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통영을 북한인권의 메카로 ...비극의 땅 저편에서 고통받고 있는 통영의 딸이야기

이바구아지매 2011. 11. 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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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통영의 딸'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991년 입수된 사진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인 신숙자 씨(왼쪽)와 큰딸 혜원 씨(오른쪽),

 작은딸 규원 씨(가운데)의 모습. 이 사진은 1991년 1월 작곡가 윤이상 씨가 신 씨 남편 오길남 씨에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하며 건넨 6장의 가족 사진 중 하나다. 통영현대교회 제공.

지금은 이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안타까운 상황.

 

 

2011년 10월 23일(일)

통영의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구출 촉구를 위한 시민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그 힘은 대단하여 10만서명을 돌파하여

 뜻 깊은 자리를  다시 마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작은 항구 도시 통영의 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방의 소도시 통영, 인구 고작 14만여명에 불과하지만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뽑힌 아름다운 통영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통영은 너무도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숙제를 안고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작은 도시 통영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온 국민의 힘을 보태고

나아가서  세계 모든나라의 힘을

빌어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안타까운 사연속의 통영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통영의 딸을 구해주세요 "

 통영 시민들이 입은 하얀티셔츠에 새긴 문구가 가슴 아프게 합니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 대표

통영현대교회 방수열 목사의 인사말

 

 

북한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줄도 몰랐던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지난 5월 25일 통영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면서 전국과 해외로 불붙듯이 번져나간 후 5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구출서명에 동참한 사람이 10만명을 돌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기념하여 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신숙자 모녀가 구출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시민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은 단지 통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해내는 구국운동이라고 믿습니다.

이 구출서명운동이 범국민 운동으로 일어날 때 우리 나라는 새롭게 될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 시민대회에 참여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신숙자 모녀가 올해 안에

꼭 구출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85년 12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들어 

 갔을  당시 혜원,규원씨 자매의 나이 또래 정도인

아이들을 보니 코끝이 시큰합니다.

 

 

 

 

 

 부모님을 따라 강구안으로 온 통영의 아이들입니다.

 

"통영의 딸들을 구해내자"

라고 아이들도

목소리 높혀 외칩니다.

 

 

 

제법 많은 통영사람들이 강구안의 문화마당에 모였습니다.

 

 

 

통영 강구안의 시민대회에 참석하여

눈시울 붉히며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라고 몇번이고 인사하는

오길남박사님의 비통한 모습을 뵈니

25년이란 인고의 시간이  참회의  아픔으로 전해집니다.

 

 

 

통영의 딸들은 지금 북녘땅에서 울고 있습니다

통영은 지금 통영의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피눈물 흘리며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녀들이 한시바삐 통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빌고 또 빕니다..

 

 

 

이제 통곡의 눈물조차 말라버린 시간 ,

통영의 바다가 처음 시작되는 강구안을 바라보며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헤어지던 마지막 시간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날 혜원이가 업어 달라고 했어요 "

라는 말을 토하며오길남박사님,  강연도중 울먹입니다 .

 

 

오길남박사님,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찾기위해 ,찾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며 통영에 왔습니다.

 

 

 

 

신숙자씨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의  울먹이는 모습을 대형스크린으로 만나는 순간

엄연히  이념(ideology, idea )이  존재하는 현실앞에 다시한번

 분단국가의 비극을   확인합니다.

 

 

 

강연 , 김성욱 기자 (리버티 해럴드 대표 )

기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어 내서 알려 줍니다.

1960년 빈곤한 대한민국의 딸로 파독간호사가 되어 독일로 갔습니다.

 통영초,통영여중을 거쳐 마산간호대학을 졸업한

신숙자씨는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던 오길남박사를 만나  결혼하였고

김종한, 송두율, 윤이상의 꼬임에 빠져 월북을 하였지만  북에 가자마자 곧장 속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몇달 후

오길남박사는 아내 신숙자씨로부터 탈출하라는 권유를 받고 북의공작원이 되어 독일로 가던 중  코펜하겐에서 

 탈출에 성공하였지만 아내 신숙자씨가 부탁한  3개월 이내에 빼 달라고 한  간절한 절규를 뒤로한 채 북에

 남겨진 아내와 딸들과  이별의  운명적인 비극은 25년이 흘렀으며

현재는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북한당국은  생사를 알려주고

 즉각 신숙자,혜원,규원모녀를 송환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더 이상 저들의  인권유린을 방관傍觀] 하고 있어서는 안될것이며

국민과 정부와 세계가 힘을 모아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고 직언 [直言]합니다.

 

 

 

'통영의 딸'로 작명 해 주신 통영 현대교회 방수열목사님

 

'통영의 딸'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북한은 더 이상의 인권을 유린하지 말것과 통영의 딸을 빠른시일내에

돌려보내라고  당당하게 요구할것입니다.

 

 

 

이 모든 힘은 작은 항구 통영의 힘입니다.

