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장승포의 추억, 등꽃엔딩

이바구아지매 2013. 5. 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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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등꽃엔딩 ...

 

 

 

 

 장승포의  오월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2003년 겨울,

다섯번째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우리 장승포로 이사갈까?"

"그래  그러자 "

그렇게  슬그머니 꺼낸 한마디로 군인처럼   이사를 갔다.

 

  석양이 아름다운 서쪽에서 살았는데 석양이 지겨워질때쯤  

해 뜨는 동쪽으로  옮겨 가서

  2011년 08월까지  등대처럼  살았다.

 

눈 감고 걸어도 또렷한   바닷가 정경 ,  포말로 부서지며 

달려오는 파도소리 들으며  그리 살았다.  

 

조팝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의 하얀 밤이면  바다가 키우는  늑대의 울음을   들으며   

' 쉘부르의 우산'처럼  큰 잎새를 매단   오동나무가  언덕에서  도깨비처럼 흉내내는

  밤에도  귀신처럼 걸었다.

 

  해안도로를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돌아서 

  태평양이 시작되는 입구쪽  빨강 등대와  바다 간너편 하얀 등대까지라면  발끝의 느낌만으로도 

 찾아 갈 수 있는  정직한  마법정도는  부릴줄도 알았다.

 

아주 가끔씩은 나붓나붓  신작로를 걸어가서  편지나 소포를 부치려고

  제비 세마리가 빨강우체통에서  날고 있는 풍경이 있는   장승포우체국에 들러곤  했었다.

 

조금 더 장승포를 걸으며  이번에는 착한  가격 몇천원으로도  자장면이 맛있어서 광고하지 않아도  

소문난  중국집 천화원을 기웃거리며 걷는 재미도 궁금하고 좋았다.

 

햇살이 쨍쨍거리는 여름에는  냉면이 맛있다고 조금 엉터리로 소문났던 , 

하지만   바람맛이 상쾌하고   좋았던 ,

  할무이냉면집의 일본식  다듬이방에 앉아 함흥냄면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동안

일본의 유황섬 , 이오지마섬을 그려 보곤 했었다.

그리고 두편의 영화중 마국의 시각으로 만든  <아버지의 깃발> 일본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떠올리곤  했다.

두편의 영화는  태평양 전쟁중  일본의 이오지마섬을 배경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영화였다.

그 섬 이오지마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에 비유되었으며

물,제비,참새가  없는 섬이라고 했다.

"손님,냄면 나왔습니다."

하고 종업원이  소리칠때까지   장승포와 가까운 일본의 대마도를  멍하니  들여 다 보고 있었다.

 

 

 바람이 많은  태풍의 계절에는  바다와 가까운  ' 신부동' 까지  성질을 부리며

 올라와 쓰나미처럼 겁을 주곤했던 바다 ,

 그런 와중에도  오늘은  또  누가 결혼할까?  

적어도 '신부동''이라면 날마다 한두명쯤 결혼하는 동네여야 한다고 우기곤 했었다. 

7인의 신부가 아닌 , 날마다 신부, 

  그럼 안되는 거니?

 날마다 신부로 살아가는 동네에서라면  적어도 두세번쯤의 결혼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행운정도는  당연하게  내몫으로

챙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내게 그런 행운 따위는   오지 않았다.

 

갈매기 꺼지라 ...

사시사철  시끄럽게 날아올라 끼룩대는  바다의 수다쟁이 갈매기군단들은

 비린내   짙게스민  바람냄새를 날리며  가장  높게 날았으며  또 가장 멀리 날았다.

그런  바닷가에  도도하게 홀로  우뚝 솟아 있으면서   갯가  사람들의

호주머니속   쇠주값조차    넘보고 

 물질해온  해녀들의  소라,전복  판 몇장의 지폐조차 저금이라는 핑계로   홀리는

 장승포수협에도 종종 가 보았다.

 

바닷가는  수다쟁이, 소문젱이도 많다.

 지심도의  동백꽃과  팔색조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이라며  작가 윤후명의 입을 빌어

' 호오이~ 호오래이'

하고 뻥을 치게 하였지만 그 말에  즐겁게 속아서   

  지심도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홀리듯 가서   마슬가듯 배를 타는 일도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섬, '외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섬은  뭇사내들을 유혹하는  사이렌도 아니면서  

그  섬에 낚시를 온 서울손님을 유혹하여   눌러 앉히고는

  죽도록  고생시킨 외로운 섬이었다.

 시나브로   40년 동안이나  섬에 묶여서 실패를 거듭하며  고통과  고독을  처연하게 견뎌낸  사람이 있었다. 

어휴, 성질급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낙담하여 현해탄을 건너다   바다로 첨벙했던  윤심덕처럼   자살을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섬이 되기로 결심한  남자는  아내와 더불어  섬을 가꾸었고 ,

결국  멋진 외도보타니아를  만들었다.

 인간승리로 이끈  한남자의 이야기는 세상으로 곧장 퍼져나갔고

영화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그런 그는  안타깝게도  몇년전 운명하였는데  죽어서도  섬의  전설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의 전설을 확인하러  이곳으로  와서   외도로 가는  유람선을 타게 되었다.

 

바다는 유혹의 '사이렌'이다

외도로  가는 길은 분명  사이렌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런 사이렌의 유혹이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그섬으로 가고 싶은 날에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서  기웃거리기도 했다.

 

다시 언덕같은 혹은 절벽같은 높은곳에 위치하여  내려 다 보며  바다로 나아가는

 배모양을   형상의 예술적인 건축물의  거제문화예술회관이 먼 바다를  향해 있고,

  역시  동산의 언덕애  위치한  바다의 별,  해성고등학교가  등대를 바라보다  

나른함에 졸고 있는듯 보인다.

 

   이번에는 등나무다.

두모로타리를 오른쪽으로 꺾어 옥림으로 가는  방향의  입구 구석배기에서 

   보랏빛 고운 꽃을  등처럼  주렁주렁 달고

 미풍에 살랑대던  보라색  '등꽃 '

난  등꽃이 보고싶어 달려왔는데

찬란하게 꽃으로  피어나 고혹적인 유혹으로 스러질듯 현기증에 아득한 몽롱함을 주었던

 그곳이  내가 흠뻑 기억하는 장승포였는데

오늘은 '등꽃엔딩'...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걸어도   돌부리하나 까지도 기억할 수 있다.

 일곱해동안   정들었던  장승포

그런데 어쩌누, 마음 먹고 찾아 온 두번째 고향같은  이곳에

  푸른 등나무에 매달려 바람그네를 타던  등꽃이란   한송이도 없다 . 

  해마다 이곳에서 만나  마음 가운데서  지즐대던  등꽃이야기 ...

  이제  찬란하게 쏘아대는  여름햇살을 막아줄 연두의  그늘을

만들고 있는,

대숲에서  미운 오리처럼 한그루뿐인   등나무에게서  오월의 노래를 듣는다.

 

 

 

 

 

 

 

 

 

 

 

 

 

 

 

 

 

 

 

 

장승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