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 길은 언제나 뜬눈이다' 우리는 영주로 갔다

이바구아지매 2013. 8. 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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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떠나는 여행길에서 ....

 

 

 

 태양의 계절, 

이글이글 타올라 숨이 멈춰버릴듯한 더위,

이런 더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집 나서면  개고생'

그렇더라도 더위에게 쫓기듯  손사레 치고 물러난다면 

세르반테스의 영혼인  '돈키호테'가 비웃을지도,

그래, 휼륭한 기사가 되기 위해 기사수업을 떠나는  

돈키호테도 가마솥 더위를 정면으로 맞서서 용감하게 길을 떠났어.

그럼  

우리가족도  돈키호테처럼 태양을 향해 가는 거다.

 

 

2013년 08월08일 (목)

 

  오후 3시,

정오의 태울듯한 더위는  한풀 꺾였으리라 생각하고 

경북의 몇몇 오지를 여행하려고 길을 나섰다.

용기있게 출발은 했지만 여전히 식지 않은  더위속으로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처럼 고행의 연속이다.

이런 더위라면  아스팔트에 시달린  승용차의  바퀴마저 '퍽' 소리내며 주저  앉을지도 모른다.

 

 올 여름 더위는 찜통더위에서 한단계  더 높아진   

 '지옥더위'라  불릴만큼  숨막히게 덥다.

 이런식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면 머지 않아  세계적으로 

더위를  인정받는 열사의  땅  이스라엘의 '티라드 츠비'

에서 자란다는  대추야자가  우리나라에서도 꾸역꾸역 자랄지도 모를 일이다.

몇년전 오만의 샬랄라에서도   테양을 먹고 자란다는 대추야자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기가 막히게 달달함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차는 더위를 가르며 쏜살같이 달렸다.

하지만 운전도 하지 않으면서 뻘쭘하게 그냥간다면 그 또한 재미없는 일  

그럼 남편님께서는  운전하시고 나는 또 나의 일을 찾아서 부지런을 떨어야지...

 

몇년전부터 우연히 달리는 차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터널을 찍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취미가  되어버렸고,

장거리 여행에서 습관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터널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며 간다. 

오늘의 길에서는  또 어떤 터널들이  큰 입 벌리고 와글와글 나타날까?

 

 

 

 

 

 

 

 

삼랑진을 지날때는 오래전 기억속으로 숨어버린   버드나무가 줄지어  

 나타나더니 잎새를 흔들며 반겨 주었다.

 달리면서 놓치지 않고  세어 본  버드나무는  모두  22그루였다. 

출발하기 전  

 오늘 달리면서 어디쯤에선가  버드나무를 보게 되리란 예감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작은 예감은 실제로  삼량진에서 일어났고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인 까닭으로

지금부터 산을 관통하여 만든 수 많은  터널을 부지런히 통과할 차례다.

오늘 첫번째로  통과한 무척산터널(산청군 생초면 ) 에  

 이어 생림 1터널과 생림 2터널을 지나고  삼량진터널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도로변으로  밀양의 넓은 들깨밭이 초록으로 나타났다.

가끔씩 바람결에 묻어나는 시골냄새인 두엄냄새와 건초말리는 냄새가   

 닫힌 차창 틈새로 솔솔 날아들기도,    

 

이런 냄새는 어린시절 이맘때  들녘에서 지겹도록 맡았던  냄새다.두엄과

건초말리는 냄새는 시골 특유의 냄새로  

 절대로 피해 갈 수 없었던 고향의 향기로 코는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런가 하면 6,7,8월  여름꽃으로  피어나서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하게

 아름다운 꽃나무가 달리는 동안 시시각각 나타나서 

   한들거리며   반겨주었다. 

자귀나무다.