 

 

KBS.MBC,SBS등 각  방송사들의 카메라가 통영의 딸을 뉴스로 내보내기 위하여  부지런히  담습니다.

 

 

통영청년기독학생연합과

북한인권학회 청년연합(한동대 외)의 주제가 열창도 코끝이 찡합니다.

 

 

 

작은 소녀의 하얀풍선도 북녘하늘로 향해 간절한 염원을 담아  높이 날아 오르겠지요?

 

 

 

 

그대의 염원도  하늘높이 날아 오를 것이며.

 

 

 

 

비극의 주인공 통영의 딸은 머지 않은 날에 영화로 만들어져 내년 2월경이면 만나보게 될예정이며 

영화는  '안네의 일기'를 연상해도  좋을듯  추측되기도 합니다.

 

 

 

통영의 딸들이 돌아 올  수 있도록 간절한 염원을 담은  풍선을 북녘땅을 향해  모두가 하늘높이 날려보냅니다 .

 

 

 

 

현재 운영중인 북한정치법수용소인 평남 북창군 봉창리 18호

평남 개천14호,함남 요덕 15호,함북 화성 16호 함북 청진25호 함북 회령22호를 즉각 없애기를

온국민의 이름으로 외칩니다.

이밖에도 북한전역이  정치범수용소나  다름없어  북한의  2.400만 전국민이

강제수용되어 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라니

북한의 인권유린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것 같습니다.

 

 

 

정치범수용소 설립 초기에는 수용소 운영은 사회안전성 안전과가 담당하였고,

 개천교화소와 청진에 있는 수성교화소를 정치범 교화소로 개조하여 이곳에 별도로

수용한 것이 정치범 수용소의 출발이라 보면 될 것이다.

 초기에는 현재와 비교하면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고, 허락을 맡으면 외출도 가능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탈출자가 속출하고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자 경비를

강화하여 오늘날의 정치범수용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수용소가 10곳 정도 되었으나 5곳으로 통합 되었다.

 

북창관리소는 5만 명 가족이 함께 살지만 개천수용소는 주로 혼자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적법한 절차 없이,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 처참한 공개처형, 고문, 심각한 영양실조,

하루 12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이 자행되는 곳이 있다.[3]

2009년 크리스마스에 김정일이 물러날 것과 정치범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북한을 방문했다가

 43일간 수감된 바 있는 로버트 박은 "수용소에는 25만 명 정도의 사람이 수감되어 있고,

 2002년 이후 최소 100만 명 가량이 수용소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어떤 탈북자는 수용소 내에 가스실이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4]<위키백과>

 

 

서독은 동독을 지원할 때 조건없이 지원한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요구하는 형태로  동독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통일 독일이 되어서도 세계에서 4번째 강국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정부의 북에 대한 지원형태는 어이없게도  묻지마 지원으로 무조건 지원을 한

까닭에 북한의 요구는 무조건적이며 인권의 유린마저도 안타깝게 바라만보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강력하게 정당하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박탈은

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해야 하며 북에 있는 정치범강제수용소는 모두 폐쇄해야 함은 당연하며 

무조건  퍼주기가 아닌  

반드시 조건부의 지원이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는 강연이  기억에 남을것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른 풍선은 금방 구름속으로 올라가더니 북녘땅을 향해 날아가는듯 .

통영의 딸을 한시바삐 돌려보내주세요.

 

 

 

김성욱 기자 (리버티 해럴드 대표 )

 

 

지구상의 어떤곳에서도  더 이상의 인권이 유린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하던  김성욱 기자의 강연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북한전국민이 그토록  원하는 '쌀밥과 고깃국'을 날마다 먹더라도 돈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며

주먹구구가  아닌  정확한 계산을 통한 설득력 있는 강연  기억할만합니다.

 이제 정부는 북한을 향해 당당하게

  요구하며 지원해야  한다는 강력한 직언의 강연   잊을 수 없을겁니다.

 

 

 

 

통영을 북한인권의 메카로!!!

 

 

 

 

 

이런 영화같은 비극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간  운명의 땅 한켠 통영의  도천동에서는

통영의 아들로 불리는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리고 있기도  합니다.

윤이상음악제의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한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84세)와 딸 윤정씨(61세)가

용남면의 자택에 머물고 있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여 참석하지 못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술과 정치는 명확하게 분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어찌보면 핑계같기도 한

이 기막힌 모순의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는 곳  또한 통영입니다.

윤이상 음악제의 개막식에도 통영의 시민들이 상당수  참석했다는 후문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윤이상과  피해자 신숙자   두사람은  통영의 아들딸인지라

원만하게 풀어나갈 해결책으로  어떤 방법이 제시될지 지켜 볼 대목입니다.

 

통영 ,

아름다운 바다의 땅이며 예술을  꽃 피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의 도시이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이념의 굴레는 여전히 오래도록 남아 고통스러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