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개망초, 이제 꽃이라고 불러줄게

이바구아지매 2012. 6. 2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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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망초를 기억하기 시작한건  오래 전 일이다.

들로, 산으로,  강으로 질퍽이며  쏘다니던  아홉살 혹은 열살  무렵이었을까? 

 작은 아이는 개망초를 닮은 야생 소녀였다.

 

여름 햇살은 간간히  산 그리메를  그리며   흔적 남기고, 구름은  소나기를 머금고 지나가다

시시각각   변덕부려   비를 뿌리며

달아나던 풍경이 기억속으로 들어앉은     그 해 여름. 

그 날도 비를 머금은

날씨는 먹장구름을 소떼처럼   몰고 다니다가  들녘의 개망초군락을 보자  잡고 가던 소의  고삐를 놓아버리듯

 먹구름을   넓은 하늘공간으로  뭉실하니 풀어버렸다.

들녘에는  소금을 뿌린듯한

하얀들꽃 개망초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었었고.

  비를 품고 지나가던 잿빛구름은  어딘가에 부딪쳐서  그만 와락   비를 쏟는 바람에  고스란히 비를 두들겨  맞아 

고개 숙인 처량한 모습이 되었지만  개망초의 줄기는 그리 간단하게  꺾이지 않았다.

다만  휘청하며 구부러졌을뿐,

 

그러다가  햇살시계가 수직으로 내리쬐는  정오의 시간이 되자 몸을 말리고

 물기를 털어내자 깃털처럼 가벼워진    개망초는  다시 고개 내밀고 일어나 햇살의 열기를 받자

   막 구워낸 계란후라이처럼  닮아 있기도 하였다.  

시간개념이라곤  도무지 없었던  쪼무래기  계집아이들은 

 맑은 물 흐르는 강가에 모여 앉아  땡볕조차 겁내지 않고 

   소꼽놀이에 빠져   하얀들꽃   꽃잎따서

납작하고 매끈한 돌 위에 오똑하니 얹어 놓고는  동무에게

귀한 계란후라이를 구웠으니  먹어 보라고  소리치며 마주보고 깔깔대었다.

점점 소꼽놀이에 깊이 빠진 계집아이들은  다시  흙에다 꽃잎을 버무려서 꽃지짐을 부쳤다며

  억지로 동무의 입을 벌리고  쑤셔 넣어 주는 철없는 장난질도 겁 없이 하곤했지만

그깐 일들이  생명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래 집단의 우정을 생각해서  흙에 버무려진 꽃을   받아 먹는 시늉을 한 계집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꽃잎을 아삭아삭 씹는척 하다가  훅 하고  뱉어버렸다.

맑고 깨끗해 보이는 꽃대가리를 따서  물에 행구어 입에 넣고 씹어 먹기도 하였는데

 꽃을 씹는 소리가 살살 새어나면 

 계집아이는 두주먹에 힘을 불끈 쥐고 

 '" 망국초 왜풀,   씹어 삼켜버리겠다."

개망초꽃을 꿀꺽삼키면  일본을 이기는 거라고 울아버지가 그러셨어 "

당시의 어른들은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 난  개망초를 보고  입버릇처럼

'개망초가 들녘을 장악하면 망쪼가 들어  흉년이 든다구 , 암 망국의 꽃이지  지랄같은  잡초,

 징글징글 해  망할놈의 들풀   번지기는 왜그리 잘도 번질까 ' 라며

낫으로 인정사정 볼것없이 척척  후리쳐 베어버렸다 .

 

개망초꽃은 일본에서  들어 온 식물이라 미움을 받은 걸까?

설령 그렇더라도 작은 꽃 개망초가 지은 죄가 있을리 만무한데

누군가에 의해 잘못알려지게 된 이유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바보처럼  개망초 죽이기에 한몫 단단히 거들고 말았다.

