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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라서 몸도 마음도 분주하고 바쁩니다
하지만 차례를 지내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일 친정집 8형제들이
궁금하여 바삐 마당 깊은 집으로 향합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문을 열고 들어선 딸은 까치집하나 분양받지 못한 채 늙어버린 반시감나무가
휑뎅그렁하게 언덕위에서 내려 다 보는 친정집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대청마루에 엎디어 여든 일곱되신 어머니께 새배하며
늘 그랬듯이 날마다 20리길 걸으시며 기분좋은 생각만 하시라고
덕담 전해 드렸습니다.
예순 일곱 되신 큰 오빠 자연이 준 천연 염색약으로 하얗게 염색하고
어머니 곁에 앉으니 조금 더 젊어보이는 남편같습니다
둘째오빠 역시 눈섶까지 하얗게 염색하고 폼을 잡고 앉아 계시네요
어머니와 두 아들은 이미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셋째오빠는 며칠후면 형님들의 뒤를 이어 정년퇴직을 한다고 하네요
깜짝 놀라
"오빠, 정년퇴직하고 나면 뭐하실건가요?"
"뭐하긴 , 백수학교에 입학해야지... "
참 쓸쓸한 대화를 나눕니다
넷째오빠, 다섯째오빠 역시도 작년과 올 모습이 많이 달라 보입니다
흰 머리가 희끗거리는 모습이며
다섯째 오빠의 매력적이던 볼우물은 이제 주름되어 골이 패여버렸습니다.
떡국을 먹으며 우리는 또 한 살 더하는 기분을 쓸쓸하게 이야기합니다.
"교감이 되었으니 교장이 되고 그러면 또 형님을 따라 백수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겠지"
"난 내일 일본으로 여행이나 다녀 올 생각이야 언니는 나이 먹는 거 부담스럽지 않아
아들 장가보냈더니 저리 귀여운 손자 하나 달랑 안겨주어
좋고, 우리 신영이 한복도 참 잘 어울리지? "
형제들이 나누는 이야기속으로 시간이 연신 도망을 갑니다
나, 가난한 시골집의 일곱번째로 태어나 언제나 철들지 못해 늙은 엄마 마음 편하게 해 드리지
못하면서 여전히 뭉기적대며 대접속 52개의 떡국알을 기어코 세어
먹습니다.
참기름 몇방울이 동동 떠다니는 떡국맛이 정말 좋다며 친구처럼 함께
늙어가는 올케언니들을 치켜세워주기도 하면서 말이죠.
여덟번째는 곧 누나를 따라 지천명의 문을 열고 들어 설 시간이 다가오니 겁난다고 말합니다.
느즈막히 낳은 막내의
두 아들 녀석들은 아버지의 키를 훌쩍 넘기고 의젓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세월은 이렇게 시냇물처럼 흘러 갑니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의 품을 떠나 간 자식들이 설이라고 고향집에 찾아 와 어머니께
새배하고 모여 앉아 옛이야기하며
떡국을 먹습니다
꼭 서른 해 전, 이 세상 소풍 끝내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님께서 자식들이 둘러 앉은 모습 보고 계신다면 흐뭇해 하실까요?
아니면 하얀머리 성성하고 나무같은 나이테를 이마에 매단
자식들의 모습에 안스러워 할까요?
꽃같던 각시는 너무 늙어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세월이란 거울.
얼마 전 서울에 사시는 삼촌이 다녀가셨는데 우리가 다 만나 보지 못한 가족들을 데려 와서
그러셨다네요
" 이 곳은 너희들 큰 아버지의 고향이란다
큰아버지께서 너희들의 할아버지를 돌보아 주시다가 돌아가시자
시신을 걷우어 불당골에 묻어주셨지
그리고 해마다 성묘를 해 주셨고.
여기 살고 계신 분은 큰어머님이시지"
그리고
우리 8남매의 나이를 일일이 물어서 적어 가셨다네요
삼촌은 우리 8형제에게 소중한 아버지의 유일한 동생입니다
6.25 한국전쟁이 맺어 준 특별한 인연이지요
학도병과 면서기로 첫만남이 시작되었고
곧 남과 북의 화합으로 (두 사람만의)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떡국을 먹으며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서른 해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삼촌과의 소중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내일은 그 동안 무심했던 삼촌께 안부 전화라도 드려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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