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국민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가 이시우선생과 고향 거제 이야기

이바구아지매 2013. 6. 2. 11:05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나,

그리운 내 님이여 ,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

.

국민가요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른 가수는 김정구 선생이다

그럼 이 노래의 작곡가는 누구일까?

경남 거제가 고향인 이시우(李時雨 1913~1975 )선생이다

본명은  이만두, 1913년 11월4일  거제시 거제면 남동리 45번지에서

아버지 이경수, 어머니 윤재연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8년 거제초등학교(19회)를 졸업하고  경남 창원군  국산리로  이사를 갔다.

만주하얼빈상업학교(1932~1936)와 만주국립대학(1936~1951)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 전문부에서 법학을 전공,

다시 만주로 돌아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하얼빈지국(1941),

'조선상공신문' 하얼빈지국(1941~1945)에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에서는 대한민국 내무부장관 촉탁(1948),대한반공 인천시 연맹 특무국장(1949)

부산시 비상사태 대책위원회 선전부차장(1950), 경상남도 비상사태 대팩5위원회 선무과장 (1950),

 경기도 부펑 치안사 주전사 주임 근무를 시작으로  경기도 부평 형사주

(1954)으로 면직 후 1958년 특채로 경상남도 동부산 경사근무를 거쳐 전암 함평 주임을 끝으로 퇴직했다.

 

면직 후 특채 전까지  4년동안 대한건설공사대표 국제산업여신주식회사 조사국장, 국제레코드제작사

.부사장,등을 지내기도 했다. 2009년 초까지만 해도 선생의 초등학교 졸업이후

 학력과 경력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가

2009년 4월 선생의 손자 (둘째 아들 이홍장의 장남)이봉희씨가 전남경찰청에서

발급받은 경력증명서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으며

 

선생의 초등학교 학적부에는

" 창가에 소질이 있다"

 라고 적혀 있어 천부적인  음악성을 타고났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월간 대중잡지 '천리마'2005년 5월호에 애절하기만 한 이 노래의 창작 동기와

과정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1935년 간도 순회공연에 나섰던  유랑극단 '예원좌' 단원들과  

중국 지린성 투먼시의 만춘여관에  묵게 되었다.

 

 이시우 선생은 당시 '예원좌'의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날 밤 ,  옆방에서  비통하고 처절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 무슨일로 슬피우는지 , 궁금하여 사연을 알아보니  

독립군 활동을 하던 남편을 수소문해 두만강까지 찾아 온 한 여인이  이미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 망연자실 절망에 빠져 통곡한다는  기막힌 사연을  여관  주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날밤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북쪽의 한명천에게 비통한 여인의 아픔을  들려주자   

     문학청년 한명천이  즉석에서 구슬픈  가사를 썼고 ,

이시우 선생은  한 서린  두만강을 바라보며 나라 잃은 설움과 남편 잃은

한 여인의 슬픔을  담아  밤을 새워 오선지에 멜로디로 그려나갔다.  

이렇게 태어난 노래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

이 같은 사실은  북한의  잡지 '천리마'에 자세히  적혀 있다고 한다.

   

 잡지는 또  이 노래가  한명천 작사(1절) , 김용호 작사(2,3절) ,

 이시우 작곡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밤새  만들어진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은

다음날 '예원좌'의 소녀 가수  장성월이  간도 순회 공연에서 

처음 불렀는데 반응이 좋아 공연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2,3절 가사를  김용호 선생에게 부탁하여   만들게 되었다. 

 

한 여인의 한을 담아 노랫말과 곡으로 만들어진 민족의 애창곡 ' 눈물 젖은 두만강'

은   친구이자 가수인  김정구에게 전해졌고 1938년 ok레코드사가 첫판을 내게 되었다.

 

음반이 발매된 직후 

 조선총독부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으나

광복과 함께 다시 널리 불리면서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

선생은  퇴직 후에도 작곡활동을  계속하게 되는데

  섬 아가씨,눈물의 국경, 타향 술집, 봄 잃은 낙동강, 님 없는 거제도,

인생역마차, 영도다리 애가,아내의 사진, 진도 아가씨, 등을 발표했다.

어린 삼남매를 돌보며 달동네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작곡 활동을  멈추지 않던  선생은  

1975년 1월  추운 겨울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집으로 귀가 하던 중

교통사고로 한양대학교 영안실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고 인천의  용화사에 안치됐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국민가요로  불리게  된 데는 

1960년부터 1990년까지 닐미다 방송되었던

KBS 라디오의 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 의

 주제곡으로  흘러 나오면서 인기가 치솟게  되었고

본격적인 국민가요로  불리기 시작,

작곡가 이시우 선생의 이름도 되살아났다.

 

 

일생의 역작을 작곡한 이시우선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가난했고,

가수 김정구선생은 친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탄탄대로의

인기와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지난 4월,

가곡 '동무생각'애 나오는 '청라언덕'을 찾아  대구로 간 적이 있었다.

대구는  국민가곡 '동무생각'의 작곡가 박태준의 고향으로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이라고 주장하는 대구의 동산선교언덕을 찾아가니

동산선교언덕 (지금은 청라언덕으로 부름) 중앙에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으며

  그곳의 특별했던 점은  청라언덕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작곡가를 생각하며 동무생각을  부른다는 것이었다. 

또한   청라언덕이란 제목으로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도 한다고 했는데

대구의 작곡가 박태준선생을  기리고 사랑하는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내가 찾아갔던  4월의 그날도 청라언덕으로부터 들려오는  노래 '동무생각'이 잔잔하게 듣기 좋았다.

 

 대구의  박태준선생과  거제의 이시우 선생 두분 모두  훌륭한  작곡가이다

하지만 현실은 판이하게 달라서  박태준 선생을 기리는 대구는  열정이  대단하여

쉬지않고   알리는  작업을 하였던  덕택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을 찾아 대구로 향하고 있다.

 

 

 

 다행히

거제시 거제면번영회가  힘을 모아  이시우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

 지난 2월 거제시  거제면  거제농업개발원  내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선생의 노래비를 세운데 이어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가 흘러나오도록  음향장치를 새로  설치하고 ,

흉상도  세워  선생의 음악적 혼을 다시 일깨울 예정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가 이시우선생

.

 

 

 

추억의 멜로디 , 엘피판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비

 

 

 

 

 

 

 

 

 

 

 

 

 

 

눈물 젖은 두만강

 

1절작사, 한명천,

 2,3절작사  김용호 

 

 작곡 이시우 ,

노래 김정구

 

 

 

 

거제시농업개발원  

 

거제시 거제면 서정리

 

이 노래비는 해마다 거제섬꽃축제가 열리고 있는 '거제시농업개발원' 에 위치하고  있어 

사철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과 식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산책하듯  가끔씩 찾아가도 흠뻑  좋을 명소이다.

 

 

 

거제 역사와 문화의 발상지 '거제면사무소'

 

 

 

이시우선생이 다녔던    거제초등학교, 

2013년 현재  개교 106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건물로 흔하지 않게 석조건물로  지어진  아름다운 학교이다.

 

 

 

 

거제초등학교 교가  작사 윤석중 ,  작곡 금수현

 

 

이시우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  , 거제시 거제면 남동리 남동마을, 

 

 

파이팅이곳에도 선생이 '살았던 곳' 이라는 작은  표지석 하나 세워두면

조금 더 기억하기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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