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통영> 어느 위안부 소녀이야기 ' 나를 잊지 마세요'

이바구아지매 2013. 4. 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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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그 세번째 포스팅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에 위안부 소녀상, '정의비' 세우던 날

 

 

엉엉소녀이야기...

 

 

 

 

지난 04월  06일 경남 통영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추락한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한  '정의비 '( 통영 소녀상)가 세워졌습니다.

  계절은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4월이라  때마침 내리는  비와 함께  

 길 위로 하얀 꽃비가  쏟아져 내렸으며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짓밟혀 뭉개지기도  하였습니다.

'     꽃비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가녀린 조선의 어린 소녀같았고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은  성(Sex)에  굶주린  일본군처럼  보여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비유가 다소 엉뚱한가요?

  

 

 

 일제강점기,(1910,08,29~1945,,08 ,15)

  우리지역  통영, 거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간  통한의 고장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지역에  서울의  일본대사관앞 국민소녀상 ' 평화비'  , 미국의 위안부 ' 기림비' 등에 이어

통영의  소녀상 '정의비'를 세우게 되었음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역사의 진실'  로 인식될것입니다.

 

1991년 8월 ,

 '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중언으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및 역사 바로알리기가.' 수요집회'로 이어지고 있을무렵

 ,인권의 메카로 불리는 통영에서도  70여년 가까이  철저히  

잊혀진  시간을  음지에서 살아야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96, 통영) 할머니가  용기있게   걸어 나와  외치며

,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김할머니는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위안소에서 겪었던   '성노예'  의   잔학성과  반인류적  인권 유린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외치는 인권운동가로 변신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한편 ,  이날  김복득할머니를 비롯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 송도자),

 이군현국회의원, 김동진 통영시장 ,관계기관장, 시민들과  통영,거제, 창원, 부산에서 온  고등학생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벅찬 감동의 장이 되었습니다.

추모비(통영 소녀상) 건립은  통영,거제시민들의 순수한 모금으로 이루어졌으며

감할머니께서도 통영,거제 추모비 건립을 위해   200만원을 쾌척(快擲) 하였습니다.

 

 

 

  정의비가 세워지던  날의 벅찬 감동 함께 보시죠.  

 

.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에 천년을 이어갈   '정의비 ' 가  우뚝 섰습니다.

 

 

 

 

정의비 (正義 碑)

 

비문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정의 비(正義 碑)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sexual slavery)로 강요당한

약 20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추모하고

 통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모질게 살아남아 온몸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거하며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세계 곳곳에 알리며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의 용기어린 외침을 받들어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어린소녀와 여성의 존엄을 말살하는

반인륜적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의의 역사를 새겨

폭력과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추모비는  어린 소녀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이 곳에서  바오밥나무처럼 뿌리내려  천년(포천석)을  지키고  서 있을겁니다.

 

 

 

 

통영시 동호동 남망산 조각공원

 

 

 

 

 

통영문화회관 앞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의비 ' 제막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일을 하는고 있는  

 ,통영, 거제지역의  동아리소속(도화지, Aye. 광개토역사모 , 추임새)의    

고등학생들입니다.

 

 

 

 

4월의  비를 맞고 있는 통영항

 

 

 

 

 

 

희망의 리본을 달고  있는 학생들

 

 

 

 

어린소녀들이 끌려 가서 당한  죽음같은  악몽에  

비하면  봄비를 조금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10대들 ,

그렇더라도  대견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 해 주세요.'

꽃할머니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사진, 엽서, 증언, 다큐멘터리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례를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돌격 1호' 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일본 정부에서 일본군들에게 지급한 '콘돔'이란 놈입니다.

요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일본군들에게 지급하여   집단강간, 집단 폭행을 자행했습니다.

전쟁을 빌미로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관리되었던  끔찍한 범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희망승합차이야기'

 

이 차량은 2011년 11월 22일~12월 14일까지  twirtter. 모금운동으로 마련한  희망차로

twitter에서 미디어  몽구님의  제안으로  할머니들에게 '희망차' 를 만련하여 드렸다는 ...

그 차가  바로 이차였군요.

 멋진 제안 하나가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꾸었습니다.

미디어 몽구님의 제안 ...정말 멋져요.

 

 

 ''역사에 남기기 위해 위안부 '... 故 김학순 할머니

 

 

故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과  그림으로  거제옥포고등학교  '광개토역사모동아리'학생들이

파일로 제작하였습니다.

 

 

 

故  김학순 할머니 동상 (경기도 광주시 퇴촌읍 원당리 '나눔의 집')

 

 

"제 인생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끝이 났습니다.

하늘을 바로보지 못한 부끄러운 인생이었지만  그러나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피맺힌 한을 풀지 못해서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한국과, 북한, 일본 ,중국 ,독일,네덜란드 인도네시아

그리고 동남아의 많은 나라에서

  용기를 낸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참잘했어요"할머니, 당신의 용기가 아름답습니다."

