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영주무섬기행>무섬마을에서 만나는 여인들의 향기& 규방가사문학

이바구아지매 2013. 8. 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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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언제나  설레임~ 여행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면

아침밥 한끼 정도는  먹지 않아도  배고픈줄 모르는 행복한 시간이 된다.

2시간 30분동안 무섬을 흠뻑 즐긴 후 , 

 시원하고 상쾌해진 기분으로

  다음 여행지를 향해 길떠나려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고향마을 거제도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먼길로  무섬마을에 왔으니 무섬자료관에도 들러 

 선비마을을 소개 해 놓은 다양한 볼거리도  보고 가세요   

무섬이 어떤곳인지 이 늙은이의 백마디 말보다  한번 둘러보는 게

 더 좋지 않겠소?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듯 싶소 " 

국필할아버지의 지당하신 말씀을  어찌 뿌리칠 수 있을까

"네 그럴게요 무섬마을을 제대로 돌아볼게요 .

하마트면 모르고 갈뻔했어요 .좋은곳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대로

 유교문화가  전통으로  뿌리내린 선비의 고장에서 흠뻑 젖어보기로 했다.

그래  무섬의 향기를, 유유자적[悠悠自適] 마셔보자.

 

 

 

 

 

 

★.무섬자료전시관

 

무섬자료관으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달리는 

  내성천 둑길의  물가 ,길가, 공터 양편으로  

'기다림' 이라는 꽃말을 단 노란 달맞이 꽃물결이

수줍게  나타난다.

'달맞이꽃 ,넘  예쁘구나' 

하고 칭찬 한마디 내려줄

여유도 없이 휘리릭 지나쳤다. 

 갈길이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님께서는 무조건 달리신다.

마음 같아선 하룻밤 더 무섬에 자고 가고  싶은데

그래서 밤이 내리면  

 내성천의 외나무다리로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둑에 나와  달맞이꽃 노란물결을 따라 팔자걸음 걸으며

 무섬의 양반님들  흉내도  내 보고,

무섬의 하늘로  뜬 별도 세어보고, 음력 칠월 초사흘 눈썹달로

뜬 달은 또 어떤 매력을 풍길지도 궁금하고,

혹 월력의 차례를  깜빡한 달하나가 보름달로  휘영청 떠올라 밝은 달빛 쏟아내리면 

 나도 따라 달빛 찬란한 내성천 모래톱으로

    깔깔대며  맨발로 달려갈텐데...

늘  쫓기듯  바쁘게 달리는 게 무슨 여행인가 긴 한숨이 터져나온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사나흘  머물렀다 가기도 하는게지 ?

'난 무섬이 좋은데 .정말 좋은데 ...'

하고 혼잣말로 궁시렁대며  '무섬자료관' 앞에 차를 세워놓고 

 까만 기와집  용머리 날렵한  한옥속으로  들어선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 무섬마을 , 선비의 묵향이 은은하게 날아든다.

 

 

 

 

 

 

 

 

 

무섬마을의 규방가사[閨房歌辭]?  오 ,  놀라워라  놀라워라 ...

 

 

규방가사[閨房歌辭]

 

 

조선은 여성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였다.

 여성들은 딸, 혹은

 아내로 규방에 갇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방안에서 수를 놓거나 공기놀이를 즐겼다.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는  마당에서 투후놀이를 즐겼으며,

그러다가 세상 일이 궁금해지면  널뛰기로 뛰어 올라

  담장 밖 세상과 사람들을  보았다.

5월 단오에는 허락된 외출로 치마자락 날리며 그네를 실컷 뛰었다.

집 안의 가장 깊은 곳에  갇혀 살면서 

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시를 지었다.

여성의 사회적 차별과 규제가 유독심했던 조선 중기 

 황진이 , 신사임당 , 허난설헌 등은 문학적 감성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키   18세기 이후 영남 지방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가사

조선 후기에 여성들 사이에 규방 가사가 등장해 성행했다.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먼저 유행해서 충청도나 전라도에도 정착되었던 듯하다.

내방가사(內房歌辭)·규중가사(閨中歌辭)·규중가도(閨中歌道) 등으로도 불린다.

 시집에서 지켜야 할 몸가짐과 예절 등을 딸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계녀가(誡女歌),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지은 경축가,

 놀이를 즐기며 지은 풍류가, 신세타령을 늘어놓은 자탄가(自嘆歌)가 있다.

제목에는 대개 '○○○가라'라고 하여 접미사 '라'가 붙어 있다.

 지은이나 연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가 알려진 작품으로는

 절명사, 명도자탄사, 잡록, 반조화전가 등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 거의 사라졌다.

내용이나 문체를 애써 다듬지 않은 평민 여자들의 민요인 부요와 매우 대조적이다.

문학 Ⅱ(박영민) <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흐름(1) 조선 시대 문학 > <브리태니커>

 

 

 

 

 

 

 

 

 

 

무섬마을 여인들의 '규방가사문학의 힘'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에게 널리 유행했던

  규방가사문학이 이곳 무섬마을에서 고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을줄이야,

 놀랍다.

  신기하다.

가사문학으로 전해 내려 오는  이중선여사의 가사집,

김응룡여사의' 기망가 '등을 소개 해 놓았다.

 규방가사,  

영남지방 양반가의 부녀자들에 의해

찬란하게 꽃을 피운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안동의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봉화 닭실마을등 .

 

 

 

 

 

 

 

★규방가사의 백미'조침문'

 

 

규방가사문학 의 백미로 알려진  '조침문'  

부러진 바늘을 위하여 제문을 지어 애도하는  내용의 조침문은 제문형식으로

조금 과장되어 오히려 웃음나던   작품이다.