 

 

♥ 사랑을 부르는' 자귀나무 '

 

 연분홍 명주실 타래 풀어  꽃술 만들어 일부러 가지에 층층히 매달아  부채춤을

 추게한듯  고운 자태의 자귀나무 꽃은 향이   은은하게  좋아 코끝으로  느껴지면

이내  기분이 스르르  좋아졌다. 

여름동안  저녁산책을 다니며 날마다 만났던 나무,

자귀나무 밑으로 지나가면 귀기울이지 않아도 수런수런 잎새들이

 붙어 사랑하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늘 밀양을 지나면서 가끔씩  나타나는 자귀나무 밑에서는 

 긴 혀를 낼름거리며

  자귀나무 잎을  노리는 소는 없었다.

초식동물 소가 보면  숨이 넘어갈듯 좋아해서 붙은 이름 하나가 또 있는데 .'소쌀나무'다.

자귀나무는 인기도 많고  별명도 많아 열개의 별명정도는 가지고 있는듯 싶다.

합환수, 합혼수, 야합수, 유정수, 사랑나무, 여설수, 귀신나무,그리고 사랑에 목마른  과부들이

 좋아한다고 하여 일명 '과부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  성질급한  잎새들은 마주 보고 있던 잎을  

 금새 포개어 부둥켜 안고 하나가 된다.

 

  

 밤이되면 잎새들은 두장이 한잎처럼 포개지는데

이 모습을 들여 다 본 누군가는

 야시꾸레한 밤(夜)의 냄새를 풍긴다고도 했고 ,

  신혼의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지귀나무에 사랑 걸렸네

 

자귀나무는  향수로 만들어도  반응이 무지 좋을 것 같다.

자귀나무 아래로 서면  은은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며,

 말린 잎에서는  또 아침이슬을 머금은듯   들풀향이 나기도 한다.

 

 

 

 

♥자귀나무,소가 정말  좋아한다 경상도에서는 '소쌀나무'라고도 부른다.

↓ 

 

 

소의 양식이라고도 한다.

 

 

 

삼량진터널과 가곡터널을 지나고 고정터널을 지나가니 이번에는 

  경북이 시작되는 청도터널을  통과하니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청도군 신도리의 유명세를 

 새겨놓은 청도휴게소가 나온다.

청도라면 소싸움과 더불어 청도반시가 또 유명한 고장이 아닌가?

잠깐  청도휴게소에 차를 대놓고 화장실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아 참 시리고 맑은 물,  

느낌이 상쾌하고 좋았다. 

 

오래전  

 청도  운문사에 갔다가  밭에서 배추를 캐고 있던 새하얀 얼굴의  

   비구니가 생각났다. 

  그곳에서   기품있게 서 있던  처진소나무도 함께 ... 

 

경상남도 땅이 밀려나고   경상북도의 작은 마을과 도시들이    

  차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터널찍기와 메모를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찍고 메모하는 일은 내게서 즐거운 놀이가 되어준다.

이번 여행에서 적어도 노트 두권 정도는 메모 해 갈 생각이다. 

 

다시

다부터널, 가산터널도 나타났다 사라지고   구미시의 장천터널을 지나가는데 

자귀나무가 또 먼 발치에서 반겨준다.

메모를 챙겨보니  일곱번째 만나는 자귀나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자귀나무의 분포가 전국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귀나무는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이시간에도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

옷이 만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후 7시 23분경 우리는 마늘의 고장 의성의 안평에서  일직터널을 통과했다.

 

 

 찬물같은  맑은  목소리의 네비양은 곧 도착지 주변의

 영주역과 영주시청을 알려주며 길안내를 종료했다.

 어둠은 이미 늑대의 시간도 지난  저녁 8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선비의 고장 '영주의 밤 '

 

 

영주의 밤, 

 선비의 고장이라는 알림판이 가끔씩 나타났고  이미  

  밤을 맞은터라  

   빤히 보이는  불빛을 향해 무조건  걸어갔다.  