 

 

 

 

인권회복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다양하게  이어져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밝히지 않은

숨겨 둔 '위안부' 관련 모든 문서를 공개하라

진실은 '꼭' 밝혀집니다.

 

약20만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 및 여성들의 희생  

 20세기 최고의 인신매매

한순간 사라진 소녀의 꿈

집단강간, 강제유산, 잔혹한 죽임 ...

 

일제의  강제에 의해 끌려간 소녀들의  인권유린  그 작태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소녀들의 삶이   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으로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이름 , 강제종군 위안부 ...

 

위안부 할머니들은  곧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당한 일이었기에  

모두  나서서 일본으로부터 사죄와 법적배상을 받아내야합니다.

 

2007년 미국 히원의 위안부  통과를 주도한  마이클 혼다 의원과 에니

  팔레오미베가 의원은 위안부와 '성노예'  용어 논란에  대해 

"당시에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위안부라는 표현보다

'성노예'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이름대신 '후미코'라 불렸던 통영의 김복득할머니

 

 할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셨음에도 '정의비'가 세워지는 가슴벅찬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양쪽으로  통영여고 Aye 동아리소속의  김가영,류은정양이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함께하였습니다.

 

이날은 또   김복득할머니 일대기인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 책이 출간되어 가슴  벅차고

의미로운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경남도교육청은 또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 자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김할머니의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를 일본어판으로 1천여권 펴내

제일교포  자녀들이 다니는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교민단체에 보낼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작년  8월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뵈었을때처럼   여전히 고운 할머니 ,

하지만  이 날은  몸이  편찮으셔서  몹시 힘들어 하셨습니다.

 

김할머니는 18살  어느 날

 거제도에 살고 있던 고모집에 가는 도중  길에서 만난 일본군에 끌려  부산을 거쳐  중국 , 필리핀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후미코' 라 불리던 시절 ,필리핀의 위안소에서 만난

한 일본군장교의 도움으로 조국이 해방되기 직전  간신히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후   일본군장교는 김할머니를 찾아와  청혼을  했다고합니다.

  만약  그 청혼을 받아 들였다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셨을까요?

 

 

 

 

 

 

 

희망 발언,  

통영여고, 통영고 , 충렬여고,거제옥포고 창원토월고, 부산금명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정의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희망 발언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의  어린 소녀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일어나서 안된다고

창원 토월고 김명은양은  눈물 흘리며  외쳤으며

 

통영고등학교  강병주군(통영고동아리 도화지장) 은  변화와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는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뜨거운 호응을  이꿀어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학생들의 발언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내용하나,

 

  일본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내용인데요

 전쟁중 일본군 위안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40% 의 학생이   "그럴수도 있지"'였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가 나오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교과서에  일본군의 강제 종군 위안부 내용이 아예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이야기 해 주세요 

 

 우리에게 진실을 다 이야기 해 주세요.

화가가 되고 싶었던 12살 어린 소녀가 즁국의 하얼빈으로 끌려 간 이야기,

    어느 위안부 소녀의  첫사랑이 담긴 손수건이야기와

양녀로 간 주인집 딸 대신  끌려간  소녀 위안부의 기구했던 운명의 이야기며...

 

 

 

 국화꽃을 든  거제옥포고  학생

 

위안부는 우리또래  소녀들이었군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요, 안타까워요

우리도  이제  진실을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 더 많은  이야기를 유리에게  들려  주세요...

 

 

 

 

 순결을 의미하는 흰천속에 가려져서 제막식을  기다리는 '정의비'

 

 

 

 

노란 희망 리본에 적힌 할머니를 위한  

 

할머니, 우리 같이 해요.

할머니를 응원합니다.

 

 

 

거제,통영의  17,18세 소녀들이 통영항 바로  이곳에서  

 일본군에 의해 배에 태워져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로   짐승처럼 끌려 갔다고 합니다.

 

 

 

 

.

거제옥포고 백민주양???  이름을 까먹은듯...

 

 

그랬군요 할머니가 사랑한  조국은

' 힘 없고 가난한  조국이었고, , 하지만  바보같은  조국을  버리지 못하고 안고 가야 했다죠.

  20세기의 반인류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의 드러난  실체,  

 일본군의 군수품에 불과했다는 아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내릴 것만같은 ... 불쌍한 우리할머니,

꺾여버린 꽃, 짓밟힘,  수치스러움, 공포감, 절망감은 또 어떻게 감당하셨을지.

 

 

 

'정의비' 제막식

 

통영의 위안부 소녀상  '정의비'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통영에서는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정의비' 로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이어  거제도에 세워질 추모'비'는  또 어떤 이름을 달게 될지...

