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어무이가 마늘을 심는다
작년에도 심었고 올해도,내년에도 거동하실적에는
계속 하실게다
농삿일이란건 지겹고,갑갑하고 ,힘조차 든다
그럴 때는 노래한곡이 제격이다
울어무이가 부르는 노래는' 모찌기노래'
"조지자 조지자 시어메도 조지고 ,시아배도 조지자"
모내기를 하려고 어린 모가 자란 모자리꽝에서 모찌기를 하면서 부른 노래라는데
내용이 웃긴다
'시';가 들어간 것은 시금치도 안먹는다는 며느리들도 많다는데...
예로부터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몽창스레 매웠는가보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혜로운 며느리들은 노래로 힘든 일을 잘도
견디어 냈다는 생각이 든다
울어무이가 들려 준 '농요' 녹음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잘 안들린다
내년에는 '마늘심기 '노래를 만들어 불러보라고 부탁해 보아야지...
오늘은 마늘 심는 날,어무이집에서 감이 익어가는 풍경을 소담스레 담아 보고
마늘을 심다가 깨가 나면 서서 찍찍이로 마을 풍경을 담아 본다
노랗게 익어 가는 들녘은 낭만이 흐른다
시골집들은 정겹고
나는 뙤약볕에서 일하려니 눈물이 난다
삽과 괭이, 호미,낫 장갑 등 농기구들이 밭언덕에 널부러져 있다
검은 비닐까지도...
큰 다라에다 몇 다라이나 마늘을 갖다 놓는다
서너다라이나 되는 마늘을 심을 사람이라고는 달랑 두 사람
이제 몇날 며칠을 마늘심기에 시간을 죽여야 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울컥 치솟는다
저 마늘을 심지 말고 까서 그냥 양념으로 해 먹어버리면 된다는...
나무 그림자랑 삽이 황토밭에서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마늘을 물에 불려서 촉이 잘 나라고 재 같은 것에 버무렸는데
잘 모르겠다
건성으로 봐서 그런지 일하기가 싫으니 관심이 잘 가지 않는다
"이게 다 너그집 식구가 묵을 식량인기라"
어무이의 말씀이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
비료도 뿌리고...요소?질소?
비닐을 먼저 씌운 다음에 비닐 구멍사이로 작은 구멍을 내서 마늘을 심는다
이렇게 똑 같은 일을 반복해서 몇날 며칠을 한다
농사일이 서투른 며느리의 일한 모습이 어무이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아서
속으로는 이러실지도 모른다
(에구 똑 일이라고 해 논 것이 지랄같아서 시대를 잘 타고 나서 내가 가만 있제 옛날같으모
열번도 더 쫒겨났을끼고마는...))
어무이의 그 마음을 내가 다 안다
일은 못해도 눈치는 빨라서 ...엉엉엉 더위에 눈물이 난다
농사일은 아무나 하나 ...하기 싫어 ...
허리가 아프다, 종아리가 땡긴다, 허벅지가 얼얼하다
그럴 땐 일어서서 맑은 하늘을 본다
맑은 가을 하늘
손이 고운 내 친구들이 하늘가에서 웃고 있다
구름에 둥실둥실 떠 간다
친구들아, 내 손 좀 봐 이 얄궂은 손을...
나두 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 농사꾼 손 싫어
누가 나 좀 살짝 데려 가 주라 ...
은행잎이 딩굴고 플라타나스잎이 딩굴던 고대캠프스가 그립다
이렇게 마늘밭에서 인내하는 날로 나의 가을은 다 가고 말거나???
어무이의 인내심은 정말 대단하다
저 많은 구멍속에다 마늘로 다 메꾸는 똑 같은 일의 반복을 지겹고 몸부림나는 일을
철 없는 며느리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부르며 하시다니
행여나 며느리가 힘들고 지겨울까봐
가끔씩 단감도 따다 주시고 배꼽 잡고 딩굴정도로 웃기는 이야기도 곁들이고
미싯가루까지 타다 주셨는데도 날씨가 덥고 힘이 드니
이런 생각이 불쑥 든다
내가 왜 이런 시골로 시집을 왔을꼬?
고작 마늘이나 심을라꼬???
엉터리로 심어 놓은 것은 일일히 다시 뒤져서 고쳐 심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시어머니다
나 약 올리고 심술을 내는 것 ...시어머니라서 ㅎㅎ
어무이는 너무 야무지다 그냥 대충대충 하면 될 것도 밭이 비딘같이 반질반질하니
사람들이 그런다
"마늘밭에 공단이불을 깔아 놓았네 너그어무이 손끝이 하도 야무져서 안 그렇나
그랑깨 살림도 야무지게 살고 아들들도 잘 키웠제"
철네집 아지매가 와서 누워도 흙 하나 안 묻겠단다
"이 마늘 심어서 우리 범일이 반찬 해 주고 , 요 마늘은 이쁜 우리가나 반찬 해 주고
"요 마늘은 우리예쁜 며느리 양념 해 주고 ...해야 해야 얼른 넘어가라
우리가나어메 머리에 불 내지 말고 ..."
금방 지어 낸 노랫가락이다
ㅎㅎ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가면 민요가 되려나???
한쪽한쪽에도 정성이 가득하다
조금이라도 찢겨진 건 골라내고
못 생긴 것 골라내고 흠있는 것 골라내고 멍든 것 골라내니
농사가 자식이다
울어무이 자식농사짓듯 마늘농사도 그리 하신다
울 어무이 손톱끝에서 마늘이 다시 신체검사를 받는다
불량이면 나가 놀아라 하고 옆으로 제끼고...
궁중에서 임금님의 여자가 되기 위해 간택에 임하는 양갓집 규수같이
울어무이 손끝에서 간이 콩알만해지는 마늘 한쪽이들...
50년 농학박사 울어무이의 마늘심기,도대체 마늘구멍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볼까?
마늘을 구멍에 꼭꼭 바로 잘 심고 나면 위에 또 흙을 뿌려 준다
싹이 올라오면 까치들이 날아와서 후비고
멧돼지가 와서 후벼서 다 망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마늘농사를 지어야한다
농사란 자식과 같은 것이라서...
손이 흙이 되고 , 흙이 손이 되고, 금반지가 빛을 잃었다
흙이 살아 숨쉬는 곳 ..."마늘아, 쑥쑥 잘도 자라거라
까치도 데~에끼 멧돼지도 이~누~움 하고 눈 부라리거라"
어무이가 마늘에게 당부하는 말씀
50년 한결같이 외길로 농사를 지으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
똑 바리 줄 나리고...줄을 똑 바로 나라야 마늘 심을 두둑이 고르고 이쁘다
측량기술까지 필요한 농사
장화신은 어무이의 표정이 압권이다
ㅎㅎ 농사일이라고는 엉성하여 차마 며느리에게 제대로 시키지도 못하시는 울어무이께
훗날 이 멋진 표정을 보여드려야지 ...
어머니, 일 끝나면 단풍놀이 한 번 가야지예
(2008년 9월 22일 낮에 송정리 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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