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한 바퀴

'위안부' 역사의 기록 '서 있는 거제 소녀상'

이바구아지매 2014. 1. 23. 09:52

 

 

 

 

 

"역사는 반드시 영웅호걸에만 의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서럽지 않은 조선의 딸로  살고 싶었다

역사에 남기기 위하여 ...세계 모두에게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

수치심을 억누르고 ' 용기' 를 내었다"

 

故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첫 증언중에서 )

 

 

경남 거제시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4년 1월17일 오후 2시

  거제시 장승포동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공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있었다.

'

 

추모비 ' 평화의  소녀상' 이 세워진 장승포는 거제의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로  한반도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맑은 날에는  대한해협과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처절한 삶과  한을 실어 나르던

 관부연락선(부산~ 시모노세키)이 오갔던  겐카이나다 (현해탄) 를   볼 수  있는

  이곳에  추모비가  서게 되었고,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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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으로 제작된 추모비는   '서 있는   소녀상' 으로  불리며

  소녀상,  빈 의자, 검은 그림자, 비문, 등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소녀상은  청동과 석재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검은색을 띤 그림자는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

그림자 속의  흰 나비는  이들의 환생을  각각 표현했다고 한다.

 

비문에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의 소녀들의 한 맺힌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거제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라고 새겨져 있다.

 

 

 

 '서 있는 모습의 소녀상은 최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더는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고

건립추진위원회는 밝혔다.

 

 2013년 5월 추모비' 건립을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  활발한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시민,학생, 각 기업체와  일본군 '위안부 ' 피해자 이며

거제,통영의 마지막 생존자인  김복득할머니도 100만원을  선듯 보탰다.

모금이 시작된지 6개월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거제 평화의 소녀상'으로 태어났다.

 

'서 있는  거제 소녀상 ' 

 무심코  이 소녀상을  보다   또래의   한 이국소녀가 떠올랐다.

세싱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일기를 남기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안타깝게도  히틀러의 만행으로  희생된

 안네 프랑크라는  유대인 소녀가 있었다.

 

 안네의  가족은 히틀러의 잔혹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했지만  미국 대사관은 이미 패쇄되어 

 망명할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암스테르담의 한 은신처로  숨어 들었다.

그리고 13살  소녀의  눈으로 본  전쟁의 공포를 낱낱이 일기로 써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역전시킨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기쁜 소식을 은신처에서  접하게 된다. 

곧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한 밀고자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되어 게슈타포에 체포된  안네는  베르젠수용소로 끌려가

16살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곧 연합국의 총반격이 시작되자 수세에 몰린 히틀러는  자살했고,

1945년 5월8일 독일은 마침내  항복했다.

훗날  안네가 숨어 살았던 암스테르담의  은신처는  박물관이 되었으며,

 

박물관 앞에는  히틀러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안네의 일기' 의

 어린 작가  안네 프랑크의 동상이 세워졌고,

이 동상은  '서 있는 동상' 으로 유명해졌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로 전락,

최대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조선의 어린  딸들, 

특히 인구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거제지역은  

일본과는 고작   49k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영향으로   ,

예로부터  왜구의  빈번한 출몰과  노략질이  극심했던  변방이었다.

 

 

 '서 있는  소녀상'  

 제작을 맡있던  부부 작가 김은성(40) 김서경(49)씨의 두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

 이들의 첫작품은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일본대사관을 향해   

    '앉아 있는   소녀상'이다.

   '수요집회'가 있는  날이면  이곳에 모인  할머니들과    

 일본의 사죄를  강력히 촉구하며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함께 하는

소녀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제의 '서 있는 소녀상 '

서울의 '앉아 있는 소녀상  '

 

 

청동으로 만들어진  두 소녀상이 세워진  상징적 의미를 일본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아쉽게도 추모비 건립을 보지 못한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거제의 할머니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한 분이라도  살아서  추모비를 세우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3년 4월 6일   이웃도시 통영은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남망산 언덕 위에  천년을 간다는 

 포천석으로  만든 조형물  '정의비' 를 세웠다.

때를 같이하여 통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97)할머니의 증언록 ' 나를 잊지 마세요'가 출간되어 

만나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도  하였다.

 김할머니의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이 작품은 일본어판에 이어 영문판, 중국어판까지 출간되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할머니께서는  22살  어느 날  거제도에 살고 계신  이모네로 가는 길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 가  위안부가 되었다고 한다.

