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봉화여행> 게으른 여행기, ,조선시대 보부상길이 있었다는' 봉화에서'

이바구아지매 2013. 9. 10. 13:34

 

 

 

29344

 

 

 

     빨강머리 앤의  조금  철지난  8월이야기 

   

 

 

 

오키

 

 영주의 무섬마을에서  봉화장터까지 걷는데 한달이 걸렸다면 누가  믿을까?

갓망건 고쳐 쓰고 ,짚신 삼아 신고,  양반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

봉화장터에 도착하니 어느덧 여름 가고 가을이다.

 

빛이 바랠수록 더  고와지는 추억 , 그러니까  지금 나는

 지난 여름 봉화에서 만난  조금 오래된  여행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먼지 풀풀나는 신작로를 씩씩하게  가서 

어느 객주집 좁은  고샅길 옆 싸리울타리에 기대어 ...

 

 

2013년08월10일(토)

 

아침을 굶었더니 배가 너무  고파 선비양반,  규방각시 체통 다 망가지게 생겼다. 

그렇더라도 5초 더 인내하며  명성에 걸맞는  맛집  한번 찾아보련다.

봉화의  맑은 산 청량산 자락의 송이버섯과  내성천의 은어가 유명하다는 소문 이미 들었으니 

봉화의 특산물로 지지고 볶은  점심을 실컷  먹고 싶은데 

이를테면 송이버섯 두루치기, 혹은 솔잎불고기와 동동주 한잔을 

 곁들여서 말이다.

 

하지만  열한살 가나의 입맛은 일편단심 돈가스다.

아이의 입맛을 무시하고 봉화의 맛집을 찾아 나섰다가 

종일 징징댈  뒷감당이 무서워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봉화시장 길건너 도로에서 겨우찾은 김밥천국으로 들어갔다.

누가 지어냈는지 신통방통한 

 '물은  셀프입니다'

한마디에  타는 목마름이 배고파서 허기진  이몽룡처럼

  정수기로 달려가서 시원한 물한잔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소백산이 내어준 물맛은 차고 달달했다. 

돈가스,비빔밥,냉면 등을 시켜 식사를 하며 봉화의 여러곳을  

김밥집 주인아주머니한테 물으니 제법 진지하게 봉화를  알려 주셨다.

"내성천에서는요  은어잡이 축제때 중국에서 10만명이나 몰려왔어요"

"와우 놀라워요   봉화의 은어잡이축제가 중국까지 알려졌나요?

어떻게 알렸길래  중국에서 10만명이나 몰려 올 수가 있었지요? "

" 중국아니고 '전국' 전국에서  몰려 온  사람들이 10만명쯤"

" 중국 아니고  전국, "

"음 집에 돌아가면 당장 이비인후과부터 가봐야겠어요 요놈 귀 떼에찌 하하하"

"아이가 예쁘게 생겼네요  몇살이죠  우리아인 초3인데요"

김밥집 딸이  물었다.

"우리애는  4학년입니다."

"아이가 하나인가요"

 

"아니오 5년동안 아이를 꾸준히 출산했어요    ...."

"그럼 해마다요 ?

" 5년 주기로   띄엄띄엄  다섯번에 걸쳐서 ...

"진통이 시작되면 노래를 부르면서  출산을  해요

그럼 다시 아이를 낳고 싶어지더라구요 "

"네에 ??? 그럼 대학생도 있나요?"

"네 서울 찍고  캐나다 , 거제까지 세계적으로 퍼져 살고 있어요 하하하

오랫동안  텔레토비형제였다가  막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독수리5형제가 되었어요"

어쩌다 보니  가족사까지  까발리고  말았다.

친정엄마와 딸이 바쁘게 김밥 한상자분을 싸서 포장하여

손님한테 건네며 57,000원입니다.

라고 말하길래

모두  몇줄을 쌌느냐고  물었더니  29줄이라 했다

오랜만에 가격대비 푸짐한 양을 보니 봉화의 물가가 조금 착한가격으로  느껴졌다.

"참 봉화표 송이버섯김밥도 만들어 팔아 보세요 그럼 더 잘팔리지 않을까요?"

"그럼 너무 비싸서 김밥으로 말아 팔긴 수지타산이 맞지 않네요"

라시며 엄마 같은 아주머니, 나때문에 너무 웃었더니   배가 고파서 그냥

 영업끝내고 실컷 먹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하셨다.

"우리가족   12년 뒤 이맘때  봉화로  다시 올게요.

그 때는 은어김밥, 송이버섯김밥, 산채나물김밥 등도 파세요 "

"네네네 예쁜 꼬마손님을 위해서 돈가스김밥도 준비해 놓을테니 꼭 오세요"

라시며 더운 여름날 한바탕 웃으셨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김밥집을 나섰다.

조금 걸어가다 무슨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등뒤에서

"예쁜 거제아줌마 , 즐거운 여행하세요."

라며

식당에서 고개를 내밀고  하얀 이를 드러낸채 손을 흔들며 배웅을 계속하는  

김밥집 딸의 인정스런  모습이 있었다.

 

 

 

 

 

 

 

 

 

 

 

★다섯번째 아이' gana'

 

 

  세계적인 이름의  gana는  식성조차 국제적이다.

  먼길 봉화까지 와서  돈가스를 고집하다니   ~  쯧쯧 ~ 

테이블 위로  수북히 깔려있는  

 한자에서는 또  허준의 '동의보감 냄새가 났다 .

 

 

 

 

★문전성시 들락날락 봉화장 , 오늘은 한산...

