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영주무섬마을기행> 내 좋은 사람들과 무섬에서 살고 지리,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이바구아지매 2013. 8. 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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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길, 무섬을 걷다.

 

 2013년08월09일(금)

 

아침 08시경 영주역부근에서 오늘의 여행을 시작한다.  

 맑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10km 정도 달렸을까?

 벼꽃 진자리로  벼이삭이 자리하여 알곡으로 여물어가는 수런거림이 들린다. 

풍요로운  초록들녘이 펼쳐지는 시골길 양옆으로  

 아카시나무가 초록닢 흔들며 나타났다  물러났다가를 반복하더니 이내

 무섬교(종교아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아침햇살을 받아

이른 시각부터 금빛 물결로 반짝이며 돌돌돌

 흐르고 있었다.

곧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을  여행하게된 데는  순전히 엉뚱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4년전,

  혹시 이런 이름의  마을도 있을까? 하고  ' 물섬'을 검색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우리가족의 이번 여행은 그렇게 출발하게 되었다.

 

'무섬' 처음에는  물섬 으로  부르다가    'ㄹ' 받침이  불편하다고 생각한  경상도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부르기 위해  무거운  'ㄹ'  생략하고   '무섬' 으로  부르기 시작했을끼?

 

  

금모래 위를 흐르는 물결이 영롱한 무늬를 만들어 주는 곳,

그 위를 작열하는 여름햇살이 다시 금빛 물결로 아득히 열리는 곳, 

 마을을 보자

몇년 전  배룡나무가 여름꽃을 활짝 피우던 날,

안동의 '하회마을'을 돌아 본 적이 있었는데

두 마을이 오롯이 하나되는  닮은꼴을 하고 있어

참 잘왔다는  생각이 든다.

 

 

 

  

육지속의 섬마을 '무섬마을'

 

 

이 마을의 선비들이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느릿느릿 돌아봐야겠다.

 

무섬마을,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 폭 안긴 자태가 영락없는  물속의 섬이다.

양반도 평민도  함께 공부했다는 조용한 선비의 마을,

무섬마을에서 양반의 고장을 들여 다 본다.

영주와 이웃한 봉화 닭실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은 전국구 양반마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즈넉한  '양반마을'  보다는 '선비마을'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 , 삼면이 물줄기에 안긴 

 육지속 섬마을

그런 무섬마을을 품은 산과 물줄기와 그 안에 들어선 고택들과 

 이 마을을 품은 개방, 개혁정신에  놀란다

.

무섬마을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속하며  마을앞으로 수도교가  놓여 있어

 내성천을 불편없이 건너가게 해  준다.

마을 뒷편으로 자리한 무섬교 역시  육지속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어 준다.

이들 다리가 놓이기 전 마을과 바깥을 잇던 것은 외나무다리였다.

 마을 주민들은

'외나무다리로 꽃가마 타고 시집왔다 죽으면  그 다리로 상여가 나갔다' 고 했다.

무섬마을로 들고 나는 시작과 끝을 보아온 외나무다리는

여전히 무섬마을의 안과 밖을  잇는다.

무섬마을을 감싸안은 물줄기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다

 아예 물 위에 떠 있는 섬은 다리지만 보기에는 '물속의 섬' 같다.

삼면은 내성천 줄기에 안겨 있고 뒤로는 태백산으로 이어진다.

물과 이어진  마을  뒷산은 태백산 줄기, 강 건너에는 소백산 줄기가 스며든다.

태백산에서 이어지는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흐르는 서천이 이곳에서 몸을 섞어

 물도리동' 물이 태백산 줄기 소백산 줄기  물이 시원하게 합쳐져' 물도리동'이라 불렸다.

앞산에 올라서 보면 물줄기에 물줄기가 더해져 산과 물이 태극모양으로

돌아나가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자식이 잘되고 의식이 풍족하다고 해석된다.

또 무섬마을을 두고 물위에 활짝핀 연꽃 모양의 땅'연화부수형으로

이런 지형에서는 학자들이 많이 배출된다고'한다.

 

물 위에 핀 연꽃,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삶을 엿볼 수 있다.

