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소녀들의 비극,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바구아지매 2012. 8. 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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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67주년을 맞는 뜻 깊은 8월입니다 .

선열들의 피와 고통과,  희생으로   되찾은 조국이기에

너무나 소중한  나의 조국입니다.

 

방학을 맞아  서울로 간 가나와 8월의 특별한 여행을 해 보고 싶어

햇빛도시 서울에서  8일간의 불볕더위 속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거제도로 내려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찾아 간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 편,

이곳에서   우리나라 조각가의 작품으로 만난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한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 18-11

 

일본대사관 맞은 편 인도에서.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조선의 어린  소녀들의 비극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위안부 소녀상'을 만났습니다.

며칠전 창덕궁 가는 길에 차창 너머로  우연히 마주쳤던  소녀상 ,

오늘은  마음먹고  두 딸들과 소녀상을  만나기 위해  다시 왔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 해 본 결과  이미 위안부  소녀상에 관련된   수 많은 글들이   올라 와  있었습니다

출발 전 생각이 짧아 장미꽃 한다발 준비하지 못했으며, 더운 여름 날 땡볕에 나와 앉아 고통받을  어린  소녀를 위해

작은 그늘을 드리워 줄   모자하나 준비하지  못했군요.

막상 땡볕을 정면으로 받으며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는 8월 한낮의  '위안부 소녀상'을  만나는  순간 울컥 해 집니다. 

 고작 열 대여섯살로 보이는 소녀상을 보니  순식간에 온 몸으로 찬기가 오싹하니 스며들며

 또 한 소녀 안네 프랑크가 생각납니다 .

통곡의 벽으로 유명한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찌의 희생물이 되어 사라진  

 안네 프랑크와 또 다른  유태인들의 수 많은 희생,

그   비극을  교육의 힘으로 우린 기억합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독일은 곧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유태인들에게 사죄를 했다지요.

하지만 일본은 ,사과는 커녕,

자국의 이익을 위한 억지부리기와  우기기로 일관하니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더불어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집어 삼킨 후  

 인간이라면 차마 하지못할  온갖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학교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교육조차  시작한 일이 없다고 하며  

 사과할 기미조차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일본대사관 주변의 풍경입니다.

 

 

 

 

소녀를 위해서 누군가가 가져 다 놓은 노란 신발과 꽃다발들.

 

 

 1992년 1월8일 시작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일본을 향해  목소리를 높히기 시작한

수요시위가 시작된지  2011년 12월 1,000회를 맞아 뜻을 같이한 시민들의 모금으로

이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비와 소녀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조선인 정신대라고 오랜시간 불렸던  일본군 위안부

 '일본에 의한 성노예'의 희생물로   끌려 갔던 그 많은 소녀들  

전범 일본은 아직도  보상은 커녕 사과조차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소녀의 어깨 위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한마리가 사뿐히 앉아 있습니다 .

과연 우리민족의 민족정서가 돋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악몽같은 곳에서 돌아온 그녀들은  속내를 드러내 놓고 누구한테도

 하소연 한번 하지 못한 채   이름없이 죽어갔고   혹  살아 있어도

  평균 나이가 86세가 되었다고 하니  할머니들의 여생이 그저 안타까울뿐입니다.

꽃 보다 아름다웠던 조선  소녀들의 피맺힌 절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엷어지고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일본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겁니다.

 

 

 

 

 

 

 

 

 

 

마침 8월 15일을 앞둔 시간이라 소녀상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도 있으며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이 곳을 찾아 역사를 알려 주는 풍경도 종종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일본대사관을 향해 앉은 소녀상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느낌이지만

몇달전 일본의 극우파가 나타나서 소녀상에다 '독도는 일본땅'라고  적은 말뚝을 맨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경찰차가 이 곳을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차가 가로 막는 바람에  소녀상이   대사관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꼴을 하고 있어

경찰차는  또 하나의 벽이 되어버렸고 소녀상은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경찰차만 바라보는 풍경으로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에도 소녀들 많을텐데요 ?

