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김치 담는 날...

이바구아지매 2006. 12. 21. 09:22

여러 날 김치를 담그기 위해 준비 작업을 거쳤다.

배추뽑기, 다듬기, 밭에서 운반 해 내려오기(언덕배기에 있어 무지 힘들었다.)

 

절이기, 물빼기, 양념만들기. 치대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간은 3일이나 걸렸고

 

올 들어 제일 춥다고 기상대에서 얼음짱을 놓은 오늘 더디어 일년 먹거리 김장을 했다.

예로부터 김장은 젤 추운 날 해야 맛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지만 요즘은 김치냉장고 덕택에 어느 따사로운 날 김장들을 한다.

 

나는 우겨서 이 추운 날을 고집했다.

그리고 올 김장은 산지에서 직접하기로 했다.

 

우리집에 공수해서 하면 또 내솜씨로는10일은 족히 걸릴 것이고 그럼 다른 일들이 늦어지기도 하고

젤 중요한 것은 어머니네에서 해야만 김장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시간도 절약 할 수 있다.

노력도 줄일 수 있다.

일석몇조인가???

 

우리어무이 내 맘을 모를리 없다.

하지만 어무이 내 살림살이 이해를 100%하신다.

 

 우리가족이7명??? 이 정도면 대가족???

 

다른건 몰라도 김치는 배추김치150포기정도 갓김치, 깍두기, 총각김치며, 갈치젓갈까지

 

과연 오늘 하루만에 끝낼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준비 된 재료들을 보니 꼭 김치공장 같으다.

 

너무 추워서 일단 방에서 치대기를 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어무이는 며느리랑 손녀가 온다고 뜻뜻하게 장작불로 방을 열도가니

아니 찜질방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왜감홍시며 물고메도 삶아 놓고 폿삶아서 폿밥(팥밥)항거석 해 놓았다.

김치속에 살폿 들어앉을 양념이 하도 고소해서 손까락으로 콕 찍어 먹어 보니

올 양념은 작년에 내가 한 것 보다 훨씬 맛 있을 거라는 예감이다.

 

"어무이, 양념이 끝내 주네예. 진짜 맛있어예."

"아이가 맛나라고 오만벨 양념에다.댓가지 젓국을 안 넣나. 장싯포어장막에서 얻은 젓갈들 봐라.

곰삭아서 너그들 말대로 지기준다이"

 

우리가나는 김치속을 한속도 넣기전에

"엄마, 똥, 오줌"

나는 봉변을 안당하려고 13kg이나 되는 가나를 번쩍 안고 화장실로 뛰었다.

가나의 입주위엔 홍시감이며 고메의 흔적이 따뜻한 입안온도에 벌써 올라 붙었다.

 

서너번씩 마당으로 화장실로 홀랑거리며 창호지문을 여닫으니 바람도 가득 방으로

들어오고 어무이 배추속 사이사이 속을 곱게 넣는 것도 정신이 흩어지시는 모양이다.

"엥가이 홀랑거리라, 이래가 언제 다 하것노???"

"어무이, 오늘 몬하모 내일 하고 또 모레 하고 그라모 되는기라예"

참내, 똑 지겉은 소리하네 얼른얼른 끝내야제. 참말로 니 하는것 보니 열흘이 넘었으모 넘었지

내년에는 고마 김장 하지마고 사무라 그기 좋것다."

 

"어무이,내년 일은 내년에 가서 생각하입시더."

"엄마찌찌 묵고 자자. 잠이 와."

우리가나 엄마도 자자고 보챈다.

안 그래도 지난 밤 잠을 설쳤는데...

 

"어머이, 가나 좀 재우고예."

"그래 얼른 재우고 몇포기 치대 보자. 그라다가 오늘 열포기나 치대것나???"

 

일은 산더민데 일이 통 굴지는 않는다.

방바닥은 장작불의 힘으로 억수로 따시고 가나는 찌찌를 물고 잠이 들고

나도 한 숨 퓩 잤다.

 

한 20분 잤나?

가뿐하게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노랑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속에 양념을 끼우기시작했다.

가나는 땀방울 송글해서 꿈나라로 가고...