무섬마을에는 40여 채의 고택들이 자리한다

 

40여 채의 고택 중 30여 채가 조선 후기의 사대부 가옥이다.

반남 박씨 입향시조가 지은 만죽제 등은 김씨 입향시조가 지은 해우당 등을

포함해 9채가 지방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김화진 선생이 세운 이화도숙도 빼 놓을 수 없다.

이화도숙은 1933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숙될 때까지 주민들에게 한글과

농업기술을 교육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

고증을 거쳐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유교의 고장에서 남녀노소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교육을 시켰어요 

선조들은 벼슬을  멀리했고 학문을 좋아했어요.

분에  이곳은 좌우익이 공존할 만큼 자유로운 공간이었죠'

 반상의 법도가 지엄했을 때 양반과 평민이 함께 공부를 했던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본거지 이화도숙이 있었고, 한민족이

사상이 다르다는 이우로  총을 겨눌 때 죄우익이 공존했던 공간, 무섬마을은 채우는 공기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내성천을 건너 무섬마을에 들어오면 오래된 시골마을에  들어선 것 같다.

아직 관광지화 되지 않아 찾는이가 넘치지 않는다.

 

자료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마침 우리가족이  찾아 갔던 날은  한창 더워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초가집 지붕에   이엉 잇기를 하고 있었다. 

볏 짚을  엮어 지붕을 이은 초가집은 달밤에 박넝쿨 이고  앉아

 하얀 달을 그리워하는 풍경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애틋한  모습을 하고 있어 보기 좋았던 초가집,

하지만  해마다 걷어 내고 다시 이엉 잇기를 반복해야 하는

  할일이 많아 조금  번거롭고 불편해 보인다.

 

 

오랜만에 ,

정말 오랜만에  초가를 이엉으로 잇는 풍경을   

무섬마을에서  구경한다.

하지만 살짝 의문이 생긴다.

볏짚은 가을 추수 뒤  곧장 사용해도 겨우 1년이고  볏짚의  노르스럼한 빛깔도

비를 맞기 시작하면  점점 회색으로 변해

 1년 정도면  거의 썪어버리는데

아무리 비를 맞지 않은 짚이라 하더라도

얼마후면 가을이고 추수를 하면 햇짚이 나올텐데 ...

 

 

 

 

 

더운 여름날 ,볏짚으로 이엉 잇는  힘든 일을 하는 옆에서

 소란을 피우며 사진을 찍는 일은  조금 미안한 일이다.

누구는 뙤약볕에서 죽으라고 일만 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끌벅적 마음대로  행동하면

  ' 가다가 넘어져서 코나  깨져라 '

하고 저주 받기 딱이다.

이시간 가나는 벌써 덥다고 잔뜩 골이 나서 징징대더니

.볼따구니에 화가 차올라  볼록볼록해진다.

 

 

더위에 지친   빨랫줄도  축 늘어졌다.

잡초우거진 마당을  떠나간 주인이 곧 돌아 오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미안해서 물어보지도 못한다.

힘겹게 이엉 잇는  

두 아저씨의 새참은 누가 만들어  올까?

 

 

초가집 영편으로 쌓아 놓은  이엉

오늘은 무섬마을 초가집 이엉 잇는 날이다

 어린시절 고향 마을에서도  추수를 끝낸 다음 새짚으로 이엉을 엮어 이었다.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 이웃들이따뜻한 양지쪽 마당가에  모여 앉아 이영을 엮고 ,

  품앗이로  집집이 돌아가며

 이엉을 잇는 날이 몇날 며칠씩 이어지곤 했었다.

 

 

 

 

'

.

 

 울밑으로  봉숭아 꽃  곱게 피었다. 

   가마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이웃마을로  시집간 언니가 있어

 무섬이 그리워  친정집나들이를 오늘  나설지도 모른다.

 

이날 고택의 담장밑을 지나가면서 혹 뱀을 보지 않을까  겁내면서 갔는데 

 굼실거리며 지나가는 뱀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봉숭아 꽃 무서워서 벌써 몇마리는  36계 줄행랑을 쳐서 중국땅으로   달아났나 보다.