 

 

 

 

 

 

대마도는

부산과의 거리 49km거제도와의 거리 역시  50km로 우리나라와  훨씬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소녀상을 향해 정면 촬영을 시도합니다.

언듯 보기에는 소녀상의 맨발과 노란 신발에 촛점을 맟추는듯  보입니다.

 

 

 

 

 

역시 경찰차벽 너머로 일본대사관의 건물이 일부 가리워진 채 보이며  

 일장기가 높은곳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소녀상의 뒷모습입니다.

 

 

 

 

소녀의 순결을 의미하는듯 빨간 장미꽃다발도 놓여있습니다.

 

 

방학을 맞은 가나,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소녀상과 함께합니다. 

단발머리의 소녀상 언니가 하루종일 햇볕에 나와 앉아 있으면 더위 먹고 어지러워 

쓰러지겠다며 가나가 몹시  안타까워합니다.

 

나이로 본다면 소녀는 열살인 가나보다 불과  몇살 위의 언니뻘인  나이

"  소녀의 실제  나이는 86세 정도인 할머니야

그러니까 가나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하지만 소녀상은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녀란다"

"언니를 지켜주지 못한 힘없는 나라여서  끌려간거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

하며 작은 입을 앙다물고 소녀상을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는 가나

. 소녀의 저고리에  노랑별 하나를 예쁘게  달아줍니다. 

 

 

 

 

 

 

 

 

가나는 오늘을 절대로 잊지 못할것이라 합니다.

 

"나 보다 고작 몇살 더 많은 언니인데..."

어린 가나도 오늘만큼은 어리광을 부리지 않고 어른스럽게   마음 찡한것 같습니다.

위안부란 일본정부가 개입하고 일본군이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무참히 짖밟은

짐승같은 행동을 한 만행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특히 여자들이 더 큰   피해자가 된다는 거

그리고  여자들은 성에 관련된한 수치스러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다 세상을 떠나는 현실.  

이런  말도 안되는 모순이  이땅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

일본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이용하게 되었고요.

 

 

 

 

 

이제 집으로 갑니다.

 

 

 

 

 

멀찌감치 가다가 다시 한번 되돌아 봅니다.

 

 

 

 

 

가나도 두고가는  소녀상이 궁금하여 가던 길 멈추고 되돌아봅니다.

 

 

 

Hi인터넷에 올라 있는 위안부 소녀상

 

 

추운 겨울에도 누군가가 찾아가서 외로운 소녀의 시린발을  감싸주고  꽃다발도 놓아 주었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씌워주는 경찰관도 있었답니다.

 

 

 

 

 

 

 

긴긴 겨울이 추울까봐  목도리로 칭칭 동여 매 주고  모자 씌어 주고

무릎도 덮어 주니 더 이상 소녀는 춥지도 외롭지도 않답니다.

 

 

 

 

 

 

 

누구라도 작은 위안부 소녀상을 만나게 되면  

  꼭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게 되는 건 우리민족의 정서인 따스함과

보살펴 주려는 심성 고운 인정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한마리 어깨로  올라  앉은 소녀상,

사람들은 소녀를 위해 조금 더 따스한 풍경을 만들어 주며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겁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명물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알다시피  얼마나 유명한가요

오줌싸개 소년이 나찌를 향해 오줌을 갈기는 풍경을 보고  그 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통쾌해 한다는데

우리의 위안부 소녀상 또한 일본을 향해 무언의 통쾌함을 날리는   의미를 담고 있겠죠?

 

 

집에 돌아 온 애국소녀 가나, 곧 바로 한뼘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소녀상 옆에 태극기를 꽂아  주고 싶다네요.

 

 

 전국에서 위안부 소녀로  가장 많이 끌려 간 지역은

놀랍게도

거제와 통영이라고 합니다

우리지역에서도  안타까운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 한분도 작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으며 살아 계신분도  몇몇 계시지만

수치스럽다고   입을 통 열지 않는 형편입니다.

악몽같은 역사의 진실을 알고 있는 소녀들은 이제 늙고  병들어 이 세상을 떠나가네요

끌려가는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한 못난 조국은 6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안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