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통영의 근대사를 써내려간 '1945 이문당 서점 70년'

이바구아지매 2014. 1. 9. 14:38



엉엉   통영의 아쉬움, 이문당 서점 이야기




70년 역사의 통영 이문당 서점 폐업,

인터넷 파고 이기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이 놀라운 소식을 KBS  뉴스로 접한 다음 날 아침,

 부리나케  이웃도시 통영을 향해 거제대교를 넘어갔다.

경남 통영시 중앙동  101- 4번지에 위치한 

이문당 서점을 찾은 날, 통영의 하늘은 처연하게  겨울비를  뿌렸다.


 시인 유치환이   동료교사이자 시인  이영도 여사에게 보냈다는 시

   '행복' 에 등장하는  통영중앙우체국  

   맞은편에 위치한  '이문당 서점'  

누구라도 이 길을  지나가다 무심코 기억할 서점  유리벽에 새겨진' 이문당  1945'

그러니까 이문당 서점은  해방둥이 1945년 9월생이다.


서점 유리벽으로  빗물이 타고 흘러 내리는 축축한 풍경과 

미닫이 출입문 양쪽으로  정사각형 천으로 써내려간  이별의  안내문이 

비를 맞으며  쓸쓸히 매달려 있었다.

 

2014년 1월 8일 

개인적으로 나와 짧지 않은  인연이 있었던  이문당 서점으로 비맞은 우산을 접어  

 빙그르르 돌려 물기를 턴 다음 한손에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젯밤 뉴스를 보고  달려왔어요."

 

" 네 그러셨군요."

 

"이문당 서점이 폐업을 하다니요  이 무슨 날벼락인가요? ..."

 

" 네 폐업을  결정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어요.

 

김병기 대표 (65)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서점안 풍경은 이미 정리에 들어가   뻥뻥 뚫린 서가들과 , 반품을 기다리는 책뭉치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혹은 묶여 있었다. 

 

"사장님, 어잿밤 뉴스 보고 고현에서  궁금해서 달려왔어요.

제가 고현에서 10년 동안  학원을  했잖아요  이문당 서점에서 대부분의 책을 사서 썼고요.

그러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학원들이 대부분 정리되는 시기에 저 또한 폐업을 했어요.

정말 이문당 만큼은 대를 이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런  일도 다 있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늘아래 영원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이문당 서점의 이 슬픈 소식은 언론과 방송메체를 통해  전국 으로 소문이 퍼졌는지 

이날은  창원  CJ헬로비전 경남방송 에서 먼길 와서   이문당 서점을 집중 취재하고 있었다

.내게도 인터뷰를 부탁해서   통영의  오래된 기억을  잠깐 들추어보았다.

배를 타고  부산을 가는 번거로윰 대신  버스를 타고 거제대교를 건너  이문당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씨락국과 맨밥을 김에 싼  김밥과 오징어무침, 어묵무침과 깍두기가 따로 반찬으로 나오는 충무김밥을 

사 먹고  지방 소도시인 통영의 중앙동을 쏘다녔던  기억도 

수 십년 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이문당 서점의 김병기 대표는   부인과  동갑내기로  생일조차 같은 날이라며  

고생만 시킨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쓸쓸한   헛웃음을   날렸다.

 

이어서 김대표는  

"  통영이  어떤 도시입니까?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윤이상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문화, 예술의  고장 아닙니까?

그런 고장에서  문화적인  부분에서 작은 일조를 하면서  70년이 넘은 세월동안  지역민들에게 

 지식을 공급하는 창고역할을  해 왔다는 것, 자부심으로 느꼈습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천직을  내 대에 와서  접어야 한다는  심정은 정말 피를  토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한 달 이상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새벽까지 의논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년째  이어지는  적자폭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12월27일  새벽4시에 우리부부는 결정했습니다.

"철수다"

지난 1945년 9월부터 통영의 포구에 들어섰던 이문당이라는 서점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내가 문을 닫으면  통영아이들은 어디에서 책을 구할까? 그리고 시민들은  어디에서 책을 볼까.

통영이 인문도시라고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면  그에 따른 문화도 사라져 침체될 것이며 , 

시민들의 의식함양도 뒤쳐지지 않을까요?

서점문을 닫게 된 데는  계속된 적자가 주된 이우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인테넷의 발달로 온라인 서점이 주를 이루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학생들의 참고서나 공급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문서점의 명성에 걸맞는 서적을 구비하기 위해  2층에  전문서적을 채우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렸습니다.

 

손님이 아무리 왕이라고 하지만 서적을 찾아달라고 해놓고선 폰으로

사진만 찍고는 인터넷으로 사면 할인해 준다며 

가버린 경우, 책을 사고 있는 동료에게 인터넷에서 사면 할인해 주는데 왜 여기서

사느냐고 말할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서점에 와서  책을 읽기보다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리면 거의가 정보만 알고

 구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최근 몇년 간 연간 적자폭이 엄청났습니다.

제가 벌어놓은 것이 없었으면 이 업은  벌써 접었을 것입니다.

최근 통영 충무도서가 문을 닫고 옷가게로 변신했습니다.

