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청마의 생가 '거제도 둔덕골'에서 롱디연애하기

이바구아지매 2012. 9.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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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命'- 깃발 - 그리움 -행복 -거제도 둔덕골  그리고 靑馬

 

 

지난 여름 우리들의 머리 위로 머물던  하늘이 가을이 되자 무거움  훌훌 털어버리고

한층 가벼워지자  전봇대 길이만큼  키를  키우더니 또  맑아졌습니다.

몹시 푸른 하늘은  에메랄드빛 가을바다를 불러 생명의 깃발을 나부끼며  행복과  그리움을 노래하며

유혹하여 거제도 둔덕골로 가게 합니다.

 푸른바다는 하늘의  연인이 되어  둥실둥실   날아올라  두 개의 하늘로 

 버물려   보란듯  롱디연애(장거리연애)를 하며 좋아서 아우성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가을속으로

생명의 깃발을 따라 거제도 둔덕골 방하리로

  시인 청마의 초대를 받고  달려갔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과 함께  가지런히  잘 어울리는 '거제도 둔덕골' 

 오늘은  그곳에서 시인 청마를 이야기 해 보렵니다.

 

하늘과 바다가 다정하게  둔덕골스타일'로 연애를 하고

황금들녘이 허수아비와 연애를 하고

청마가 시와   끝없이 연애하다 간 곳

시인도 자연도 온통  연애하는 깊은 가을

 누구라도  이 멋진 축제에 함께하여 연애하고  싶어지는

여기는  청마 유치환의  고향  '거제도 둔덕골'입니다.

 

 

 

시인의 마을로 가다   만난 빨강 풍경.

 

가을 햇살에 고추말리기 

둔덕면 방하리 유지마을에서

 

 

 

 

 

유지마을을 지켜주는 마을보호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는 이 느티나무는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도로확장으로  잘려 나갈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서  베어내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지킨 나무랍니다.

차도 중앙에 있어 차량과 사람들에게 조금은 위험 해 보이지만  이 나무로 인해 아직 큰 사고한번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5회 청마문학제가 열리는  둔덕면 방하리 

 

동랑,청마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청마문학제는

전야제

  명사초청특강-박동규교수

청마문락연구상 학술세미나

청마제자,지인과의 만남 .

개막식

거제 영등오광대놀이 시연

제5회 청마문학연구상 시상식 기념식

청마문학제 기념 백일장,편지쓰기대회

청마문학제 기념 사생대회,청마시 휘호대회

청마시낭송 공연,연주.

청마의 길 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알차게 진행되고 있었답니다.

 

계절은  알맞게 선선하고 풍요롭고  그리하여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9월,

 이쯤에서 누구라도  한번쯤 시인이 되어 보는 것

좋지 않나요? 꼭 등단하지 않았더라도  시인이 되는 그날까지 시를 읊조려  보는것도 좋겠죠.

 

 

 

 

방하삼거리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1~2분 정도 달려가면 둔덕골 방하리 청마의 생가가 나옵니다 .

 

 

 

방하리에서  바라 본 건넌마을 ,온통 익은 가을로 가득찼습니다.

 

 

 

 

방하리 방산교 위로   나부끼는  청마와 깃발

 

청마의 작품은 허무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위지를 시향으로  삶,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하였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과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건너  나부끼는 깃발의 소리를 들으며 방하리로 갑니다.

 

 

 

 

익어가는 들풀 소리가 톡톡거립니다.

자연의 꿈틀대는 소리가 펄펄  살아나는 시간.

 

 

 

 

 

 

 

 

 

 

 청마를   기리는  사람들은 해마다 이때쯤  이곳에서 한바탕 문학축제를 벌인답니다.

그러기를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군요.

 

 

산방산 아랫마을 방하리

 

축제를 빛내주려  먼길 달려 오신 

박동규(청록파 박목월 시인의 아들)시인과  북만주 연변에서 먼곳까지 와 주신 

최룡관시인을 환영한다는  플렌카드가 며칠전부터  내 걸렸습니다.

최룡관시인은 '유치환의 시 수(首)는 반일 수(秀)작이다' 를 국내에서

친일시로 모자를 씌웠지만 최시인은 친일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 놓아   청마문학연구로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 5회 청마문학상을 받게 된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통영에서도 매년7월  청마문학상운영위원회에서 시상하는   '청마문학상' 이 있어

올해로 13회째가 되는 '청마문학상'을  이미 수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똑같은 이름으로 불가 30분거리의 거제에서 시상하는 모습을 또 보게 되니 이거 아이러니가 아닌가요?

 

 

 

 

거수 나무밑으로  오종종 모여앉은  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

축제가 열리는 동안  저마다  희망을 적은 리번을 나무에 가득 매달기도 한답니다.

 

 

 

 

익어가는 계절 가을에는...

