 슬프거나,굳건하거나 ,아릿하거나 하는 자글자글한 이야기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힘, 정말 대단하죠
그러니 뱀도 놀라서 도망을 가겠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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