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추석을 맞는 단상(斷想)

이바구아지매 2011. 9. 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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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이라 한가위는 달도 밝구나.

 

 

몇시간째 전을 굽고  회양적이며 고기를 구웠더니

처음의 고소함과는 달리 올리브유 식용유냄새가  역겨워   속이 울렁거린다

다른 명절보다  훨씬 더  분주하신 어머니께 불쑥 한마디 던진다.

"동서는 언제 온대요?"

" 요번 추석에는 못온다쿠네  차가 없어서 , 나민애비가 출장을 가서, 혜민이가 고3이라서... "

"차 많은데 왜 차가 없어요?난 대전보다  훨씬 더 먼 서울에 살때도  아이를 업고 걸리면서도   열차타고

배 타고 왔는데  그것도 도시락까지 싸 가지고 애비도 오지 않는 거제도까지  무려

16시간이나 걸려서 추석이라고  왔는데...  그리고  우리집에도 고3  수험생 있는데 ..."

하마트면 이렇게 말이 튀어나올뻔 했지만  용케 잘  참았다 .

한번도 명절에 결석하지 않은   착한동서였는데

못온다니 여간 서운한게 아니다.

 

 

 

 

 

 

 일찍 시작한 추석차례상차리기 음식은 오후 다섯시가 되자 끝이 난다

 혼자서 집을 나선다(가슴한켠에 돋아 난 작은 심술을 삭히기 위해서 걷기로...)

오랜만에 장승포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몇년동안 날마다 걷던 친구같은  길이었는데 , 얼마만인지?

하늘에는 낮달이 일찍부터  나와 하늘 운동장을 바삐 쏘다닌다

 추석에 먹을 송편을 빗느라고 옥토끼는 연신 떡방아를 찧어 대고

내일이 추석이라고 ..?

바다 건너 부산의 서쪽에 있는 송도가 눈 앞으로 확 다가온 가시거리 [可視距離]

 보니 완연한 가을인가 보다  수평선 저쪽 부산 송도사람들의 오늘도  분주하겠지 ...

 

 

 

 

 

 

 

 

 

 어느새 밤이 내리고

매미는 제게 주어진 찬란한 7일의 마지막 울음을 토해내는지 발악하며 

 해안가를 시끄럽게 진동하는가 싶더니 

 오후 7시가 넘으니 이제 쓰르라미(저녁매미)가 풀숲의 풀벌레들과 합창으로 

  소리 무늬를 놓기 시작한다.

 

 

 

 

 

 

 언덕 위의 작은 집 창가에도 불빛이 새어 나온다

보름달도  언덕 위의 작은 집 창가로 다가온다.

 

 

 

 

 

 

 구름은 시커멓게 몰려 다니며 비를 준비한다

내일은 추석인데 보름달로 밝혀 주지 않겠다고  일기예보로 미리 통보하였고

서울하늘은  벌써부터 온통 비가 점령하였다고 실시간 방송으로 전하였고.

이곳도 내일이면  비가 흠씬 쏟을거라는데    하지만 오늘 밤 거제도 동쪽끝 

 장승포는 추석의  달빛 선물을 온전하게 받는다

"달 가에 '테'가 생겼네  저렇게 테가 생기면 비가 오는데

곧 달무리가 생기겠네  내일은 달구경이 아니라 비구경을 실컷 하겠네"

하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딸에게 알려 주는 일기예보도  정겹다 .

 

 

 

 

 

 그 집 앞  

 

작년에  이 집 앞 지나간 일이 있는데 가슴 짠해지던  그 집 앞이다

조금은 가난이 물어 뜯는것처럼 보이던 집

지붕은  얼기설기  너와집을 닮았던  그 집이 헐려버렸다

부셔버린  집의  잔해  근처의 다른집에서 불쏘시개로 사용하겠지

내일이  추석인데...

이 집에 살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아 참 다행이다

이 감낭개가  그 터에 서 있다  어둠속에서도  그 터에서 만나다니  반갑다

주인은 떠났지만  그터의 언덕배기에서  풋감 가득 달고 꼿꼿하게  서 있으니 가을 햇살 한줌 더 받아

익으면  어느 날  그 터의 주인이었던  아저씨 아주머니는 소쿠리와 바구니 들고 감따러

 나타나실까?

 

 

 

 

 

 

 일년 중 가장 큰 달이 덩그렇게 장승포 하늘가에 달릴 추석

사실 오늘 밤 쟁반같이 둥근 달을 이미 만나 보았다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장미공원에서   손 뻗으면 따질것만 같던 낮달을 까치발 하고 팔 뻗어 보았다

해송가지 사이로 수평선 저 멀리로 눈 깜짝 할 새에 공간이동 하여  달아 나던  마법사  보름달.

 

 

 

 

 망산의 등산로를 따라  흘러 내려오다   언덕 위에 힘겹게 터 잡은 저 집에도

 서울,부산등 대도시로 나가사는   아들, 며느리가 손자,손녀 데리고  먼길 왔을까?

그리고 여태 지짐 굽고 밤 깎고 송편도 빚었을까?

저녁상 물리고 한숨 돌리고 지금은  서울이야기,부산이야기  재미나게 하고 있을까?

 

 

 

 

 

 

 

 장승포의 밤은 깊은 어둠속으로 유영하고

먹구름은 내일 뿌릴  비를 만드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

 

 

 

 

 경삿길도 느릿느릿 오르니 하나도 힘들지도 않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작은 풍경하나

 

 빨강스레트 지붕 아래  작은 창가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고향을 찾아 온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깔깔대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

작은 창가로 새어나오는  이야기  들으려고 쇠울타리 타고도 쭉쭉 뻗어서 다가가는 

 호박넝쿨도 오늘은 주인집이야기가 설레이고 궁금한  모양이다

 어느 집에서 흘러 나오는 작은   행복 엿듣기로 ...

 

 

 

 

 

 달아 높이곰 돋아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3시간 정도 걸었나? 대문을 열고 들어 서니

엄마, 가나가 발 씻어 드릴게요   발 내밀어 봐요 "

"  우리 가나가 엄마 발을 씻어  주니 엄마발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발이야

우리 가나 학교에 보내길 참 잘했구나 엄마 발도 다 씻어 주고  눈물이 다 나네 감동 먹었어"

아무도 몰래 홀연히 나가서 걷다 돌아오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가 발을 씻어 준다 .

고사리같은 손으로 ...

 

 

 

 

 

달님, 어디로 가세요? 자꾸만 달아나지 말고 가나의  소원 하나 꼭   들어 주세요

우리 엄만 늙지 않고 예뻐지는게 소원이래요 그러니까  마술거울 하나 보내주세요

 엄마가  세수하고 눈 반짝이며  거울 들여다 보면  쬐끔씩 예뻐지고 주름살도 펴지는

 신기한 마술거울 말이예요

그럼  가나가  추석날  맛있는 송편 가득  줄게요  네에~~  "

우아 이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추석 선물로 ?

요렇게 귀여운 가나를 낳은 건  정말 잘한일이야.

 

대전동서가 왔더라면  이렇게 폼나는 하루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철썩대며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통통거리며

항구로 달려 오는 통통배소리와  갯내음과  풀벌레소리 가득한  멋진  초가을  밤의 향연을 

옹골지게 느낄 수 있었을텐데  ...  꼭 들려 주고 보여 주고 싶었는데...2010.9.21(화) 앤의 일기

 

 

요즘 너무 바쁜 관계로 포스팅을 못하고 지나간 일기 중에서 하나 골라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