 

 

 

청마기념관 앞의 청마우체통

 

 

자유연애와   롱디연애를 실천하며 끝없는 시의 원천을 쏟아낸   청마의 생가앞에서라면

누구라도 아날로그방식의 편지 한통   써서  청마우체통에 넣어 보는 것도  작은 행복이 되어줄겁니다.

 

 

 

 

 

 

 

 

돌담에 내걸린 시의 깃발

 

 

청마생가로 가는 대문가의  돌담에도   청마를 흠모하는, 지역  시인들의 시가  깃발처럼 내걸렸습니다.

1937년 시단을 풍미했던  정지용의 시에 감동하여 형 유치진과 함께 동인지 '생리'를 발간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듯

아직은 생소한 이름의 시인들이지만   쉼없이 시를 새겨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

 

 

 

하늘도 바다도 구분이 모호해지는  계절 둔덕골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청마가 출생한 생가 뜨락으로  그 옛날  둔덕골의 흔적을 따라    들어 가 봅니다.

 

 

 

 

 

 

 

 

거제도(巨濟島) 둔덕(屯德)골

유치환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 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 적 베틀에 질쌈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七寸)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호연(浩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증손이며

고향 마을의 정경과 친척들의 삶의 모습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 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 생전 날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父祖)의 묏가에 부조(父祖)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고향을 벗어나지 못한 운명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父祖)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소망과 의지

 

청마는 죽어 고향 둔덕골로 돌아와 부조의 묏가에 부조처럼 한결같이 묻히었습니다.

 

 

 

시인의 생가에 가을꽃으로 활짝 피어난 청초한 꽃무리.

 

 

 

 

소녀들은 둔덕골을 골골이 걸어 가 봅니다.

 

 

 

 

돌하나,풀한포기, 나뭇잎새 하나까지도  다 특별해 보이는 시인의 마을.

 

 

 

 

청마 유치환의 생가,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

 

이곳에서 1908년7월14일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답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 선생은 두살 위인 맏형으로  청마가족은  열살무렵 외가가 있는 통영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마의 외가가 거제시  둔덕골인줄 잘못 알고 있지만 오해입니다.

 통영의 정량동 언덕위에  또 하나의  청마 생가가 있어

거제여행,혹은 통영을 여행할때면   두 개의 생가를 둘러 보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한다지요.

어떻게 시인의  생가가  두 개가 될 수  있는지...

여기에는

두 시가  청마의  생가를 각각 만들게 된 동기가 있어  퍽 재미있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증거가 될만한   호적이 없어  이런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다는데...

청마의 딸들은 법정에서  아버지의 고향은 '거제도 둔덕골'이라 하였습니다.

법정 다툼까지 가야했던  청마의 진정한  고향은 거제이며 또한  통영도 되는것입니다.

 

 

 

 

 

 

그리움도 깃발되어 ...

 

 

 

 

 

청마의 생가터 밭고랑에 세워져 있는 약력소개판

 

 

 

 

 

생가터에는 우물도 있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시인의 생가터 마당에는 그림솜씨를 뽐내려는 어린 그림쟁이들이 또한 진을 치고

열심히 가을풍경을 스케치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이날 세 개의 태풍을 맞은 나무잎은 단풍도 채 들기 전 바스락거리며  겨울로 가고 있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만큼은 어찌나 맑고 고운지 청마의 시심을 끝없이 샘솟게 해준  시조시인 이영도여사의

단아했던  모습 같더군요,

 

 

 

돌담아래로  도란도란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어린이들과...

 

 

 

 

가을을 그리려고   준비하는  아이들과  돌담을 타고 흘러 다니는 담쟁이들과  모두가 사랑스럽습니다.

 

 

 

 

 

학생기자 정가나양 청마의 생가로 온 가을을 주저않고 열심히 담습니다.

 

 

 

 

 

 

 

 

 

 

 

 

 

 

 

고향 냇가에서 김운성

 

 

'덕포 바다' 민윤기

 

 

파도가 바오밥나무 그림을 그려주는 해변이 있는 곳.

 

 

 

 

 

  세월의 등살에  허물어진듯한 붉은 황토벽도 

 청마 살아 생전 혹  눈에 띄었더라면

' 생명의 서'를 깃발로 나부끼게 하였을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연서

(청마는 그러셨지요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 날마다 '연애일기'를 썼다고?)

를 단하루도 쉬지 않고 써내려갔을겁니다.

 

 

 

만약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입니다.

  청마가 객사하지 않았더라면 정년퇴임 후

고향  둔덕골로 돌아와 또 얼마나 많은 시를 남겼을지

추측해보는 일도 의미로운 일이 아닐까요?

 

 

 

 

아직도 빨간 황토 흙벽을 두르고  쳐진듯한 스레트 지붕을 이고 선  바람벽의 이 집은 시인의 생가 이웃집이며,

 

 

 

 

돌담 타고 징검징검 건너가는 박넝쿨  호박넝쿨과 아이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곱고 곱습니다. 

 

 

 

 

 

이 곳은  동쪽 심해깊은 섬' 울릉도'가 아닌 거제도입니다.

