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거제도의 슈바이처 ,'닥터 시블리'

이바구아지매 2013. 6. 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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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 흙이  되어 거제도민과  다시 만나는 

의료선교사  닥터 시블리(네번째 이야기 ) 

 

 

 

2012년06월08일 (토)오후 2시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 실전공원에서 특별한 추모식이 있을 예정이다.

 

 세상 모두에게  빨강머리 앤이  전하는  영화 같은  감동의  

순간을  누구도  놓치지 말자.

  

 

44년 전 여전히 유배지나 다름없었던 낙도 오지 거제도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찾아 온 

 벽안의 의료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흙벽돌로  손수 병원을 지었고  '거제지역사회개발건강원(1969)이란 이름을 달고

 가난한 섬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1969년 이곳으로 온 그는  1977년 6월 거제도를 떠날때까지

  아픈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었던 의사였다..

그는 2012년 6월24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미국의 뉴햄프셔주  에트나시 자택에서 일요일 새벽  운명하였다.

 

그리고 1주기가 되는 6월, 한줌 흙이되어  그리운  한국땅으로  돌아와서  

대구 동산의료원의  은혜정원(외국인 선교사 묘역) 양지녘에서  6월 5일  

  영원히 잠들었다.

 

이어 6월8일 

  젊은 날  한국농촌 지역사회 의학의 등불을 밝히며  열정을 불태웠던 곳,

한시도 잊지 못한  그리운 땅 거제도를 찾아온다.

옛병원터 거제건강원 (사람들은 실전병원이라 불렀음,)을 돌아보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실전공원에 도착하면  유족들과 거제시,

그리고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옛동료 의사, 간호사, 지역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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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의 슈바이처,닥터 시블리 

 

 존  로시블리( John  Rawson Sibley, 1926~2012한국명 손요한) 

 1926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하였다.

앰허스트(Amherst) 대학 재학 중 이차대전 말기에 군 복무를 하였으며,

1948년에 졸업을 하고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1952년에 졸업하였다.

 뉴햄프셔 하노버에 있는 힛치콕 기념병원에서 병리와 일반외과 수련을 1959년에

 마치고 미국 장로교선교사로 갈 것을 준비하였다.

 

 

 가까운 옛날 ,  44년 전

낙도 오지 거제도를 찾아 온

 존 로손 시블리 (John  Rawson Sibley, 한국명 손요한 , 1926-2012)박사 ,

그는 1960년 당시 34세의 젊은 나이로  

미국 연합장로교 소속의  파송  의료선교사로 한국의 경북 대구땅을 먼저 밟았다.

 

  1961~ 1969년까지 그는 대구 동산병원 외과에서 진료활동을 하기시작 , 

 그 시절  구하기 어려웠던 

미국의 의학잡지들과 외과 관련도서들을 보급하는등 

선진 외과 지식을 한국에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나환자들을 위해 나환자 재활마을 설립을 도왔고  미국 나환자 선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나환자병원인 애락원에 내,외과 병동을 설립하는데 힘을 보탰다. 

 

1969년 그는 다시 가난한 낙도 오지로 가서  의료봉사를 펼쳐보겠다는 신념으로

대구 동산병원의  간호사 4명과 함께  거제도로 오게 되었다.

당시 거제도 땅을  밟으며  처음 만난  섬마을의 생경한 모습과  맞닥들인 

그는 거제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젊은시절           

존  로손 시블리(John Rawson Sibley, 1926~2012한국명 손요한)

 

 

낯선 땅 , 거제도에서...

 

 시블리 박사의 의료봉사 손길이 미친 지역으로는  

거제도 북부지역인  연초,하청,장목지역(3개면)이었다.

  당시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 낙도 오지에서 감히 병원을 열었던 것이다.

 

먼지나는 신작로를 따라  하루에 두세번의  버스가 돌부리에 걸려  

 덜컥대며  아슬아슬하게  다니던 비포장 도로와  

  밤이 되면 시골집 문풍지를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는 바람으로    

 창호지문살이  삐걱이며 밤새  울어대고 ,

   가느다란 실바람에도 힘없는  호롱불은  훅 하고 꺼져버리기

 일쑤여서 몇번이고 다시 성냥불 켜서 .

 호롱불을 밝히느라  새잠을 자고  아침을 맞곤 하던 시절이었다.

 

마당에는  아무렇게나  놓아 둔  장대,  몽당빗자루 , 지개, 삽 곡괭이 등이

흙먼지 뒤집어 쓰고  놀다가   곤하게 잠들었던 섬아이는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마루에 있는 요강에 오줌을 누러  

 나오는  아이에게 도깨비로  둔갑하여  겁먹이던  

 켜켜이  먼지 쌓인  옛날이야기속 풍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제도 북쪽 마을로

영화' 타이타닉' '위대한 개츠비'에서  열연한  인기배우  디카프리오처럼 

 키 크고 잘 생긴 파란 눈의 의사가  가족들과 함께 와서 만난  풍경은  아마도

고 이태석 신부가  찾아가서 아낌없이 봉사했던 

 아프리카 오지 수단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밤이면 도깨비가  나와 사람들은 골려 먹던 시절 ,

이 땅에 온  시블리 박사는  붉은 흙벽돌로

병원을 지어  낙도 오지의  아픈 사람들의 치료는 뮬론아거니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는  찾아가는  치료를 기꺼이 해 주었다.

