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세월 한번 빠르다 .
정말...
벌써 결혼 25주년 , 은혼식을 맞았다.
그 동안 뒤돌아볼 여유도없이 허겁지겁 달려 온 시간들 .
이것이 나의 결혼 생활 전반기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워진다.
흘러가버린 시간을 놓고 본다면 이렇다할 아무런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현재가...
그렇더라도 이즈음에서 '휴' 하고 숨고르기 한번 하고 되돌아 봄의 시간도 가져보련다 .
후반기는 준비 된 나아감이 되어야야겠기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혼은 또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시간
'찬란한 내 삶의 출발과 전진이 계속되었던 시간, 그리고 은혼식에 대하여 '
라는 부제를 달아보며...
여기
한남자와 한여자가 만나 결혼이란 의식을 치른 후,
우리가 되어 마음모아 한 곳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동참,
이것이 결혼이라는 진정한 정의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할것이다
과연 우리부부도 그런 맥락으로 결혼을 하였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하니까?
(관습처럼 혹은 전해내려 오는 관습을 거부하지 못하여)
혹은 심심해서?
아니면 궁금해서 ?
사실 우리가 결혼을 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뚜렷하게 찾지도 못한 채 ...
그래도 누군가의 특별한 질문을 받는다면
멋없이 생긴,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굳은 심지와 의지로 똘똘뭉친 사내가 꿈을
향해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그 목표가 마음을 움직여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고 둘은 알지못하는 미래의 시간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이왕지사 결혼하는 것이라면
밋밋하고 평범함은 싫다
개성있고 멋지게 한번 잘 살아 보는거다
나는 나답게, 나만의 빛깔로 ...
그래서 우리의 결혼은 출발부터가 참으로 유별났다.
우리의 출발을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길로 마구 달려 간 것이라고?
정오의 햇살은 따갑게 정수리를 사정없이 쏘아대고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 가야 했고 나침반의 방향은 알수 없었고 ...
1986년 3월 1일 정오
한남자와 한여자가 웨딩마치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같은곳으로 걸어가는 첫동행을 불확실함으로 시작했다.
마음 착한 두사람에게 하늘은 축복의 선물로 하얀 눈을 머리위로 뿌려 주었고.
신혼여행 가는 길에
만났던 때아닌 매서운 칼바람은
닥쳐 올 시련을 예고함인지도 모른 채 두 사람은
'모모'(Momo 시간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돌려 줄 한 아이의 특별한 이야기)
처럼 세상속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하나도 아닌 둘도 아닌 ,다섯씩이나 낳고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란 정부시책의 가족계획 조차 무색하게 만들고도
잘 살거라고 믿었을까?
참으로 대책없는 한남자와 한여자였다
그런 정신없는 시간속에서 어찌 뒤 돌아 볼 여유인들 있었겠는가?
남들처럼 한자녀 혹은 두자녀를 두었더라면
지금쯤 느긋한 생의 후반기를 보낼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한남자와 한여자의
삶이 또한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하더라만,
그것은 단지 아이가 많아서 그런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남들은 결혼 전 이미 다 해결되었던 조건들을
우리부부는 결혼 후 시작하였으니( 학업의 오랜 줄다리기와 그리고 방황...)
달라도 너무 달랐던 환경의 우여곡절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웃들의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아니 다정한 관심이기보다는 답답한
어느 대책없는 부부의 막무가내식 결혼생활이라고
입방아를 콕콕 찧어 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티격태격과 시시비비로 알콩달콩 행복한
결혼생활이긴 애시당초 글렀던 분위기는 아니었을까?
남들이 느끼기엔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시간마저도 제트기처럼 쌩쌩 지나갔다.
눈깜짝할 새 은혼식이란 낯선 이름이 은빛 선물을 내밀며 빙그레 웃으며 다가온다.
그래 멋적지만 찾아 온 녀석에게 씽긋 한번 웃어주자.
내일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딸들에게 가 볼 생각이다.
오래 전 한남자와 한여자가 결혼하여 트럭에다 짐을 싣고 서울로 향하던 그날처럼.
오늘도 밤늦도록 짐을 챙긴다 오늘밤 이미 밤잠은 반납한 채
내일은 3.1절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본다면 1919년 3.1일 정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은 의미있는 날이었고
우리부부는 25년전 이날 정오의 시간에 결혼식을 올렸다.
"뭐 하노 이 짐좀 어서어서 들여가자 , 이불은 어디다 두어야 하노 냉장고와 책상은 ...
어서 해야지 오늘 안에 다시 집에 내려가지 ..."
안 봐도 드라마인 서울에서 벌어질 딸들과의 살림정리 전쟁한판 .
그래도 어절까 당면과제인 것을 ...
다시 25년을 지나면 한남자와 한여자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환하게 웃음 날리며 여유 부리고 있지 않을까?
아 참 그 때는 또 손자손녀들 돌보느라 눈섭 휘날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절대로 시간을 양보 하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도 우리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우리의 계획은
먼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과 뚜엣으로 멋진 춤을 춘다는 '탱고'를 배워보기로 하였고,
그 후 루마니아로 날아가서 브란성 일명 '드라큘라성'이라고 부르는 성으로
찾아 가 브람 스토커(아일랜드 소설가)의
소설 덕분에 유명해진' 블라드 체페슈'의 이야기도 한번 만나봐야겠단 계획을 세웠기에...
8살에 처음 만난 우리부부 , 이 질긴 인연으로 결혼 후반기도 잘 살아야겠다.
약속한 계획들을 실천에 옮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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