 

"어무이, 잼난 이바구나 노래 함 해 보이소. 그래야지 신이 나서 재미나게 김치를 담고

김치는 더 맛있어 질기라예'

 

" 아랫마을 기야네는 고자아부지, 그래도 자슥만 잘 놓네. 기아아부지는 울타리너머에 산다네.

기야는 산에 가서 만들었다네.기야는 좋것네 아베도 둘이요. 재산도 가득하네"

 

"어무이, 진찝니까? 말조심 해야겠어예. 오늘 우리끼리 한 이바굴랑은 가슴에만 담읍시다.

잘몬하모 똥베락 맞것네예."

 

"또 해 보이소 재미나네예"

 

" 우짜든지. 씨는 누구낀고 내 알바아이고 밭은 내밭인께..."

 

"참 요상하네예. 어데서 들었십니꺼?"

 

"오래오래전에 마실가서 안 들었나."

 

이것들은 책에 나오는기 아이고 동네아지매들의 입에서 흘러 다니는 이바구들인기라.

 

"어무이, 모시삼던 이바구도 하나 해 보이소."

 

" 이 모시 삼아서는  군대 간 서방 옷 만드라 주고. 이 모시 삼아서는 내 죽음 옷 할란다."

 

한 많은 시집살이 고달팠던 이야기며. 팥지어매보다 더 지독한 시집살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어무이 고생한 것이  한없이 서러워진다.

어무이 고생 안시키야제 하면서도 이 많은 김치 다 담게 한 내 죄도 끝이 없다.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 누가 이리 정답게 씨버리삿노?"
"'숙이네 아지맵니까?"

"언냐, 우찌그리 잘 맞추노? "  " 제가 눕니까? 부채도사아입니꺼.?"

" 어데 한 잎 무 보자. 아이게 꼬시다. 참 맛나네."

이웃집 아지매는 수다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창호문밖이 어둑해 온다.

 

허리가 끈어질듯하고 오줌이 차서 장갑 벗고 문박에 나와 죽담끝에 섰다.

하늘엔 벌써 별밭이 되어 반딧불이마냥 별들이 곱게 반짝이며 별밭이 산밑마을에

겨울밤 찬별무늬 풍경을 내려 주었다.

 

정지문  벽에 매달린 서너덩이의 메주가 그물속에서 단단해져 가고 도저히 굴것 같잖은 김치담그기도 여러통을 채우고...

 

화장실 갔다 들어 오면서  보니 모티벽에 서너줄 걸려 있던 무우청 엮은 것들도 매달려 시골집은 겨울밤에 묻어 깊어만 갔다.

 

갓김치도 담고 깍두기며. 이러저러한 양념도 수티속에 남겨 두고 그 수티는 장독으로 갔다.

얼마나 비벼댔던지 배가 꼬로록 거리고 단숨에 대접밥을 조물조물한 양념과 대구국으로 후루룩 먹었다.

 

"아이구 배 고프다."

어무이도 밥 배가 덜 차서 더 드실라쿠는데 가나가 일어나서 대접밥을 끌어 안고 내 놓지를 않네.

 

"가나야, 할매 죽것다. 할매가 죽으모  왜 죽었노 하고 사람들이 물으모 가나가 밥을 다 뺏아 가서 굶어 죽었다캐라."

 

"할머니는 이것만 먹어 "

하고 내미는 건 깍두기김치

 

그 많던 김치가 다 통속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후 하고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산밑마을에 밤이 깊어깊어 우리가나말이

 

"엄마, 호랑이가 이런 집에 오나? 김치 안주모 잡아 묵나?"

"참 호랭이김치도 한사발 담아 놓자. 그래야 우리 가나 안 잡아 묵지."

어무이가 거들었다.

 

8개의 김치통을 다 채우고 이그릇 저 그릇에 다 채우고 나니 시간이 밤 10시도 넘고

 

그래도  남은 일은 몸살할 일만 남았지만 너무나 흐뭇하다.

"어무이, 오늘 너무 심들었지예"

" 나, 이대로 누모 팍 가것다."

 

까만 밤 문풍지 창호지가 부르르 떨어도 나는 날아 갈 것만 같았다.

 

김치 담고 마실가서 듣고 온 정나미가 솔솔 풍겨 오는 동네마을 이야기에 또 하나의 추억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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