 

 

 

 

인권운동가 '김복득할머니

 

통영의 김복득할머니,둘러져 있던 흰천을 벗겨지고 모습을 드러내자  

  '소녀상'을 만지고 또 만져 봅니다.

" 그래 이게 바로 나야  내가 이랬어

곱기도 해라 , 백옥처럼 ... "

이날  너무 많이 우셨던  할머니께서   

희망의 정의비를 보자  울음 그치고 말갛게 웃으셨습니다.

 

오키' 소녀상 '정의비 '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며   화해의 손짓으로

  평화를  수호하는 이미지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통영의 '정의 비 ( 통영 소녀상)' 

 

소녀가 세월을 따라 가면  할머니가 된다는 진실 앞에 선

김할머니도 68년전 , 꽃같은 소녀였습니다.

통영의 소녀상 , '정의비'는  이 지역의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을 위로해 줄겁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평화비처럼 ,

 국민소녀상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살아 있는 동안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텐데 ...'

김할머니의 이 한마디에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 서 있던  모두는  숙연해졌습니다.

 

 

 

 

 

할머니의 희생을 잊지 않을게요.

할머니의 아픔을 함께 할게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힘 없는 나라 조국은  이렇게 예쁜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만해도  내나라의 소중함을 마음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었을겁니다.

국화꽃을 든 소녀는 이날 꽃할머니의 슬픈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아물지 않은 상처, 

 우리의 역사를 교과서 밖에서 혹은 학교벆 역사의 생생한 현장에서

  직접 체험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먼저 간 소녀들의 영전에 바치는 책 '나를 잊지 마세요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우리지역의  마지막 생존자 이신

김복득할머니의 일대기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이 책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한권의 책에 담은 증언록이라고 합니다

한권의 책으로 진실을 다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일제강점기의 빠져 있던 역사 강제 종군 위안부의 기록을 마침내 살려내었으며

  이제 속일 수 없는  역사가 되어

 학생들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마트면 사라질뻔했던  일본의 만행은

교육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질것입니다.

 

 

이 책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무렵 일본이 위안부에 관련한 대부분의 문서를 폐기하고

 증거가 될만한 장소와 증거물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한동안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 같은 일이 자행되었는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부분으로

 

1991년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시작하여 잊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고 중요한 역사의 부분으로 새롭게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인 증언록의  

 교육적인  가치는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김할머니의 생생한 증언과 자료화면으로  영상세대인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동영상  CD를  자체 제작하여 각학교로 보급된다고 합니다. 이일은

지난해  8월 통영서울병원에 입원 해 있던 김할머니를 고영진 교육감이

위문을 가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 교육감은  김할머니를 위문하며

"할머니가 겪었던 아픔을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학교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다" 고 제의했고  

김할머니께서 흔쾌히  받아들여 성사되었습니다.

 

 

 

 

 

 

 

꽃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

 

 

 

이  책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삶을 살아야했던

 한 여인의  삶과 진실이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었습니다.

 

 

 

 

통영의 소녀상 '정의비'에 꽃을 ...

 

 

 

 1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

 

1940년

12살,  집이 가난한 소녀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하여

 단돈 100원을 받고 일본군수공장으로 가는 트럭에 실려  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공장이 아닌  위안소라 부르는 곳이었어요.

일본군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적게는 30명, 많게는 70여명을 상대한

무서운 고통속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죽는것이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로  살아 있음이 고통이었다 합니다.

 

 이렇게  슬프고 잔인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의 진실을 더 많이 들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  할머니들은  점점  사라지고(죽음) 있습니다.

 작년에도  김할머니의 친구  한분(거제할머니) 이  돌아가셨습니다.

 

시러  시러  시러

 

일본군은 항복을 선언한  이후인  1947년까지도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를 

군이 직접 관리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증언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2013-04-07    아직도  그곳에는  위안부할머니가...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중국에 버려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처음 뉴욕에서 공개됐다.
 5일 맨해튼 코리아소 사이어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안세홍 작가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수석부회장 스테픈
노이어퍼 박사와 대담을 통해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이날 강연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려 6만 명의 회원들에 제공할 예정이다.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3-04-07


- 두 할머니가 걷는 저 황량한 곳은 어느 지역인가?

“만주 벌판이다. 저 지역엔 네 곳의 위안소가 있었다.

두 할머니는 소녀 때 끌려와 같은 위안소에 있었고 위안소에서

 불과 몇백m 벗어나지 못한 마을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지금도 저곳 땅을 파면 위안소와 관련된 물건들이 나온다.

위안소 근처에서 사는 것 자체가 두 배 세 배의 고통이었다.

헤이룽장(黑龍江)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도 오랜 세월에 우리 말을 잊었다.

 동족을 만나고도 통역을 통해야 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 아팠다.


 

지금까지 통영에서 '소녀이야기' 의  빨강머리 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