 

 

 

이제 배가 불렀으니 흐뭇한  기분으로   봉화장터 옆에  주차시켜 놓은 차를 타려 갔다가

  또 한번 마음 바뀌어  조금  한산한 8월의  봉화장터 이곳저곳을 둘러 보기로 했다.

때로는 느릿느릿, 이곳저곳 살펴보는 여행 또한 고소한 별미다.

 기웃기웃 ,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다르게 읽기,  

 

 오키   봉화장터에서 이러쿵저러쿵 ...   오키

 

 

  

 봉화장날이라면 분명 사람들로 시끌벅적할텐데 오늘 봉화장날은 분명 아닌 것 같다.

 심심할 정도로  조용한 시장풍경이다.

봉화라면,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장사를 하며 첩첩산중 오지로 등짐지고 장싯길에 나섰던  보부상길이 있었던 곳 아닌가?

'객주' 의 작가 김주영의 노력으로 우리 모두에게 친근하게 알려지게 되었던 ' 보부상이야기'도  좋았다.

조선시대 경제발전의 주역, 보부상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들이 지고 나른  삶을 나른  흔적을  살짝 들여 다 보자.

보부상들은  바다와 내륙 경제의 연결로  경북 울진에서  소금, 미역,고등어 등을 등짐으로 지고  

코가 땅에 닿을만큼  가파르다는 '십이령 고갯길'을

깔딱깔딱 넘어 산골길로  분천에서 춘양까지 이어간  보부상길은 우리나라 대표 오지로 꼽힌다.

그만큼 험한 산길로 유명세를 날렸다는 길로

보부상들은 등짐을 지고 고개를 넘었다.  

  그들은 짐이 아닌 삶을 지고 날랐던 것이다.

  봉화,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은 이제 흔적처럼 녹아들어 

역사의 한페이지가 되었다.

 

보부상들은 경북 산간지역 강원도 영월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봉화에 위치한 보부상길은 청송, 영양, 봉화, 영월의 마을길과 들길, 산길을 이은 240km 은 현재 

트레킹 길로 개발한  '외씨버선길' 의 제 8구간에 해당하며 총 18.5km의 보부상길에서는

 과거 울진과 봉화를 오가던 보부상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구간이 보부상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는

 울진군 북면 두천에서 시작해 소천면에 이르는 보부상길의 이름이 바로 '십이령길' 이었던 까닭으로

 열두고개를 넘는 길이라는 뜻이란다.

  코가 고갯길에 닿을만큼 가파르다는  십이령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표적인 길로  봉화 보부상들은

 울진 앞바다에서 건어물과 소금 등을 한짐 가득 짊어지고 첩첩산중

고개를 넘어 봉화 소천면과 춘양면을 오갔단다

보부상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하루 100명 이상이 이 고갯길을 이용했다고 하며,

 이렇게

봉화로 넘어온 보부상들은 내성장과 소천장, 춘양장에서 물건을 팔고 봉화 지역의

대마, 담배 등 특산물 등을 사서 다시 고개를 넘어갔다고 한다. 

 봉화의 남쪽에 위치한 안동으로 가는 보부상들은 고등어를 주로 취급했으며

서울로 향하는 이들은 미역과 생선 등 어물을 한짐 가득 등에 지고 길을  떠나곤 했단다.

 

Hi    보부상의 길을 따라  걸으며 새시대를 열어 가는 

 김주영의  '객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보장날이면 학교를 (초등학교) 를 땡땡이 치고 

봇짐장수  뒤를 따라다녔던 소년 김주영은

74살에도 여전히 보부상의 길을 따라 걸으며 객주의 새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길바닥을 떠돌던 보부상의 삶과 애환을 담아

천봉삼이라는 보부상으로  조선후기  등짐 혹은 봇짐을 지고 시장을 돌며 판매한 행상으로 당시

 보부상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연결 해 주는 일종의 유통상인이었다.

이 소설은 한국 문단으로는 벼락같은 소설이었다.

객주 이전의 한국  역사소설은 대개 권력자,  전쟁영웅, 왕실의 이야기가

중심인 영웅담이었는데 객주는 그런 영웅 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소설이다.(서울신문)

 

 

 

 

 

   

 

 

봉화시장에서

 

 

 

 

 

보부상 []

.

 

 보부상은 곧 장돌뱅이다.

조선시대에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매개했던 전문상인으로

봇짐장수인 보상과 등짐장수인 부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두단체는 1883년 고종 20년에 설치된 혜상공국 아래 합쳐지면서 보부상으로 통틀어 일컫게 되었다.

보상은 주로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정교한 세공품이나 값비싼

 사치품을 취급한 반면, 부상은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조잡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취급했다.

 

장돌뱅이’의 사전적 의미는 각 장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수라고 쓰여 있다.

조선시대이후 근대이행기까지 상거래의 주역은 보부상이었다.
이들 보부상이 전통사회의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경제적 교환을 이어주었던 장돌뱅이다.

.이들 보상은 댕기, 비녀, 얼레빗, 연지함, 분통, 염낭, 풍차 등 작고 귀여운 물건을 보자기

싸서 멜빵을 이용하여 다녔고 보부상은 주로 지게를 이용해서 주로 생선, 소금, 토기, 목기, 수철기등

 식생활 관련 소비품이나 도구들을 취급하였다.<지식 Q&A>

 

 

 

 

 

2013년 08월 10일 ,

봉화장에서는  참빗,골무, 댕기 얼레빗, 분통,고무줄 따윈  팔지 않았다.

 대신 밭에서 막 따온  찰진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