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화수분이 있던 자리

이바구아지매 2011. 1. 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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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가끔씩 출근길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곳에 들렀다 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화수분, 아무리 보아도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오늘도 무심코 찬바람속으로 걷다가 따끈한 커피가 생각나서

그만 화수분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문은 까딱도 않고  쓸쓸함만 묻어납니다 

" 아참 이사를 갔지"

  이런 젠장, 된장, 고추장입니다 

 너무 멀리로 가버렸군

혹시 화수분네가  이사를 간 이유가  앤이 너무 자주 들러 커피를 마시며

일에 지장을 줄만큼 늘어놓는  수다에 동참하느라고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어느 날  몰래 이사를 갔을까?

그런 생각도   살짝 스칩니다 ^^*

 

 

출근길,  집을 나서  5분정도를 걷다보면

이곳에 도착하고 이즈음에서  늘 그렇듯  커피가 생각납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동안의 행동이 무조건 반사를 일으켰나 봅니다

도시는 바다에서 소금기벤  겨울바람을 휘몰아 노출된 얼굴에 염치좋게 쏟아붓고

톡톡쏘는 아픔이 느껴지는 찰라지만 습관처럼 이곳에선 커피가 간절하게 생각납니다.

 

평소처럼  굳게 잠긴 문안을 들여 다 보니 텅빈 가게가 쓸쓸합니다

이 곳을 급하게  떠난 주인은 미처 자신이 하던 가게의 흔적을 완전하게  지우지 못하고 갔나봅니다

 

몇개의  빈화분과  생일선물로 줄 꽃다발을 만들었던 흔적도 나딩굴고

혹은 길건너 새로 생긴 '친절한 약국' 으로  예쁘게 단장한 꽃화분을 보냈는지

총총잘리워진 금박지 짜투리와  리본조각이 바닥에 널부러진 채  딩굴고 있습니다.

날마다 지나칠때면 습관처럼 들리던 화수분을 그냥 지나가려니

정말 허전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희뿌연 유리창너머로  길게 뻗어 나간

 골목길을 닮은 길게 생겨먹은  가게안의 풍경을 한참동안  들여 다 봅니다

좀처럼   햇살이 빨리  들지 않아  깊숙한 골짜기를 닮은듯도 한 가게 안은  썬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리에 눈을 쳐 박고 한참을 부벼대야 겨우  안이 극장안처럼 조금씩  밝아 옵니다.

 그런 풍경을 즐기기라도 하듯 들여 다 보고 있노라면 골목길 같은 가게에서   그녀가  

 책상에서   꽃을 만지다가,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혹은 리본을 접다가 그녀 역시

무심코 창밖으로 눈길돌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쫓다가  창문에 코 처 박고

안을 들여 다 보는 또 다른 눈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럴라치면 그녀의 하얀 이가 먼저 알아보고  씨익 웃음 쏟아 냅니다. 

그런 놀이도 참 재미있었는데 ...

"들어오세요  바깥날씨 엄청 춥죠 ?  언손 녹이고 커피한잔 ~"

이랬어야 했는데...

정말이지 찰떡,보리떡,쑥떡,개떡입니다.

이런 날은 마음도 텅빈 겨울 해변같습니다

이곳에서 화수분이란 간판을 달고 꽃가게를 했던  몇년동안 꽃집은 날로   번창하여

재물이 자꾸 생겨나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큰돈항아리 하나 묻어 놓은  줄 알았습니다

꽃집 이름은 중국의 진시황때 있었다는 하수분(何水盆)에서 따온 이름이었는지?

아니면 소설가 전영택의 화수분을 따온 이름인지?

그녀는 꽃가게 이름하나도 석달열흘 정성들여 지었을겁니다.

이만큼 느낌이 좋은  상호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보면 아직도 꽃집아줌마보다는  선생님이었고,  기자였을때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다른곳으로 옮겨 간 화수분은 봄같은 햇살이  꽃집으로 날아들어

안개꽃은 더 하얗게 피어나고 , 후리지아꽃은 더 노랗고 피어나 

꽃다발 만드는 그녀의 기분이 스르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 장미가시가  박히는 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녀가 새로 옮겨 간 곳에서도  물건을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로운 항아리 하나  꼭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밟고 서 있는  이곳은   옛날 옛날에  바다였습니다.

어느날부터 바다를 메꾸고 매립을 시작하더니  육지가 되었으며 ,

이곳으로  발빠르게 달려 와  터잡은  사람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마법의 도시처럼

큰 도시를 뚝딱뚝딱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매립지를 사들인 사람들은 운좋게도  벼락부자가 되었고

 이 땅의 주인도  제법 많은 땅을 사서 돈을 수십가마 벌었는지 초현대식 건물을 짓겠다며  

꽃가게를 비워 달라고 한모양입니다.

 

이곳에 있었던 화수분은 그닥 환한 햇살은 들지 않았지만 상권의 위치가 좋아서

꽃주문도 많아  정신없이 바쁜 날들도 많더니만,

언제나 지나치는 길에  한잔 커피를 마시기도 좋더니만,

출근길의   길목에 있어  쉬어가기도 좋더니만 ,

오늘은  빨강머리 앤의 발길이 무지  허전합니다

평소대로 유리창 너머로 한참 들여 다 보니  어느 새 그녀의 

 하얀 이와 미소가  마중을 합니다 .

 

사차원아지매 빨강머리 앤이  유쾌한 놀이를 혼자 즐기고  서 있는데  

 

 

 

"뭐하세요? 화수분은 옮겨갔어요

저 위 계룡중학교쪽으로요"

 

 

라고 누군가가 친절하게 말해줍니다

구부렸던  엉덩이를  빼고  뒤돌아 보며 그녀에게

씨익 웃어주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