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생큐, 싸이

이바구아지매 2013. 10. 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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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21 03:02


	조재철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관 참사관·소설가 사진
조재철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관 참사관·소설가
작년 스톡홀름에 도착해서 아파트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곳도 높은 임차료에 주택난이 만만치 않다. 한 달을 기다리다 겨우 아파트를 찾았다. 이사 후 처음 맞은 금요일 늦은 밤. 잠결에 밖이 소란스러워 거실로 나와 창밖을 내다봤다. 아파트 마당에서 30명쯤 되는 젊은이가 엉겨붙어 있었다. 싸움이 붙은 모양.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해 그들을 끌어냈다. 알고 보니 아파트 지하에 작은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만 문을 여는데, 야심한 시각이면 여지없이 강렬한 비트의 음악 소리가 귀를 때린다. 집을 정말 잘못 구했다, 이사를 가야 하나, 후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자다 깨어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사가 익숙했다. '다 같이 빙글빙글 강강수월래~' 희미하지만 분명한 그 가사는 싸이의 '챔피언'이었다. 반가움에 집에 있던 K팝 안내 소책자를 들고 나이트클럽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침 음악이 잠시 멈춘 순간이었다. 수십개의 파란 눈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나이 든 남성, 게다가 아시아인을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잠결이었기에 용기를 내었을까. 흑인 디제이 녀석에게 "생큐" 하며 책자를 건네주고선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주말 늦은 밤이면 거실로 나와 아래층에서 들려올 한국 노래를 기다린다. 한국 노래에 맞춰 춤추고 있을 노란 머리 젊은이들을 떠올리며 고국의 노래방에서 친구와 마이크를 나눠 잡던 즐거운 순간을 추억하는 것이다. 집 참 잘 구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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