우리나라 서점주인들은 모두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언제 그만 들까? 빚은 어쩌지? 뭘해서 빚을 갚을까?

적자폭이 큰 것은 총판을 하면서 빚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이제는 

집사람과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나이가 됐습니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딸애까지 불러  일을 도우게 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사람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일년 365일 가운데 설, 추석 이틀만 쉬고  일요일도 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이 쉬는  주일에 서점에 문을 열지 않으면 그들이 언제 책을 구입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조.

수년 전에 업을 접을 생각을 몇 번이나 했으나 주변의 만류와 출판사와의 관계 등으로 

이아져 왔습니다.

책을 정리하며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김병기 대표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인터뷰 를 하는 동안

내내 먹먹했다.

 

 

이문당의 역사는  김씨의 부친  고 김차석씨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 잡화점에서 

일해오던 중  해방을 맞게 되었다.

가게를 경영하던 일본점주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자  가게를 이어받은  김차석씨는  그해 9월 10여평의 점포에 

   책을 판매하면서  지금의 이문당 서점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6.25 한국전쟁 기간에는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온 출판인과 문인들이 

이문당 서점을  찾아주어  그 때의 교류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며

통영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문당을 즐겨 찾은 곳이기에 남다른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이란 표식이 선명한  이 서점은  '지식이 허기질 때 '예술인들이 즐겨 찿던  곳으로,

  김대표가 28세  되던 해  선친으로부터 물러받아  38년간  노력하였다.

 자식에게 물러주어  가업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지만  '

내대에  접어야 하니  선친께도 면목이 없게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문당 서점  70년사'를 

책으로  출판해도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 이문당 서점이 들려주는   통영의 근대사'를 듣고 싶어 할 겁니다.

또   분명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유가  될거고요.

2013년 노벨문학상을 탄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 '여사도 서점을 경영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썼잖아요. "


"허허  글재주가  없어서 ..."

"아니에요 '이문당 서점의 70년사 '  

 집필을 권합니다 꼭 들려주세요."



 서문고개 위  가난한 동네  뚝지먼당 작은 집에  말이 없는  소녀가 엄마와 살고 있었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이 소녀는

이문당 서점의  구석배기로  찾아들어  날마다 공짜로 책을 읽었다.

서점이 끝날 시간에도 책에 빠져 있는 소녀를  차마 쫓아낼 수가 없어  주인은  

소녀가 돌아갈 때 까지  조금 더 기다려 주기도 했다'

 

이 유명한 일화는 

 훗날  통영을 배경으로 썼던 소설  ' 김약국의  딸들' 의

  소설가 박경리로 자라게 해준  창작의 출발이 되어주었던   

 이문당 서점의  소소한 기억이다.


책값이 없는 이들도 마음껏  책을 펼쳐 들고  읽을 수 있던 곳 

그들에게 이문당은 지식의 샘터 같은 곳이었다.

이문당 서점은  통영뿐 아니라 이웃도시 거제시와  고성군을 아우르며 

 오랫동안 서부경남의  지식 보급창고로써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프랑스에서는   지역의 서점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정부가 나서  인터넷 서점을 폐쇄해 버렸다고 한다.

인터넷 통신의 발달로 오는 부작용에  휘말려

꼭 필요한 서점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집 가까운 서점에 들러 책을 펴서   만져 보고  읽어 보며 

마음이 가는 책을 직접 고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기회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철거대상이었던 달동네 동피랑을 아름다운 관광지로 살려냈듯 

통영의 근대사를 이끈 지식의 공간 '이문당 서점 '또한  사라지지 않는,  

제2의 동피랑으로 

거듭나기를 , ..

 

통영을 아끼는  모두가  지혜를 모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해 보았다.

 


 

 

 

 

통영시 중앙동  '이문당 서점'

 

 

 

70년역사와 전통의 이문당 서점을 폐업하며...

 

 

 

 

 

 

김병기 대표의 아쉬움

 

 

 

 인터넷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한채   정리에 들어간  책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아날로그  풍경의 서점을 다시  그리워 할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풍경이 될까? 

 

 

 

CJ 헬로비전  경남방송 김한식 기자의 인터뷰  

 

 

 

 

 

 

 

70년 역사의 '이문당 서점' 폐업 소식에  완전 놀란  언론과 방송매체들이 앞다투어

이 소식을 전했다.

 

 

 


 


 

 

 

이문당 서점 구석배기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었던  소녀

박경리를 상상하며 나도   책 한 권  샀다.

 

 

 

 

KBS1 방송에 이어  이번에는  경남방송이 발빠르게 ...

 

 

 

 

 

이문당 서점 김병기대표의 동갑내기 부인도  슬픔이 북받쳐 눈알이 빨개졌다.

 

 

 

 

 

 

이번에는 길 건너 중앙우체국옆에서

 

 

 

 

 


주룩주룩 겨울비가 내리던  날

서점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는 집으로 가는 우산쓴  시민들과 

이문당 서점의 단골 고객이었던   시인 청마가   그리움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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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08일

통영의 이문당 서점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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