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남해와 거제의 만남 , 다리를 잇는 사람들

이바구아지매 2011. 7. 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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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현터미널에  도착하면  점심 식사  전 시간이 좀 느긋하니 잠깐  다리부터 구경갈까요? "
"  다리? 좋습니다 선배님,(빨강머리 앤)   아주 좋습니다 . "

라는 반가운 목소리를 전화로 먼저 만났고

우리의 특별한' 다리여행'은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2011년7월 24일

오전 11:00경

서울발 ~ 거제도행   버스가 미끄러지듯 터미널로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하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재빠르게 달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지만

 낯선 사람들만 분주히 오가는 풍경만 있고 내가  설레이며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를 5분쯤 지났나?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얼추 다 빠져나간듯 한산해집니다.

'분명히 보았는데  혹시 잘못 보았나?'

터미널  출입구 왼쪽 구석베기에 놓인 책상근처로 터미널에 근무하는

직원 몇몇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다가가서

"혹시 조금 전 버스 서울에서 온 차 맞아요?"

하고 물으니

"잘 모르겠는데요"

돌아오는 답변이 영 신통찮습니다 .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뻘쭘하니 서 있는데

"차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네요 "

하고  웃으며  나타나는 깔끔한 남자, 평소의 양복차림으로부터 퍽 자유로워진

베낭여행자의 모습이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 남해가 고향인 

'다리'의 작가 남해님과   반가운  만남 ...거제시 고현버스터미널에서...

 

 

 

 

 

 

2010년12월9일까지만 해도 거제의 관문이었던 거제대교 ...지금은 그 자리를 '거가대교'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고현에서 차를 타고  달려 가서 두 개의 다리중 하나인 사등면 오량리 신거제대교 아랫쪽으로  갔습니다.

7월의 태양은 본래 살갗을 태울듯 달려들지만 오늘은 조금 참아주기로 한것같습니다.

해는 구름속으로 들어 가 쉬는지..그런 해를 향해  땅 위의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를 몇번이나 했을까?

"아 참 아름답습니다. 곡선의 날렵함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요 "

라고 다리를 본 작가는  첫 소감을 연신 아름답다고  연발합니다.

남해님은   여행을 통하여  아름다운 다리는 또  얼마나 많이 만났을까요?

하지만   오늘 거제대교를 만나는 기분도

여전히 소박하게  아름다울 것입니다.

 

"거제대교는 관광거제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요  그저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만든것에 불과해요 "

라고 줄리앙소렐님은   수수한 다리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하고 맙니다.

그렇긴합니다 .

 작가의 고향 남해의 화려한 현수교와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거제대교는 어쩌면 꾸미지 않고 최저의 비용으로 수수하게 만든  가장 한국적인 다리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바다라는 아름다운 배경을 업고 다리는 화려한 예술을 가미하여 미국의 금문교처럼 체코의 카를교처럼

관광일선에 앞장 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섬과 육지를 잇는(거제와 통영)역활로 만족한 거제대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쉬움을 대신하자면

바다 위로 떠 있는 섬들의  올망졸망한 풍경만으로도 아름다운데 다리마저 예술적으로 만들어졌더라면

바다 위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매력은 다  쓰러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다리  남해대교 창선대교를 기억하는  시간도 좋습니다.

다리밑에서 다리를 바라보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니   지나가는 바람도  즐거운듯  기분좋은

미풍을 살짝 내려 놓고 갑니다.

 

 

 

 

두 여행자의 포즈,  거제+남해 ...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신촌2길  '신,구거제대교' 사이에서..

 

 

거제사람과 남해사람이 만났으니 섬사람들이 오죽이나 잘 통할까?

오른쪽의 구거제대교와 왼쪽의 신거제대교 사이에 선 두 남자를  사진속에 담으며

여섯개의 다리가 버티고 선 풍경이 무척 재미납니다.

언제부턴가 대화가  잘 통하는 두남자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라는 여자는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아도 흐뭇합니다.

이 곳은 견내량해협으로(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크게 승리한 지역으로  한산대첩 혹은 견내량대첩이라 불림  )

바다를 중간으로 거제와 통영이 경계지역이지만 바다의 경계는  칼로 물 베기입니다.

하동의 노량진과 남해의 노량진도 함께하여 더 아름다웠던 기억이 반듯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하도를 이야기하는  두 여행자

 

 

 

 

 

 

 

 

며칠전 오량리를 걸으며 도로가에서 발견한 표지석하나 '견내량마을' 을  안내하자

이곳에서 딴지를 거는  줄리앙소렐님(남편)

"전하도라 ? 전하라는 말이 고려 의종 때  쓰인 말이 맞나 ? 황제의 길이라면  몰라도..."