때로는  낫으로  난도질을 치며 화풀이하듯 작살을 냈지만 줄기는 단번에

낫끝에 잘려 나가지 않았으며 뿌리째 뽑혀 질질 딸려 올라오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베어낸 풀더미는  논두렁, 밭두렁에  던져 놓으면  삽시간에 해를 보고    하얗게  말라  버렸다.

그 동안  먼 발치에서 보고 있던  살모사  한마리가  축축한  등비늘이 마르기 전 풀더미속으로 슬몃

  기어들어  

  또아리를 틀고 앉아 긴 혀를 낼름이며 논두렁길  지나가는 계집아이의 발 뒤꿈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보는것은 모두다 태울듯 발정난 햇살이 들녘을 태우며 달려드는 깊은  여름이면

  시골집의  마당에는  하루에도 서너바지게씩  베어나른

 풀로   여름한철   집채만한  건초더미가 집집마다 생겨났고

건초더미속의 절반쯤은 개망초였다.

집안 가득히 풀냄새가 번져나던  그 해 여름 ,

 

 

  개망초는 가끔 소가 뜯어 먹고  되새김질하는 심심한 간식거리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풀을 뜯기러 들로 몰고 나간 소는 큰 눈 끔뻑이며  

논두렁길 가다가  무리지어 피어난 개망초를 보게되면  곁눈질로   낼름 긴 혀  내밀어  한입에  쏙 휘몰아   베어물고  

어기적어기적 씹다가 잠깐  꿀꺽했다

  심심할 때 다시 되새김질로 더운 여름을 즐기던  소의 낭만도 볼만했던  나른한 기억.

 

 

 

 

 

소와 개망초 <옮긴 사진>

 

 

계집아이들은  하얀 꽃대가리 톡 따서  아삭아삭 씹어 눈에 힘 주고  별을 보며  꿀꺽 삼켰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을 이겼다

 일본을  통째로 꿀꺽 삼켜삤다아이가  우하하하 . "'

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왜풀'은 십이지장에서

 다른 음식물들과 서로 섞힌다고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을까?

 

 

 

 

 

 

야생화 [野生花]

논두렁길 꼬불꼬불  달려가다 다리에 걸려  

 훽훽 감겨오는 개망초 줄기를   사정없이  걷어 차며  중얼대던 계집아이

"니깟게 무슨  꽃이야  잡초지..  "

그렇게 멸시를 주저없이 퍼부었던  하얀들꽃.

발밑에 짖밟혀  꺾어지고, 휘어지면서도    물씬 피어 올리던   풀냄새의 후덥지근했던 기억.

꽃이라고  생각 해 본 기억은 애시당초  없었던  개망초 

  초식동물  소가 즐겨 뜯어먹던    잡초로 여겼을뿐이다.

 

 

 

 

 

계란후라이를 닮은듯한  망초꽃. 

 

 

 

 

 

 

개망초꽃

 

 

 

 

 

 

 

 

너무 흔한 들꽃이어서...

 

생명력이 강해 어쩌면 우리민족의 끈질긴  근성과 더 많이 닮은듯한  들꽃

1907년경  일본이 나라가 통째로 망하라고 이강산에  개망초꽃씨를 뿌렸다는데 

 그런 헛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지만

근거없는 소문이 아니었을까?

 

여튼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오해를 살만하다.

 여름철 세상을 온통 다 장악해버린 까닭에   꽃이 아닌 잡초로 불리었고

온갖 낭설에 휘말리며   미운털이  콕 박혔던  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잠자리 나풀거리며 올라 앉고  나비는  개망초꽃이 피면 그 곁을 거의 떠나지 않는다고

'민용태시인'은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기다 본  유년의 어느 날을 잊지 않고  반추해  글바구니로 담아 내셨다. 

 

 

 

 

 

 

아홉살 여름,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통  하얀세상으로 변해버린 날.