 

 

 김할머니께서는  70년 전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었던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의 이야기'를   

'용기' 내어 생생한  역사의 기록으로   되살려 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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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 관련 몇 년간에 걸쳐 수차례 포스팅을 해 온

 나로서는 작년  4월, 이웃도시  통영의  '정의비' 가 세워지는 날  몹시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지역 거제는  언제쯤   추모비를 세울 수 있을까? 

하고  쓸데없는 걱정도  했었다.

 

다행히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준비기간   6개월여  짧은  기간에

'서 있는  소녀상'  을  아름답게 세웠다.

 

 

다음 차례는 창원이다.

창원의 열정 또한  거제에 못지 않다.

'위안부' 할머니들께   편지 잘 쓰기로 유명한  

 창원 토월고 학생들과 지도교사의  열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봄이 오는 어느 날 , 혹은 초록의 여름이 시작되는 날

창원에서도 추모비를  세운다는 소식이 기쁘게  들려올  것이다..

그 다음에는  부산에서도...

 

 

 

 

 

 

일본을  향해 ' 일어선  거제 소녀상'

 

검은 그림자와 흰 나비의 사연...  

 

 검은색을 띤 그림자는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  

그 속의 흰 나비는  이들의 환생을  각각 표현했다고 한다.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공원

 

 

 

 

우째 이런 일이... 

 

 

 

 

 

소녀 ,일어서다

 

 

 

일어선 소녀상을 안아보는  김복득할머니

 

 

 

누군가가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소녀의 추운 겨울을  막아 준다

 

 

 

소녀의 손안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한마리와  사탕과  동전 몇개도  들려 있다.

 

 

 

가악중(갑자기)에 끌려간  소녀들

 

 

 

 

 

 

 

 

 

 

버려라 그날이 오면 /박진광

 

 

 

 

 

 

 

 

 

 

 

 

그림속으로 들어간 소녀  

 

 

 

 

 

위안부

 

    박가월

      

1. 희망 잃은 여린 꽃

 

여린 새순 여물기 시작인데

꽃다운 인격을 갖추기 전

이리떼 같은 놈들이

덤벼들어 속살을 헤집느니

아름다운 꽃 몽우리

펴보지도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다

 

꽃술이 나오기도 전에

강제로 살갗을 벌려 짓이기니

꽃잎은 숨 막혀 빛을 잃고

쓰라린 음부는 상처를 입어

영혼마저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맨다

 

꽃다운 나이 열여섯

아름다운 꿈 펼쳐보지 못하고

이리떼 같은 놈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덤벼드니

씻을 수 없는 모욕에

비통하여 몸서리치는데

사내놈들 자기 욕구 풀기만 한다

 

2. 내 신세가 불쌍타

 

꿈도 깨지고 사랑도 잃었다

속임수에 빠져 모든 걸 잃고 말았다

돈 벌러 왔다가 치욕만 당하고

돈은커녕 결국엔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구나

억울해서 어찌할까나 어찌할까나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사랑한 영식 총각한테

이 첫 몸을 받치기나 할 것을

시집가는 날까지 순결을 지키고자

영식도 뿌리치고 내 순결을 지켰건만

엉뚱한 놈들이 내 고결한 순결을 짓밟았구나

원통하구나 원통해서 어찌 살거나

강제로 짓밟아 내팽개쳐졌구나

분통하구나 어디가서 하소연할거나

내 그리운 고향땅 돌아간다 해도

어찌 부모 얼굴을 볼꼬 영식 총각 얼굴을 볼꼬

내 신세가 불쌍타 내 신세가 원망스럽다

 

3. 전범자는 망언에 날뛰고

 

이 부조리한 역사를 누가 책임지는가?

전범자는 뉘우침 없이 망언을 일삼는데

버러진 청춘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되돌릴 수 없는 꽃다운 나이여

저지른 자는 지금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반만년 지켜온 우리 땅을 빼앗으려

역사를 왜곡하고 악행을 일삼는다

잘못을 사죄하고 깨끗이 승복을 해야 하거늘

지배 야욕을 스스럼없이 들추어내니

전범자는 죄의식도 망각해버리고

아직도 망상에 사로잡혀 발뺌을 하는구나

천인공노할 족속 파렴치한 망언자들

 

 

 

 

 

2014년 1월 17일  추모비   제막식  

'나를 잊지 마세요 ' 증언록의  김복득 할머니  

 

 

 

 

거제의 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건립을 위해  거제시민 모금기간중  풍경

 

 

 

2013년 4월 통영  '정의비 ' 제막식이 있던 날 의   통영 남망산 공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가 세워진  거제시 장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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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