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일찌감치 우리 범일이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신문을 뒤적이다 치과병원문이 열리면 자연 그 쪽으로 눈이 갔다.
서너 번 문이 열리더니 아는 얼굴들이 들어섰다.
우리 큰 딸 초등학교1학년 때부터 2학년때까지 한 반이던 '강은헤' 어머니였다.
은혜어머니는 큰 딸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들어 섰는데 내가 부르자 반색을 하며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년만이에요"
'십수년 되었겠죠."
"우리 악수 한 번 해 봅시다."
내가 먼저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자 은혜엄마도 함박웃음을 날렸다.
나는 조그마하던 은혜의 눈에서 우리 지은이에게서 볼 수 없었던 악착같은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다짜고짜로 물었다.
"은혜는요 ? 서울대학에 갔나?"
"요즘 서울대학이라고 좋던가요."
"그렇긴 해요 내 말은 은혜가 공부를 참 잘하겠단 믿음이..."
"안 그래도 약대를 1년다니다가 올해 다시 의대에 진학하려고요. 작년에 견준다면 카토릭의대는 진학할 것 같아요."
"언니도 의대를 다녀요?"
"과천의대에 다녀요 길병원재단인..."
내가 아는 은혜엄마는 당차고 굿굿했다.
부산이 고향으로 우리들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주동에서 살았었다.
남편은 대우조선에 근무하였고 힘든일을 하는 것 같아보였는데 사는 모습이 너무도 알뜰했다.
내 눈에 비친 은혜는 집념의 아이였다.
나는 사실 아주동에 살 이유라곤 없었다.
순전히 핑게를 대고 아주동에서 제과점을 하게 되었었다.
남편은 사법고시준비를 하고 있었고 물론 서울에서 재수하고 대학졸업 후 대기업에도
취직이 되었는데 욕심을 부려 '사법고시'에 매달렸다.
그 때 우리집엔 큰 딸 지은이, 둘째 딸 소담이, 그리고 셋째 딸 귀염이가 태어나서
3살이었다.
아주동에 살 때 사람들은 여러모로 내게 많은 인정을 보여 주었다.
2년여를 제과점을 하면서 추억도 쌓았다.
우리 지은이가 3학년초에 지은아빠가 아픈 바람에 고시공부를 끝내고
새출발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거제도에 외국어학원을 하는 것이었다.
정들었던 아주동을 떠나 고현으로 갔다.
고현이나 아주동이나 다 거제시에 있는 도시이지만 이사란 걸 가면 그곳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되고 먼저 산 동네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가끔씩 먼저 동네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반가워서 크게 웃곤 헤어진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막내녀석은 그 때 업혀 다니고 알뜰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가끔씩 팔다 남은 빵을 주곤했다.
오늘도 아이들보고 이야기를 했다.
"너그 빵 참 많이 얻어 먹었다. 알겠나?"
우리는 웃었다.
"아이가 또 났어요. 어리네."
"독수리5형제래요."
"하긴 능력이 되니까"
"능력은 우리 살기 힘들어요. 빗보증도 서고 이런저런 이유로 학원을 못하게 되어
장승포로 이사왔어요. 잘 풀리라고 ..."
그러는사이 은혜어마는 이치료하러 진료실로 가고 헤어져서 왔다.
내가 딸만 낳자 아주동사람들은 크게 걱정해주며 아들낳는 처방이라며
선인장 꽃을 따다가 주었고 달여서 먹으니 정액 냄새가 났고 그것 때문인지 아주동을 떠나기 전
다시 임신을 했는데 부끄러워서 옆에 있던 거제시보건소에 가서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랬더니
팔짝 뛰며 낳으라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부른 배로 고현에 이사를 갔다.
온 동민이 알 정도로 난 제왕절개를 세번이나 한 사람으로 죽음을 담보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한
간 큰 여자였다.
어느병원도 넷째를 수술해 본 곳이 없다며 한사코 손사레를 쳐서
부산대학병원에 가서 어거지를 부려 넷째를 수술해서 낳았다.
죽어도 좋다는각서를 썼고 아기를 낳기 하루 전날밤에 담당의사가
"딸같아요"
이 한마디는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던가???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중학동창녀석은 위로의 말로 밥을 사주며
"천지신명이 도와서 아들낳을끼다. 걱정말거라"
아 이러지 않나.
어쨋거나 나는 당당하게 아들을 낳았다.
성공성공 대성공이었다.
이후로 일주일간의많고 재미 난 에피소드는 또 담에 하고 어쨋거나
은혜, 강은혜엄마의 선인장으로 아들 낳는 비법의 숨은 공로자다.
담에 만나면 따뜻한 밥 한그릇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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