 

 

 

시인의 뜨락

 

 

 

 

 

<만주로 간 청마>


청마는 1940년에 만주로 가서 1945년 6월에 귀국을 하게 되는데 만주로 갈  당시

주변에 아니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많아서 늘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정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 추구하는 사상을 가진 자들로

일본으로서는 항일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이러한 아나키스트들도 주요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때문에 초기작품은 그 때 일본경찰에   빼앗겼으며  만주에서는

형 동랑 유치진 선생님의 처갓집 소유의  농장과 정미소의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하였답니다.

 

 

 

익어가는 가을

 

 

 

 

거제도 영등오광대놀이가 신명나게 한판춤마당을  벌입니다.

 

 

 

 

영등오광대놀이의 동쪽에 서는 '푸른광대 '도 한컷

 

 

 

 

 

제5회 청마문학제를 알리는 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눈 청마기념관으로 들어 가 봅니다.

 

 

 

 

오늘의 수필' 이름에 대하여'

둔덕중락교  2학년 유가현,선가경양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래요.

 

 

 

 

문인들이 청마에게 보낸  65통의 편지들.

이 중에는 꽃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춘수시인의 편지도 있습니다.

 

 

 

 

 

 

 

 

 

 

 

 

 

 

 

 

 

 

 

 

 

 

 

 

 

청마의 세딸들과 조카딸도   둔덕골의 '청마문학축제'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청마의 세딸들도 먼길 걸음하셨습니다.

해마다 북만주로  청마문학기행도  함께 다녀온다고 합니다.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축제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시간 .

 

 

 

 

 집에서 작은 상까지 들고 온  지혜로움, 아이의  오늘  성적이 좋게  나오리라 믿어봅니다.

 

 

 

 

얼기설기 쌓은 돌담길을 따라  꼬불꼬불  요리조리   골목길 돌아

늦게 피어난  호박꽃 보며 걷노라니   청마의 시'병처'가 생각납니다.

 

 

병처(病妻)
                           유치환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 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가다
이 앞에서는 전 우주를 다하여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 중 략 -

아아 그대는 일찍이
나의 청춘을 정열한 한 떨기 아담한 꽃
나의 가난한 인생에
다만 한 포기 쉬일 애증의 푸른 나무러니
아아 가을이런가
추풍(秋風)은 소조(蕭條)히 그대 위를 스쳐 부는가

 

 

 

청마선생님은 불행하게도 비명으로 세상을 뜨셨지만, 복은 많으신 분이다. 부산의 장례식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것으로 들었는데, 한 시인의 장례식에 이리도 많은 인파는 아마도 전무후무 할 것이며, 세워진 시비의 숫자는 국내 최고일 것으로 판단된다.
사후에 청마의 연서를 받았노라며 여기저기서 수근거림이 있었고, 정운 이영도선생님은 청마의 편지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런 저런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기자들이나 덜 떨어진 인사들이 청마에 대하여 입방아를 찧어서 부인이신 권재순여사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 것인가.
그러나 보라 이 시를! 아픈 아내에 대하여 얼마나 살뜰하고도 아름답게 시작을 하며, 전 우주를 모두 바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 여사님은 둔덕의 방하마을 뒷산에 청마와 나란히 누워 계신다.

출처 <새거제신문 김용호 시인>

 

 

 

 

이 한적안 마을에도   뾰족지붕의 교회가 하늘을 향해 십자가를 달고 있습니다.

 

 

 

 

골목길 어디를 돌아봐도 돗자리 깔고 앉은  가을을 몰고 온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밤 따는  소녀'를 그린다는   제산초교 3학년 어린이

 

 

 

 

 

 

흙돌담길을 기대앉아  그림을 그리거나,편지 혹은 수필을 쓰거나 ...

 

 

 

 

조용한 시골동네에  문학축제가 열리자 마을은 활짝 깨어나서  신이 났답니다.

 

 

 

아주 열심히 그립니다,

 

 

 

둔덕골마르뜨

 

 

 

 

 

그런데 이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소녀들로 넘쳐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희망리번을 달거나.

 

 

 

 

 

이제 둔덕골 방하마을을   떠나며

 

 

 

 

 

둔덕포도는 유난히 달고 맛있답니다.

 

 

 

둔덕면주민센타, 석조건물로 지어져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작은 박물관처럼...

 

 

 

둔덕 선창샘

 

 

 

이렇게  맑은 우물물 보셨나요?

파란 하늘이  우물로 내려 와  우물물이 파르란히 잔물결로 일렁입니다. 

맑은 우물물 보자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 빨간 바가지로 팔 내밀어

한바가지  길어 올려 꿀꺽꿀꺽 했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일찌감치 낙엽되어  이리저리 바람에 몰려 다니며  바스락거리는 잎새를 보는 기분

벌써부터  공허해집니다.

이런  풍경 보니 겨울은  언제나 가을과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군요.

 

 청마의 생가 둔덕골을  다녀온지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용기 내어  느즈막히 포스팅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