  

 부인 손진희 여사 ( Jean   B,  Sibley)또한

가난하고 무지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하여   

배움의 기회를 주려고  밤낮으로 노력하였다.

거제시  하청면에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손진희선생님께 공부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수업이 있는 날을 설레이며

기다렸을만큼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녀를 " 진희샘 " 이라 불렀다며 오래전 기억을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손진희여사는 단순히 시블리 박사의 부인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능동적이며 부지런하여

    염소를 길러 젖을 짜  판 돈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였는데

  그녕의 이름을 딴 '진희장학금' 을 받고 공부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기에 눈코 뜰새없이 바쁘자 남편을

도와 적극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고 한다. 

부인   손진희여사로부터  아픈 곳을 치료받은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손진희여사님,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요. 

  상록수의  채영신  같은 분이셨어요 "

 

 

지역사회 의학사업의 효시- 존 시블리

 

 

 

                                                                     

젊은시절           

존  로손 시블리(John Rawson Sibley, 1926~2012한국명 손요한)

 

 

1974년, 경향신문에 소개 되었던  닥터 시블리의  '지역사회의학사업'

 

오키 

 

  1974년 01월23일 경향신문에서 소개한

존 시블리의 병원중심 의료 벗어나 '지역사회의학 활발 ' 

선교사 존 시블리  박사는  거제도를 중심으로  같은 사업을

 연중무휴로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귀에 생소한  지역사회의학이란 어떤것일까?

지역사회의학은 사회가  다변화, 다각화함에  따라

종합병원중심의  의료체제로는

국민보건을 관리할 수 없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의학의 한장르이다.

 

참잘했어요

 

 

'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 제 3잡 

 

지역사회 의학사업의 효시- 존 시블리

    유승흠 ,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 ( 전 연세대학 예방의학과 교수)이 집필한 (닥터 시블리편)

 이 책은  국가와 국민에게  지대한 공헌을 한 휼륭한 의사들의 업적과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김기순  전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존 시블리 박사님을 도와  거제도민의 건강을 책임져 준  분이다.

 

 

 

지역사회의학의 효시 ,

'보건의료는 모든 국민의 권리이며 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딕터  시블리는 낙후된 농촌지역의  할벗고 굶주리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챙기는 지역사회의학을 국내 최초로 시범 운영하였다.

 

 

닥터 시블리, 의료선교사 이야기는

2011년 2월  거제도 본섬에 딸린 부속섬  칠천도를 향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기념비 하나를 단초로 삼아  2년 4개월여 발품 팔아  부지런히 쫓아다닌 결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닥터 시블리가  부산에 갔다가  배를 타고 하청으로 오는 길에 

 칠천도에서 내려 다시 나룻배로 갈아탔는데 그만  깜빡하고  

가방을 두고 내리는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가방속의  돈은 없어져도 개의치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의 여러곳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던 지인들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잃어버려  난감해하자  하청면 소재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지혜를 발휘하여  

아침 조례시간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사연을 들려주며  닥터 시블리의  잃어버린 가방찾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단다.

  

 

암에 걸린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  왕진가방을 들고 날마다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모습을 들려주기도 했다. 

 

 

 

 

 

 

 

약속의 나무밑,

(거제시 하청면 사환리 ) 

시블리 박사님께서 유승흠교수님을 불러

거제도에 와서 꼭 1년만 '챌린지'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는  느티나무밑

덕분에 우리나라의 초일류  우량기업인  유한양행가의 자제분께서

거제도의 산골오지에서 신혼살림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믿기지 않는다. 

 

 

 

 

존  로손 시블리(John Rawson Sibley, 1926~2012한국명 손요한)의 기념비

 

 

 

2011년 08월  장맛비를 맞으며 서울에서  바쁘게 달려 와 이곳을 찾은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 (전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시블리 박사의 기념비를 어루만지며 회환에 젖는다.

 

 

 

2000년01월01일  개통된 칠천연륙교

시블리 박사가 생전에  이런 모습 보셨다면 아마  눈시울 붉히셨을게다

칠천도를 걸어서 건너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제지역사회개발건강원(실전병원)이 있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도로가 뚫리고 

35번 시내버스가  칠천도를 향해 달려 간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  

 44년 전 이 땅에 오셨던 벽안의  의료선교사는 

이제 바람을 타고   그리운 땅, 거제도를 찾아온다.

 

거제도의 슈바이처 ,시블리 박사님,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