고려 18대 의종은 정중부에게 쫓겨서 거제도로 유배를 오게 되었고

배를 타고 와서 이곳에 내려 걸어서  둔덕면  거림리로 갔다고 하며,

견내량 수로변에는 지금도 전하도목이라 불리는 지명이 있으며 고려골이라

 불리는 고려인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의종을 봉행 해 온 반씨 성을 가진 장군의 후손들이 지금도 둔덕골에 살고 있다고도 하구요.

'전하'라는 말이 쓰이게 된 시기는

원의(몽고) 부마가 된 25대  충렬왕때부터 속국으로 전락하면서 황제가 아닌 

부마국의 호칭으로 짐, 또는 황제가  왕으로 격하 되었고  '전하' 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길은 '전하도'가 아닌 '황제의 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유호전망대에서 바라 본' 거가대교'

 

 

 

7월의 염천 [炎天]  할 태양이  이 시간 슬쩍 마슬을 간 모양입니다

귀한 손님을 알아보고

몇번이고 배려해 주는 ' 해에게'우리도  아낌없는 칭찬을 놓고 지나 갑니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의 일정이지만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도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눈 책이야기는  이승우의 <생의 이면>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갑갑하고 눅눅한  시기에 읽었던 기억인지라  언제나 가슴 깊숙히 자리합니다.

폐쇄공포증을 가진 주인공의 유년을 향한 고통스러운 여행을

시작하는 내용은  내 삶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든듯

닮아있어   종종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 책이었고

 월남전을 다룬 작품으로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이원규의 <훈장과 굴레>

그리고 안정효의 <하얀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

 

 

거제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남해님,

1984년경에 거제에  와서 두어달 머문 적이 있었지만

놀랍도록  많이 변한 도시라 하나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하더니,  못내 아쉬운지  곰곰 생각 해 보니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떤 약국집에 예쁜  아가씨가 있었다는 

 작은 기억하나를  막 떠올리는  표정은 또  어찌나 맑아 보이던지  

작가 특유의 순발력과 감성을 담아내어 풋풋했던  시절의   순수를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서울생활 끝내는 날  거제로  와서 이웃이 되어 살아도 좋겠지만,

유년기에 성장한 곳,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고향이란 이름으로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곳,

남해의 기다림을  한시도  잊을 수가 있을까요?

 

 

 

 

'다리'의 작가(조재철님)와 거가대교가 보이는  유호전망대에서

 

 

  이제 또 하나의  다리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으로 갑니다.

부산에서는'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장편소설 판타지에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개미 눈꼽만큼의 맛보기로  들려  준 내용은

"그곳에서 아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집니다"

라고만 하니  책이  내 손에 잡히는  그날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본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78년 역사의

'영도대교'는 작품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궁금합니다 . 

 

남해님 , 거제도에서 건넌  세개의 (구거제대교,신거제대교 그리고 거가대교)

기억 할 만한 큰 다리와 기억의 그릇에 제대로 담기지도  못했을    생경하고   작은 다리들 

지석교, 사등교,신현교 ,연초교, 관암교,역시  꼭 기억 해 주세요.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영화이야기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와

아일랜드  인디영화<윈스>도 좋았습니다.

워낭소리는  경상도 말로 요령소리 (소의 목에 매다는 종)라고 하는데

가족처럼 생각하는 소가 써레질이라도 할라치면 힘들어 골병들까봐 끌어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를 바라보던

 이웃아저씨의  소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잊지 않고 내내 기억하였다가  들추어 내기도 하고.

   

점점 더 또렷해지는  유년의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쫓아  작품속

 고향이야기를  따라   흐르는  시간은  한여름 밤 모깃불 피어오르는  평상가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 은하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소년의 눈과 날아 오르는  연기의  향기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

 

 

 

" 지금 mnet 채널에서 영화 once를 하고 있네요 "

 

라는 문자메세지를 받았던 날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 나는 너를 노래한다'...

  영화<원스>가 전하는 강한 음악의  힘을  다시 추억합니다 .

 

 

 

남해님을   만나면   떠 오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통영이 고향인  김용식,김용익  형제로

김용식은 외무부장관을 두차례나 지낸 휼륭한 외교관이었으며

동생 김용익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편소설가입니다 . 

 

김용식은 "내가 힘 없는 신생 국가의 외교적 대변자였다면

내동생 김용익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정서를 세계무대에 당당히 알린 작가이다

후세에는 김용익을 더 오래 기억할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렇게 두사람이 해 낸 일을  한사람이 동시에 해 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   경이로운  남해의 힘이 느껴집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다리를 이어 주는 작가의 손에서 태어날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남해님을 부산에서 배웅하고 돌아 오는 길에 아직 다가지 않은 7월의 흩뿌리는 비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먼길 달려 와 주신 남해님, 정말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