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찌푸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뒤척이다 일어나서 농협에 가서 공과금을 냈다.
백만원을 찾아서 이것저것 내고 나니 돈 삼만원이 포켓에 뻘줌하게 나딩군다.
주머니속 사정이 꼭 이런 날씨를 닮았다.
시장에서 고구마 6000원어치 사고 귤 5000원어치 샀다.
집에 와서 칼커리 씻어서 솥에 다 삶았다.
며칠 전 사 놓은 지리산 재래종밤은 다른 솥에다가 거의 태우다시피 삶았다.
삶기는 냄새가 구수해서 학원에 가려는 범일이를 눌려 앉혀서
살짝 탄 밤을 숟가락으로 후벼서 먹기 좋게 입에 넣어 주니
" 엄마, 너무 맛있어요.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몰겠어요."
라며 자꾸 달라고 한다.
온 종일 가려워서 건질다가도 밤맛에 오빠따라서
"엄마, 참 맛있다. 나 다 묵을래. 오빠, 묵지마"
이런다. 잘못하면 싸움나겠다.
신나게 밤을 먹고 있는데 고구마를 또 앵겼다.
"엄마, 고구마 맛이 왜이래요."
범일이가 쓴 맛이 난다고 해서 내가 먹어 보니 밤맛이 고소해서 고구마맛이
안나는 형상이었다.
" 한 참 있다가 고구마 먹어 봐 맛있을거야."
" 아~~~ 그렇구나. 진짜네."
아들의 입이 벙글어진다.
겨울 해는 짧아서 점심을 고구마로 해도 오후가 훌쩍 지난다.
집안이 온 통 고구마와 밤삶기로 수증기가 가득해서 뽀얗다.
고구마엔 김치한오래기 걸쳐서 옛날을 추억하며 먹었다.
입안 가득 고구마맛이 녹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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