봉숭아 꽃은 뱀을 쫓는 꽃이라지.

 

 

 

젊은이가 떠나버린  무섬마을은  무지 심심해 보인다.

드문드문 서 있는 옥수수는 누가 딸까?빨리 따지 않으면 삶아도 단단해져 못먹는데 ㅋ 

 풀반  고구마반인 밭고랑을 두고 서로 자신의 영역을 많이 차지려고 티격태격 다투는듯 보인다

시골에서 자란 태생은 못속여  아는척 하며 밭고랑의 식물들에게도 말걸어 보고 싶어진다. 

 

 

 

 

 

티끌하나 없는 선비가의 고택을 지나 가는데  담장 너머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대문없는  이곳에서 엄나무가 지나가는 길손을 불러 세웠는데  가만히 들여 다 보니 

 고택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으면서

빨래를 널어 말리고 있었다.

이댁 안방마님은 성긴 모시옷 단정하게 차려 입고

동백기름 바르고 한올 흐트러짐 없는 머리에 비녀 꽃고  앉아 

옛이야기 옥단춘전을 읽고 계실까? 

 

 

 

오래전 무섬마을에서는 양반과 평민,상민이 

  함께 공부를 했다는  선비마을로 알려져 있다.

 

 

 

어느 고택의 낮은 담벼락에 기대서서 잠깐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盧  川  命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면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만죽제 고택

 

  

 

이 고택은 무섬입향조인 박수선비가 처음 터를 개척하고 건립한 가옥으로 무섬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당호는 만죽제이고 보수시 부와(숫기와)와 여와(암기와)에 강희5년 병오 8월 19일

평인 김종일 조작이라고 새겨져 있어 년도를 환산해 보면 강희는 중국 년호이고 강희5년은 1666년이다.

처음에는 섬계초당(剡溪草堂 : 박수의 6대손인 제익의 호가 섬계임) 현판을 걸었으나

나중에 박수의 8대손인 승훈이 집을 중수하고 그의 호인 만죽제 현판을 개첨하면서 섬계초당 현판을 내렸다.

 2008년에 없어졌던 섬계초당을 복원하고 현판을 개첨하였다.

오늘에 이르기 까지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1991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93호인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

배치 구성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자형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 자료?

 

 

 

 

★고종16년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 선생이  건립한 고택

 

 

 

 

 흥선대원군이 권좌에 나가기전  전국을 유람하며  떠돌던 시절,  

 이곳 무섬마을에 들러  한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해우당의 주인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하루는  주인집의 양식이 바닥을 드러낸 것을  눈치채고  떠나갔다

 그 때의  고마움을 기억했다가  훗날

궁중에서  몇배의 양식을 이곳으로  보내왔다고 한다.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대추나무 가지 치렁치렁 늘어진 고택에서  하룻밤 묵으며 

밤에는  별,달, 반딧불이 나와 노는  마당에서

멍석 깔고 누워

내 좋은 사람과 함께  여우 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밤을 기대 해 본다.

 

 

 

 

고택의 축담에 앉아 보다.

 

 

 

 

 

  이 곳의 가옥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ㅁ' 자 형태이다

  기와집으로 들어서니  마당도 네모요 , 하늘도 네모다

 

 

 

네모로 지은 집에서  네모 액자속 무섬마을  네모할머를 한참동안   쳐다 보다 .

 

 

 

 

 

무섬마을 이란?

낙동강의 상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하여 3면을 감싸고 돌아 육지의 섬이라 하여

수도리 또는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돌출한 반도형상을 지닌 마을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인 해우당고택을 비롯한 9개의 문화재가 있는 전통마을이디

 

 

 

 

 

 

 

 

무섬

 

 

 

 

 

 

노오란 달맞이꽃이   소담스레 피어나서 아름다운 내성천변

 

 

내성천과 금모래 강변,

발맛사지나 찜질효과도  좋을 것 같다.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 무섬 외나무다리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는 길이는 150m로 뭍과 섬을 잇고 다리의 높이는

 하천바닥에서 60cm, 폭은 30cm로 옛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다고 한다.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

우리가 찾았던 날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외나무다리를 마음껏 느끼며  건널 수 있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

 

'양보'를 배우는 외나무다리

.

