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빨강머리 앤 사자모리님, 여울이님, 줄리앙소렐님과 구조라 바닷가에서
가을이 바다로 빠지는 날 ,
지나간 추억속의 따뜻했던 시간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거울앞에 선다.
사람의 향기가 , 노래의 향기가 ...
지나간 시간들의 반추는 사진이란 기록으로 남아서 미소짓게 한다.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속의 사자모리님(서동헌)은
1950~1960년경 우리나라 최고의 저음가수로 '나 하나의 사랑 ''청실홍실' 등 히트곡을 무수히 남긴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송민도' 여사님의 아드님으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거제도로 피난을 왔던 피난세대이다.
그러니까 사자모리님은 빨강머리 앤이 태어나기 10년 전 거제시 연초면 연사마을에 잠시 살았던 이웃마을 오빠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송민도님은 당시 위문공연등 바쁜 일정의 가수활동을 하느라 피난 온 거제도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던 시숙님께 사자모리님의 형제를 맡기셨다고 한다.
전쟁이 막 끝난 후라 언제나 허기진 배고픔은 참기 힘들었으며 , 그럴때면 쳐다보기도 싫었던 감자로
억지로 끼니를 때우며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우면 깜장고무신을 끌며
바다가 시작되는 연사깨로 나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어린 소년...사자모리님
당시의 작은 교회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그곳에는
2010년 초현대식 건물인 연초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이 이야기 꺼내면 사자모리님
작은 교회가 있었다는 이야기하나만으로도 연사마을로
단숨에 숨을 몰아쉬며 하늘길로 날아 오실지 모른다.
어느 날 ,블로그란 놀이터에서 만나 깜장고무신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었고 ,작은 교회,바다, 학교, 그리고 동헌이란 이름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거제도로 피난 와서 서너해를 살다 떠나 간
이웃마을 오빠가 아닌가...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온라인의 사이버공간, 그리고 인연의 시작.
지금 생각해도 가슴은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설레인다.
너무도 오래 전 기억이라 생각조차 엉켜서 뒤죽박죽으로 피난 온 그 땅에 대한 기억은 가물거리고 어렴풋하여
몇개의 조각난 기억들을 짜맞추기하는 퍼즐맞추기로 겨우 완성.
훗날 사자모리님은 서울로 옮겨 가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잠깐의 가수활동을 하다 군인이 되어 월남전에 파병되어 가게되었고
월남전에서 사망하였다는 방송의 오보로 인하여 놀란 어머니 송민도님은
아들을 찾으러 월남으로 날아가셨고 천신만고끝에 찾아 낸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여전히 음악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잠시 피난 온 땅이었지만
평양은 아버지의 고향이며 사자모리님의 고향은 거제도라 빡빡 우기며 그리워서 단숨에 날아오셨던 날,
사랑하는 아내 여울이님과 고향의 여동생 빨강머리 앤과
남편 줄리앙소렐님과 2박3일간 설레이며 거제도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거제시 연초면 죽토리3구 관암마을 ...
사진속의 초가집들은 1.4 후퇴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연초초등학교 앞.
사자모리님께서 제 2의 고향으로 기억하게 된 작은 시골마을
초가집 가득한 이 곳은 연초면 관암마을이며 통영쪽으로 5분쯤 가다보면 품 넓은 산자락 아래 바다가 막 시작되는 연사마을에
서금찬 목사님께서 목회활동을 하셨던 작은 교회가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어 낸 주민의 증언으로 알게 되었는데...
열심히 발품 팔아서 사자모리님과 큰아버지께서 살다 떠나 간 옛흔적은 2010년, 지난 여름 땡볕아래 겨우 찾아 낸 결실.
오래 전 작은 교회가 있었다는 그터에 지금은 연초고등학교가 들어섰다.(연초면 연사리 1길)
어머니가 그리우면 달려 간 바다 ,
질기고 질겨서 떨어지지 않아 얄미웠던 검정고무신.
부아가 치밀면 바다 저 멀리로
날려 버린 신발이 동동 떠내려가 멀어지면 다시 허겁지겁 쫓아가서 건져 내어 신었다는...검정고무신이야기...
바다는 소년의 그 슬픔을 다 기억할까?...
2011.10.13...연사바다에서...
송민도님의 음악이야기로 가을의 향기를 맡으며....
<
# 01. 1950년대 클래시컬한 창법으로 주목 받은 저음 여가수
고향초(1947), 나 하나의 사랑(1955), 청실홍실(1956), 여옥의 노래 (1957), 카츄샤의 노래(1960).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송민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클래시컬’이란 말이 한국사회에 유통되었는데, 다른 분야에서 클래식처럼 고급스러운 것을 이렇게 말했죠. 우리나라 가수로서 클래시컬 창법으로 주목을 받은 가수가 송민도 였습니다. 노래방이란 것이 없었던 그 시절, 1960년대와 1970년대, 마을사람이나 친척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이 선택한 노래가 바로 <고향초>였고, 1960년대와 1970년대 결혼식 축가 혹은 피로연에서 부른 노래가 <청실홍실>이었죠.