하지만  '나의 정회가 남다른  ' 이라고  적고 있는

내용으로 바늘을 추모하는 미망인의 부러진 바늘에 대한 각별한 정은 

 바로 남편의 죽음처럼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파하며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지은이는 유씨 부인(~? ?)

글의 내용과 문체로 보아  사대부 가문의 미망인을 추측되며

문장 구성 능력이 뛰어나고 고사에 능통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비록

삯바느질 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양반가문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전문학 조침문은 '규중칠우쟁론기'' 의유당 관북 유람일기'와 더불어 조선시대 여류수필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뛰어난 문장력과 한글체 제문형식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규방가사의 백미' 규중칠우쟁론기'(아씨방  일곱동무들) <작자 미상> 

 

 

 

 고전수필애 해당하는 규중칠우쟁론기는 

 규중의 부인이 바느질에 사용하는

자(척부인) 바늘(새요각시) 가위(교두각시) 실(청홍바늘각시` 실낭자)골무(감투할미)

인두(인화부인) 다리미(울낭자)등 칠우를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독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통한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활용한 작품이다.

 

또한 규중칠우쟁론기라는  옛수필로

어린이의 눈높이로 그림동화책을  재구성하였다.

'아씨방 일곱동무'라는 제목으로  

 초등국어 2-2 교과서에  수록 되어 있기도 하다.

 

 

 

 빨강 두건 아씨와 자부인, 가위색시,바늘각시,홍실각시,골무할미,인두낭자,

다리미소저 등 내용 또한 현대적으로  태어난 이이야기는 서로 잘났다고 뽐내다가 결국

모두가 함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한다.

이 독특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에  도전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아씨방 일곱동무들(이영경 글 ,그림)

 

 

 

★아씨방 일곱동무들(이영경 글, 그림)

 

 

 

★아씨방  일곱동무들( 이영경 글, 그림)

 

 

 

 조선후기 규방가사문학의  백미로 격찬받고 있는   

'의유당 관북유람일기'는

조선 영조 때 , 의유당 의령 남씨가 함흥 판관으로 부임 해 가는 남편을 따라가

 그 곳의 명승 고적을 살피고 느낀바를 적은 순한글 기행 수필로,

사물을 관찰하는 격조 높은 안목과 탁월한 표현력을 구비하고

있어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특히<동명일기> 에서는  동명의 해돋이와 달맞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의 남편을 졸라서 허락을 받고 길을 떠나 왕래하는 사이에 보고

  겪은 일들을  해돋이의 장관을  그린 것으로,

우리말의 멋스러운  사용으로 표현한  운치를 드높혔으며 정엄하고 화려한 모습과 

색채가 순간마다 치밀하고 예리한

여류문학의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참고문헌,『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이병기 교주본, 백양당, 1947)

 

 

이 밖에도

 류사춘의 부인인 연안 이씨가 아들 이좌와 조카 상조가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함축하하기 위하여 직접 지은 '쌍벽가'가 있으며 경북지방 규중가사문학을

대표한다.

  정조 18년(1794) 같은 해에 급제한 동갑인 종형(從兄)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와 함께 귀향할 때 정조는 친히 제문을 지어 문충공

서애 선생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게 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 무섬마을 김응룡여사의 '기망가'

 

"하늘은 높고

강변에 부는 바람

금풍이 완연하다

개천의 오동잎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산문형식의 수필처럼 보인다.

긴 두루마리 형식의  기망가는  무섬과 내성천의  아름다운 가을을 노래한 것 같다.

이중선여사의 가사집은 책으로 묶어서 나와 있지만

내용은 열려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

역시 '기망가' 라고 조그맣게 적어 놓았다.

 

 

 

★옛날 옛적 은혜 갚은  안동권씨 부인 전설...

 

 

 

★ 권씨 부인의 전설을 품은  집 사진출처,<테마있는 명소 ,힐링투어>

 

무섬마을과 조금 떨어진 봉화 유곡(닭실마을)의 권씨처녀와 혼인한 김락수는 

 아픈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을 다했으나

혼인 1년만에  아내가 죽고  말았다.

그런 어느 날 집 근처에 불이 났는데

 불은 근처의 집들을 모두 태우고 

 김락수네 집으로   옮겨 붙을 찰나 

죽은 권씨부인의 혼령이 나타나서 치마를 휘두르며 불을 꺼 남편의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주변의 집들은 다 전소됐지만  이 집만 온전하게 남게 되었고  훗날  양옥으로 지었다고 한다.

 

 

무섬자료전시관 ' 꽃상여 '

 

마을 사람들이  죽으면 꽃상여를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황천길로 간다고 하는데

무섬 양반가의 옛여인들은 분명 '哀詞 ' 정도는 지어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무섬마을 규방문인  김난희여사와 혼인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

 

 

 

 

 

 

★무섬 자료관  앞에 서 있는 두 개의 시비

 

 

 

★별리(別離)/ 조지훈, 아내에게 주는 시

 

조지훈시인이 부인과 결혼한 후 부인을 처가에 남겨두고 학교로 가면서 썼다는 '별리'
부인에 대한 애뜻함이 느껴진다

이 시는 당초 헤어지는 슬픔을  전하는 '이별' 이었지만  너무 슬픈 이별을 하게될까  두려워한 시인은

거꾸로 '별리'로  제목 달았다고  한다.

 

        

 

 

★젊은 날의 시인 조지훈, 부인 김난희여사

 

승무 / 조지훈(趙芝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냥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서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김난희여사의 작품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이 고향인 그녀는  

6,25 사변 이후로 사라졌다는  규방가사문학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족은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산골 오지 승부역을 향해 길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