이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속상하고  민망했다.

생전처음  외나무다리를 건너보는 어린  아이가 서투른 걸음으로 몇번이고 아가씨들에게 양보한

일이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양보만 하던 아이는 결국 울어버렸고

고맙다고 해야 할  아가씨들은 오히려  왜 우느냐며 눈치없이 굴었다.

이 꼴을 처음부터 지켜보던선비같은  아저씨 한분이 계셨는데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자    

 큰 소리로 웃으며 '멋진소녀  홧팅' 하고  외쳐 주었다. 

외나무다리에서는 최소한  상대방을 배려하며

"먼저 지나가세요  "

한마디를 건네는 것 또한  예의다

그리고 왔던 길로 조금   되돌아가거나 금모래가 발밑을 간질거리는

 내성천 물밑으로 내려 서 보는 것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무섬마을 사람들은 350년을 이어오면서 늘  양보하며 살았다지 않는가.

 

 

★무섬의 외나무다리는 ' 마법의 다리 '

 

무섬의 외나무다리는 또  멀리서 보면 너무 낮게 떠  있어 마치 가두리양식장처럼  보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찾아야  겨우 보인다.

  마음 고약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작고  신기한  마법의 다리이다.  ㅋ

 

 

옛날로 징검징검 건너 가 보는 외나무다리

 

 

이왕지사 왔으니 외나무다리를  징검징검 건너보고

 내성천에 내려서서  깊숙한 모래톱을 푹푹  들어 가 본다.

금모래가 발밑에서 밟히는 느낌도 깔깔하니 참  좋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1급수의  맑은 물에서는

동요 '시냇물'의 노랫말처럼

'시냇물은 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별별고기가  헤엄쳐 다녔겠지만   지금은

 2급수라 그런지  물속을 빤히

 들여 다 보며 오랫동안 서있어도  발등을 간저럽히며 

 헤엄쳐가는  은어, 천어,붕어  메기,문저리,피라미는 없다.

   

그 많았다는 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인근에  건설중인  영주댐 탓일까??

2014년 말경에 완공될 예정이라는  영주댐이 완공되면 아름다운

내성천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댐건설로 인해 전에 없었던 물안개에 시달렸고

사철 맑은 물로 아름답던 강변은  바닥을 드러냈고

흉한 모습의  습지에서 자라는  풀들만 무성했고 댐을 만들기전

 1급수의 하천으로 유명세를

날렸던 그곳에는  엉망징망이  되어  악취만 날리다  

 말라 비틀어진   

  죽음의 강이 되고 말았던 고향의 되돌릴 수 없는 풍경이 이곳  내성천에서 다시

 재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아름다운 금모래의 강  내성천을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와서 죽으면

상여타고 다시 이다리를 밟고 뭍으로 나갔으며,

농사꾼, 장삿꾼  모두 외나무다리를 건너다닌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몇백년동안 끊임없이 이어온  , 이어줌의  외나무다리 그 애환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여름햇살이 내성천으로 내려가  금빛물결로 찰랑인다.

 

 

 

 

연화부수형의  마을 지형은  학자를 많이 배출한 고장, 선비의 고을에서  여름을 즐긴다.

 어린시절 고향 냇가에서 고무신 벗어 들고 피라미 잡던 

  날처럼  내성천에서 천렵이라도 하듯  풍덩거렸다.

누치, 꾸구리,종개,돌고기,납줄갱이,모래무치,잉어,가물치, 붕어는

벌써 도망을 갔는지  발뒷꿈치를 스치는 고기 한마리 없다.

1급수 맑은 물을  자랑하던 내성천의 가까운 옛날에도  

 산천어,열목어도 헤엄쳐 다니지 않았을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어린 소년이 건너온다.

건너가지 못하게  가운데로 가서 앉아서 심술 한번 부려볼까?

 

 

 

 

 

 

 

 

 

소년, 이번에는  왔던 길로 돌아서 다시 건너 간다

.

 

 

 

 

먼길  350km 를 달려온 가나 

무섬 외나무다리에서 여름 내내 물놀이 하며 놀고 싶단다.

