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이야기

길을 내는 사람들(옥녀봉을 오르면서)

이바구아지매 2008. 10. 21. 06:12

 길은 어제부터 났을까?

아마도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한 날부터 길은 필요했을 것입니다

 

2008년 10월 19일 참으로 뜻 밖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가는 별난 경험을 한 소중한 날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해야 할지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군요 길을 내는 사람들이 맞겠습니다.

 

가끔씩 찾아가던 산을 방향이 다른 새로운 등산로를 찾아가다가 그만 길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런 황당함이...

돌부리에 채이고 거미줄에 걸리고, 우거진 풀숲을 헤쳐나가니  벼랑끝이었고...무서움과 공포와 신비감이 한테 어울어져 ...사람이 다니지 않은  태고적 그대로인 ...마치 몇억년동안 잠자던 숲이 잠깨어나고   종유석을 간직한 동굴을 탐험한다고 상상하면 심하게 오버하는 꼴일까요????

 

아주 오래 된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에는

 가지가 엉기고  치렁거리며 뻗어나가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름덩쿨이라 했는지?

 

 

 두 남자가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주 씩씩하게 ...옛날을 이야기하면서요...

 

산냄새가 마구  달려 내려왔습니다

마주 오던 두 남자의 어깨에 매달려서...

 

 

구절초가 가득 피어 있습니다

예비군아저씨들의  가슴저린 총알 소리를 들으면서  따끔거리는 아픔을 참아내고

피어올랐습니다...가을이니까...

 

폐타이어는 총알밥을 잘도 먹습니다

 아이들도,어른들도 다 총쏘기 놀이를 즐깁니다

 하얗게 핀 가을꽃들은 그리움을 토하고...

 함께 온 남편의 친구 ...그 유명한 가수 코요테의 신지씨ㅎㅎ..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산을 오르고 잇습니다

 길을 찾지 못해 마구 헤메다가 벼랑길을 만났고  벼랑에서 이런 모습을 만났습니다

아주 오래 된 칡이라고 합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도 넘었다는???...

 산에 가는 심마니들은 산삼을 보면 "심봤다" 라고 외치는데

우리는 "칡봤다" 라고 외치지도 못했습니다

큰 소리에 벼랑이 무너져 내릴까봐서...

잠시 꿈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길이 사라졌다, 낙엽이 수북하다,가시덩쿨이,거미줄이, 게다가 돌비랑이 와르르...

감자기 산이 무서워졌습니다

그 동안 산을 만만하게 보고 겁없이 달려들었던 그 철없음이 오늘 무릎꿇고

조아리게 합니다

 

두어시간 헤메었을까요???

대관령 고갯길도 아주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 한발 한발 걸어서 길이 되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 많은 길이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길이 필요합니다

나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서...

 

헤메고 또 헤메다가  벼랑길 위에 살짝 발  디뎌보니  임도길이었습니다

"와 길이다"

하고 소리치던  남편의 그 밝은 목소리...

"벼랑 위에 길이 있었네."

" 고맙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길을 내신 분들 ..."

진심으로 감동하여 내 지른 나의 산소같은 목소리가 숲을 맴돌았습니다

 

 

꼭 죽을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길은 정말 오래 된 좋은 친구 같았습니다

길은 벼랑끝에서 제 손을 잡고 이끌어 올려주었습니다 편안한 곳으로..

길위에 올라서자  내가 걸어 온 숲 우거진 벼랑끝을  다시 내려 다  보았습니다

밀림속같은 그 곳을 헤쳐나와서 그 때 느꼈던 묘한 기분은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낙엽속으로  우리의  발자국은 흔적도없이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명상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오늘처럼 이런날에는...

 

온 종일 길만을 생각했던 하루였습니다

뱀도 보고,거미,벌새,나비,기목나무,천남생이,으례나무,소사나무 등 산에서 만난것들은 다 반가웠지만 길을 잃고 헤맨것에 대해서는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점검해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더랬습니다..

"우리는 지금 길을 내고 있는거야  최초로 길을 내고 있다구..."

라고 소리치던   ...

하지만 아직 산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야하고 겸손해야 함을 깨닭은  소중한

하루이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10월19일 대우조선 정문으로 옥녀봉을 오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