우리동네 작은 암자 '삼덕사' 에   잘 생긴 총각스님이  새로 왔다

소문내기 좋아하는 동네 아지매들의 극성스런  수다에 의하면 

 그 잘 생긴 총각스님은 서울에서 왔으며

땡땡이중으로 틀림없이  천희<처녀>를 꼬시러 왔다고 단정지었다.

삼덕사로 가는 길은  마을  가운데로  흘러 내리는 큰 하천의 하류지역

벼락덤벙( 언젠가 벼락을 쳐서  뽀족뾰족하고 날카로운 모양의 바위들이  강  곳곳에 널부러져 있어 경치가 빼언 난 곳))

 징검다리를 건너 앞산 초입의 대숲에  쌓인  보기에는 수도하기에  그럴듯한  암자였다.

삼덕사가 생겨난 것은 울타리 너머 이웃인  화야엄마가  지은 암자로 제대로 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주지스님이 오시는게 아니라  많은 시간을 수행해야 할  젊은 스님들이  이 곳을 거쳐가는 것 같았다.

가끔씩 서울에서 내려오는 스님들이 있었지만    걸핏하면  

 동네로 번지는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내는  온상지가 되곤 하였다.

  작은 암자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는 금방 살이 붙어 수다쟁이 아지매들의 입소문을 타고   화제의 촛점이 되었고.

 

그 날도 망초꽃이 어김없이 피었고  암자에는 서울에서 몸이 아파 요양차 내려 온  이웃동네 언니가 머물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동네 꼬마 악동들은 슬슬 장난끼가 발동하여  벼락덤벙으로 모여들어

서울에서 온 땡땡이중이  정말로 천희를 꼬시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순간 영화처럼 땡땡이중이  암자에 머물고 있던 이웃마을 언니랑 강가로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개망초꽃 무리속으로  조심조심  들락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듯 보였는데

꼬마악동들은  이 현장을 보고

" 저 봐라 맞제 땡땡이중이 천희  꼬시로 온거 맞는기라    "

 하고 악동들은  숨을 몰아쉬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동네방네로 고함치며 소문내기로  퍼날랐다.

"동네사람들,서울에서  땡땡이중이 천희  꼬시러왔어요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

"서울에서 온 땡땡이중이 연애 걸러 왔어요"

이 말을 들은 동네 아지매들 입을 맞추어

" 뭣이라?  또 천희 꼬시갈라고 왔다꼬?

 서울서 내리오는 중놈들은 천희 잡아 묵는 늑대인기라"

"아따 그랑께 큰일이 났어. 또 천희하나 사달나게 안생겼나,  우짜것노"

"성질급한 땡중이   고기맛을 볼라꼬 슬슬 시작는갑다 ...쯔쯧 "

 

후훗 , 그러니까 개망초는 들꽃같은 이야기를 소금처럼 ,  훠이훠이 뿌리는 꽃이었다.

 

 

 

 

 

 

 

 

다시 초록으로 무성한 들녘.

 

 

 

 

 

 

누군가의 무덤가에도 '왜풀'이  가득하고...

 

 

 

 

신 영수 기자의  '개망초'

 

 

 

 

아무데나 피어나서 와락 들켜버린 들꽃.

 

고성 '진태재' 를 넘어오다  길 잃고  헤매다  만난 개망초군락지.

 

 

 

 

 

 

 

 

 

 

 

네가 피어나리라 설레이며 기다린 적은 없지만  올 해도 변함없이 들꽃으로 피었구나  

이제 너를  꽃이라 기억하며  개망초꽃으로 정답게   불러줄게.

 

 

 

 

 

 

 

 

 

 

 

 

 

 

기억속의 들꽃.

네가 피어나지 않았더라면 들녘은 무지 심심하고  밋밋했겠지

네가 피어나서 여름이 한층 더  아름다운것을.

 더 많은 이야기가 스토리텔링<Storytelling>되어   생겨날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