   크리스탈 모텔 , 307호,

 더 괘적한  잠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맬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허름한 창고에서

 밤늦도록 쿵쾅대다가 새벽녘에 지쳐 잠든 도깨비처럼 

 뒤죽박죽 웃기는 방에서 그냥  골아 떨어졌다.(방값 4만원)

 

 다음날

이른 아침  눈을 뜨자 찬란한 해가 이미 창가에서  

빼꼼 들여 다 보고 있었다.

' 굿모닝  6.000도 햇님, 안녕'

하고

새잠을 자고  깨어난   내가 가족들을 대표해서 창가로 고개 내민 

'해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다시 길 떠나기 전 내가 한 일은

 우리가 묵었던 크리스탈 모텔의 분위기를 마음껏 담는 일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방 ,

가까운 옛날로  조금  되돌린   1980~90년대  

 아련한  분위기에  맞추어 아날로그 방식에 맟춘   물건들이 널려 있어  

  뜻밖의 신기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조금 설명을 곁들이면   벽걸이형 작은 에어컨과  요란한 소리로 영주시를 통째로 

 흔들며 돌아가던 고함소리의 선풍기와,  '축 발전 ' 이라 쓰인 벽에 걸린 거울과,

 장식장에 달려 있어야 할,

  망가진채 너들거리며  쑤욱 빠져있는  서랍 두개가  주는 기이함  

이것들은  불꺼진 밤이면 도깨비로 변해   춤출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언젠가  이런 조잡한 풍경들도  소중하고  유용하게  쓰일데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주섬주섬  담아 보았다.

 

이 방의 분위기는 또  1992년경  읽었던  장정일의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에서

'바지 입은 여자 '가

배우가 되어 서울로 올라기기 전 머물렀던  지방 소도시의 배경이 되었던

가물하지만  영주쯤으로  기억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 ' 

를 닮은듯한 분위기다. 

이 독특한 소설이 세상에 나오자   

외설이냐 ,  예술이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다.

작가 특유의 놀라운 거짓말로 만들어낸 

 요리는 독창적인 빛깔의 소설이 되어 세상과 만났으며,

순발력 뛰어난 정선우 감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빨간영화(19금) 로  만들어 

 대박냈던 작품이기도 했다. 

무명의 배우 정선경이 야한 영화 한편 찍고  스타로 급부상한  파란을 일으켰던

맛있는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신선하고,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고 ,  선정적이었던  이 책에 적응하느라 대한민국

독자들의 뇌 또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는 물론이고   

외설스럽고,  퇴폐적인 비린내를 실컷 맡아야했던 날,

' 바나나 마약'이란  생소한 이름도  책 속에서  들었던  것 같다.

'비역질' 이란  단어도 당당하게  나와 놀았던 책.

그것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참  영주를 떠나기전  어젯밤에 보았던  기억 하나 더  시시콜콜 메모 해 두자.

 저녁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가  길에서  마주쳤던

 실내포장마차 앞 창문에  적혀있던  '외상사절'

  사람냄새 물씬나는 이한마디 , 

 옛인심을  몹시 그리워하는  영주시로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길모퉁이에는 은하수다방 아닌   '삐삐다방' 도 있었다.

 

 

 

 

 

 

모텔을  나오기 전 또 한가지  내가 한 일은  열린 창문으로 

 내다 보다 발견한 오래 된 기와집과, 

 푸른콩포기와 호박넝쿨이 뻗어나간  텃밭의 풍경을

또  욕심부려  담아 보았다.

이런  소소함을  보물처럼 챙겨 영주에서의 추억으로  간직하며 

 307호실을 나와, 

  열쇠를 모텔 안내실의 조그만 창문앞에 얹어 두었다.

주인이 보이지 않아 

 하룻밤 편안하게 재워 주었는데 ,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2013년08월09일(금)

 아침 08시를 확인하며 길을 나섰다.

 

 

 

 

 

 

 

 

 

★ 영주의 아침 

 

 

 

 

 

 

다시 길을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