 

 

 

무섬에서는 가을이면  외나무다리를 주요  

  테마로 삼아 축제가  열리는데 다른 고장과는  달리

내성천의 외나무다리에서

가마,  꽃상여 등이  외나무 다리를 건너 가고

농부를 따라 소도 내성천을  쓰데어  건너가는  멋진

축제의 장이 열린다고 하니  

참여 해 보면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엄마,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어요 '

라고 말하는 가나

 

 

 

물결이 달려와서   가나의 발가락을 마구  간지럽힌다며 깔깔댄다.

 

 

 

 

 

 외나무다리에 걸터 앉아 나는 무얼 해 볼까?

 

 

 

 

 

 

 

 

 

너무나 아름다운 외나무다리가 아닌가?

 

 

 

2013년08월 무섬의 외다리나무에서   추억만들기

 

 

 

 

 

 

 

김 소 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이렇게 아름다운 김소월 민요조 서정시의

 배경은 북녘땅  대동강변이었을까?

그렇다면 남녘땅의  영주시 무섬마을 역시

김소월 시의 배경으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 아닌가

 

 

 

 

 

 

 

 

거제도아이 가나 , 외나무다리에서 여름나기

 

 

 

금빛물결 아래로 내려서면  금모래가 자글자글  그러면  내성천이 좋아서 떠나기 싫다니  어쩐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중략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은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이렇게 아름다운 모래강은 미국에서도 평생 한 곳에서만 본 적이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정말 이곳에 돌아와서 살고 싶습니다."

2011년 6월, 4대강 사업으로 강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이곳 내성천을 찾은 미국 환경계의 석학인 '랜디 해스터'

교수의 말이다

 

.자료출처 티스토리 <앞산족지의 '초록희망'>

 

 

 

내성천의 여름은 덥지만  아름다웠다.

내성천의  상류에 영주댐을 짓고 있다니  정말이지 한국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무섬마을 어르신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평생을 무섬마을에서 살아오신  무섬마을 어르신  국필할아버지와  친구분  

 

외나무다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구 치고 놀다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서

운좋게도 무섬마을의  국필할아버지를 뵈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벼슬 욕심을 크게 부리지

 않고 살아온 선비마을의 전통과 자존심을  빠뜨리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내성천의  물반, 모래반, 고기반의  아름다운 강 가운데 서면 

헤엄을 치던 고기들이 발등을 간지럽히며  지나가고

또 몰려 들었다고 들려 주셨다.

1급수였던 내성천에  엎드린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꿀맛이었다는 내성천은 

    지하수 개발과 영주댐 건설등으로 인해

2급수로 전락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 내성천의 가을빛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금모래 위로 흐르는 물결이 영롱한 물무늬를 만들어 주고  단풍든  풍경을 따라 모래톱을

쉬엄쉬엄 걸어가면 신선, 선녀가 되지요. 

짬나면 가을에 다시 와 보세요 영화속이지요 ..."

청록파 시인중 한사람인 

 조지훈선생의 부인인 김난희여사가  또 이마을 출신이라고 들려 주신다

 이웃마을 영양군 주실마을이 고향인 조지훈선생은

처가 마을인 무섬을 끔찍히도 사랑하셨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김승규선생의 따님인 김난희 여사와 혼인하였는데

  혼인한 날 과연 시인답게

아내에게 주는  시 '별리'를 지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훗날 조지훈 선생이 귀천하자

 김난희여사는  남편이 준 시  ' 별리'를 돌에 새겨 이별을 슬퍼하며 

 시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며 ...

 

 

 

국필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무섬마을을  재미있게 들려 주셔서요. 

  또  녹음하게 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KBS 월하드라마 ' 사랑비'촬영지  무섬마을.

 

 

 

무섬사람들

 

 

★가마타고  무섬으로 시집 가는 날의 풍경 ,<무섬자료관에서>

 

 

 

가을로  가는  내성천의 금모래  ... 사진출처 '초록희망'

 

 

 걷기좋은 계절   가을이 오면 금빛 모래강 내성천으로 가서

다시  외나무다리를 건너 보고 싶다.

 

내 좋은 사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