# 02. 위키백과 속 송민도
백과사전에 정리된 송민도는 이렇습니다.
송민도(宋旻道, 1923년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사실 당시의 생각으론 민도란 이름은 남자이었죠. 목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하늘 민 (旻), 길 도 (道), 즉 ‘ 천당으로 가는 길 ’ 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연예 활동을 하면서, 송민숙, 백진주라는 예명을 잠시 사용했지만, 그나 그녀의 팬이나, 모두 송민도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가수죠.
송민도는 경기도 수원군에서 감리교 목회자의 딸로 출생했다. 성장기에는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 평안남도에서 삼화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나왔다.
학교 졸업 후 만주의 룽징에서 잠시 유치원 보모로 일하다가 결혼하여 옌지로 이사했다. 옌지에서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아 1945년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가수 활동은 1947년에 한국방송공사의 전신인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하여 1기생으로 발탁된 것이 시작이다.
데뷔곡으로 취입한 〈고향초〉가 널리 알려지면서 송민도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음반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여성스럽게 바꾼 송민숙이라는 예명으로 발표되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고향초〉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다. (선배 가수인 장세정이 다시 취입)
# 03. 생명이 긴 노래, 고향초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 정든 고향 정든 사람 잊었단 말인가
찔레꽃이 한 잎 두 잎 물 위에 날리면 /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의 정든 사람 어데로 갔나 / 전해오던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이 노래는 송민도가 처음불렀고, 훗날 선배가수이기도 한 장세정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엔 당시 통기타 가수였던 홍민도 이 노래를 취입, 히트시켰습니다.
송민도의 노래로 <고향초> 듣겠습니다.
# 듣는 음악 1. 고향초 (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 송민도 노래)
# 04. 송민도에 대한 평가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 창법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목소리는 잔잔한 서구식 저음이다. 미성의 가수들이 많던 시기라, 송민도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젊은층과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한민국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송민도는, 1963년부터는 쇼단을 경성하고 단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에 장남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사이공에 식당을 차리고 머물렀다. 사이공을 떠나면서 1971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생활하였다.
# 05. 송민도의 대표곡, 영화 ‘산유화’ 주제가
가수 송민도는 ‘여옥의 노래’와 함께, 한국영화와 한국가요의 올드팬 속의 가슴에 남아있는 목소립니다. [여옥의 노래]는 대한민국 영화주제가로서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57년과 1966년, 두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모두 송민도의 <여옥의 노래>를 주제가로 사용했습니다.
산유화 (山有花 Wild Chrysanthemum, 1957, 1966)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열열히 사랑하고 있다. 남자는 두 여자 중에서 A를 좋아하고 B는 A와 남자사이를 이간질한다. 그래서 A와 남자 사이에는 큰 오해가 생긴다 그런대로 남자는 A가 아니면 살아 갈 수가 없다. 어느 비 오는날, 남자는 그날도 거리를 배회하다가 각혈을 하고 쓰러진다. 훗날 A는 남자와 자기 사이의 오해가 B의 간계에 의한 것임을 알고 그를 찾았으나 이미 그는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의 무덤을 찾아 들국화를 바고 한없이 슬피 운다.
1957년의 산유화(이용민 감독)는 신귀환, 이영미, 장혜경이 주인공, 1966년의 산유화(박종호 감독)는 신영균, 고은아, 이수련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 06. 여옥의 노래 / 송민도
불러도 대답없는 님의 모습 찾아서 / 외로이 가는 길엔 낙엽이 날립니다
들국화 송이송이 그리운 마음 / 바람은 말 없구나 어드메 계시온지
거니는 발자욱 자욱마다 넘치는 / 이 마음 그리움을 내 어이 전하리까
가까이 계시올땐 그립기만하던 님 / 떠나곤 안 계시면 서러움 사무치네
소나무 가지마다 그리운 말씀 / 호수도 잠자누나 어드메 계시온지
그날의 손길을 가슴 속에 지니고 / 이 목숨 다하도록 부르다 가오리다
[여옥의 노래]는 이후 가수 조영남도 불렀지만, 대한민국의 1950년와 196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송민도의 목소리로 영원히 기억되는 노랩니다.
# 듣는 음악 2. 여옥의 노래 ( 유호 작사 / 김광수 작곡, 송민도 노래) + # 듣는 음악 3. 나의 탱고 (강탁수 작사, 한복남 작곡, 송민도 노래)
1. 즐거운 날의 꿈이여 나의 탱고여 물새 우는 강언덕을 헤매이면서 그대를 부르면은 나를 부르네 아~ 첫사랑 젊은 날의 나의 탱고여
2. 지나간 날의 꿈이여 나의 탱고여 흘러가는 강물위엔 낙엽잎 하나 그대는 어데 가고 나혼자만이 아~ 추억은 애달퍼라 나의 탱고여
<출처 . 카페 자주색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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